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장터
동래장터는 조선시대 동래관아 문 밖에서 2, 7일 열리던 5일장이다. 1770년 (영조 46)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 동래지역 장시(場市)에 대한 기록이 있어 장터가 형성된 것은
그 이전이다.
거래된 물품은 기장,김해,양산등지에서 생산된 의류,쌀,콩,비단,청어,북어,대구,식기,종이동래 특산품인 유기그릇과 담뱃대 등이다 .
동래의 담뱃대와 유기를 생산한 담뱃대 마을은 복산동 6통 지역인 우성아파트 아래쪽 골샘에서 동래교육청 언덕배기 일대 주변이다
장터는 오락과 유흥의 장소이고 만남의장소였다. '동래파전 먹는 맛에 동래장터 간다'고도 했다.
동래장터는 동래공립보통학교 터를 매입하여 1937년 6월부터 운영된 상설시장(동래시장)에 자리를 내어 주고 말았다.
[부산 기네스 125]에 동래시장이
'부산 최초의 시장'으로 선정되었다
5일장은 동래시장과 함께 한시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시가지 미관과 교통문제 등으로 부곡동 오시게로 옮겨지고 그 곳 역시 같은 문제로 1983년에 구서동,
지금은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앞 부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00년대 동래장날 풍경
좌측의 문루는 동래시장 입구에 있던 식파루, 우측은 정원루
동래장날, 장터에 가고자 세병문 앞에 운집한 장꾼들
1920년대 망미루 앞 동래장터
1920년대 정원루가 보이는 동래장터
나무통에 테를 고치는 행상
일명 통쟁이
동래장날 난전
동래장날 주변 골목시장
소와 말을 이용하여 장작을 파는 행상
만물상
양곡상과 노점상
현 수안파출소 옆
송공단
박정희 대통령 친필
두 의녀위비
두 여인이 동래부의 시골애서 볼 일이 있어 왔더니 동래읍성 전투가 벌어졌다 "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선조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내 고장 동래만큼은 왜병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동래시장 메뉴판
안락동에서 동래방향
동래향교 명륜당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가운데 넓은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2칸 크기의 온돌방을 둔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