[양천한담]
조그만 행복
광화문 마월회 모임에서 점심 먹고 또 급히 수원으로 내려간다. 올라올 때는 고속버스를 이용하니까-아니 정확하게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시외버스겠지?- 집을 떠난 지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는데 내려갈 때는 이상하지만 대개 2, 30분이 더 걸린다.
가는 중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시쯤 도착하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되면 탁구장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요즘은 조금 여유가 되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서 예전처럼 같이 운동하려고 한다.
점심 반주(飯酒)로 막걸리 두어 잔 했으니 약간 취기야 있지만 어쨌거나 버스야 빨리 달려다오 하는 마음이다. 아무리 애써도 빠지는 날이 너무 많아 탁구장에 가는 날은 일주일에 2, 3일이 고작이지만 그렇다고 월 회비를 아깝다 할 수도 없다.
생각해보니 수원으로 이사를 온지 벌써 어언 1개월 모자라는 1년이 다 되어 간다. 쌍둥이 외손자를 가진 큰 딸애가 직장에 복귀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두 집 살림을 합쳐서 살게 되었는데 아내가 애 봐주느라 꽤 고생을 한 덕에 이젠 쌍둥이도 만 두 살이 지나 조금 편해지긴 했다. 금년 초까지도 거의 종일 애 보다시피 했는데 이젠 아침에 유아원(幼兒園)에 내보내고 오후 4시 지나 데리러 가니까 낮에는 제법 숨쉴 틈이 생긴 것이다.
아내는 이사오기 전에는 거의 매일 탁구장에서 운동하며 놀다가 때로는 탁구장 회원들과 근처 스크린골프장에서 어울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애 보기 시작한 후부터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으니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지난 겨울에는 하는 수 없이 겨우 한밤중에나 잠시 뒷산에 오르곤 했다.
이제야 낮에는 여유 시간이 나서 겨우 시간 반 정도 탁구장에 함께 가는 것으로 운동하게 되었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나마도 아이들이 있는 유아원에서 오는 급한 연락도 대기해야 하고 아내의 경우야 시어머니, 친정, 작은 딸애와 외손녀 둘 등등에서 수시로 서울 나들이 갈 일이 생기지만 그런 경우 이 여유시간을 이용해야 하는데다 그 외에도 여러 갑작스런 일들이 마구마구(?) 생기니 하루의 여유로움을 찾기가 이토록 힘든가 싶다.
애들이 커가면 우리 부부가 함께 할 시간은 다시 많아지겠지만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면 자꾸 안쓰러워지기만 한다. 내가 해주고 싶고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 겨우 이 것뿐이었는가 싶어서 절로 한숨이 난다.
“언젠가는 너에게 말해줄 꺼야 내일(來日)이 찾아오면
너의 고운 두 손 가득히 나의 꿈을 담아주고서
이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기 멀리 보일 것 같은 우리만의 희망을 찾아서
사랑스런 너의 꿈속에 언제나 달려가리
([내일이 찾아오면 sung by 문희준]에서)”
그런데 말이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 내 아내에게 이루어 주었던 꿈은 있었나, 혹시 꿈꾸었던 내일은 언제나 올려는 지, 이래저래 따져보며 되씹어보니 아득하기만 한 것이 아주 아주 내가 한심하더란 말씀이다.
내 나이 더블식스, 이래저래 세월이 다 흘러가서 어느덧 끝판에 다가가고 있는 듯싶어 쫌 기분이 푸욱 가라앉는데 이번에는 간드러진 주현미가 나를 아주 모질게 패고야 마는구나.
“가슴을 휘젓듯이 흐느끼는 섹소폰 소리,
아, 나를 울리네,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떠날 당신이 기에 ,
그대 품에 안기운 채 젖은 눈을 감추네
아, 부르스 연주자여, 그 음악을 멈추지 말아요.
([눈물의 부르스 sung by 주현미]의 일부)
그 언젠가 떠날 사람이 그대 일 수도 나 일 수도 있고 또 그 누구도 될 수 있겠지. 떠나는 그 날, 그 시간까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렸다.
어쩌면 길다 면 긴 인생(우리들은 지금까지 그래도 두 손 꼭 잡고 잘 살아 왔으니까)을 뿌려놓은 이 무대에서 절대자(絶對者)가 들려주는 음악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퇴장(退場)하게 되겠지. 속 마음으로야 그 음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그 마지막 곡을 들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 그 시간까지 서로의 품에 꼭 안기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뭐 그보다 더 큰 행복이란 것은 얼마만큼 있을까?
어느덧 수원에 도착했다. 정류장엔 탁구장에 빨리 가겠다고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와 기다리고 있다. 부지런케 가면 아기 데리러 가기 전에 4, 5십 분 정도는 둘이서 조그만 탁구공으로도 조그만 행복은 누릴 수 있겠지?
(2014.8.26. 양천서창 문상두)
첫댓글 야 재미있겠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네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네
천하의 양천 서창도 손주들 앞에서는 별수없이 요즘 보통할배(손주 돌보미 보조)였군 ㅎㅎ
너무 쎈티멘탈에 빠지진 마시게 그럴때는 신유의 시계 바늘도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군
그래도 손주들 건강히 커가는 것만으로도 감사고 큰 행복아닌감
금슬이 장난 아닌가 보다!다시 한번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손주 돌보다 세월 가는거는 어쩔 수 없겠지만 내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손주들은 늘어나고 몸은 힘들어지고 아!!!
금슬좋은 부부! 양천서창의 아내에대한 정을 이렇게 글로 표현해놓으니 두분 부부의 정이 얼만큼 깊은지를 느낄수 있을것 같네.... 멋지다....
그래, 그렇지,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