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자신의 허리에서 은서의 팔을 풀어내 손을 잡고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나뭇 잎이 얼마나 떨어져 쌓여 있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에서 사그락 사그락 나뭇잎 밟히는 소리 가 났다. 아직 마르지 않은 나뭇잎은, 아직 추억이 되지 못한 기억처럼 생생했다.
"뭐 하는거야." "옛날부터 너랑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지"
세는 나뭇잎이 가장 많이 쌓인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한 손으로 배낭을 풀어 팽개치듯 던지고는 나뭇잎 위에 드러누웠다. 한손은 은서의 손을 잡은 채여서 은서도 끌려가듯 저절로 눕게 돼 버렸다. 세는 은서의 손을 놓고서 일어나더니 사방에서 나뭇잎들을 긁어모아 은서의 몸을 덮었다. 그리고는 다시 사방에서 나뭇잎을 긁어 모아온 후 은서 옆에 누운 뒤 모은 나뭇잎들로 제 몸을 덮었다.
"좋지."
세는 나뭇잎 속에서 은서의 손을 찾아내 쥐었다. 햇살과 비와 바람 속에 살다가 진 나뭇잎 냄새가 청량했다. 덮은 나뭇잎들 위로 또 나뭇잎이 떨어져 쌓였다. 얼굴에도 떨어져 뺨을 덮었다. 새로 떨어 진 나뭇잎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이걸 해보고 싶었어?" "응" "언제부터?"
"고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애인하고 산에 갔었던 때 얘길 해줬었거든. 여자 집안에서 결혼을 너무 반대 해서 이별식을 하러 갔었대. 지금처럼 가을이었고,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어서 산에서 이렇게 낙엽을 덮고 둘이 손 꼭 붙들고 꼬박 밤을 보냈대. 누워 있는 두 사람 위로 나뭇잎이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 고 밤새 떨어져서 새벽에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대. 그걸 핑계로 또 하루를 그대로 누워 있었대. 또 밤이 됐는데 도저히 헤어질 수가 없어서 그렇게 낙엽 속에서 또 한 밤을 지냈대. 그렇게 사흘을 보낸 뒤에야 배가 고파서 그 낙옆 속을 나왔다고 그러더군."
"그런 다음엔."
"뭐가"
"그 선생님과 애인은 어떻게 됐냐고?"
"헤어졌대."
"그럭하고도 헤어졌어?"
"그럭하고 나니까 헤어질 수가 있었다고 했어. 뭐라더라. 그렇게 배가 고프더라는 거야. 배가 고파서 산을 내려와야 하는 게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고 하시더군. 잊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어. 그 말씀을 하 실 때 얼굴표정이 애잔하고 아름다웠지. 오죽했으면 내가 이 다음에 애인이 생기면 꼭 산에 가서 나 뭇잎 속에 누워 있어 봐야지 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