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 장 칼라스 사건 >
진정한 속물
유럽 최고부자 평민
똘레랑스(tolerance)
마녀사냥의 환생
인생은 볼테르처럼....
한 인간이 견해 혹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인간을 박해한다면 그 사람은 '괴물'이라고 말한다.
<Voltaire>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1694~1778)
2023년 10월 8일 모든 공소시효가 끝난다. xxxx교육청의 주거칩입, 스토킹법위반, 권력남용, 명예훼손, 개인 정보 유출, 공무원 갑질 등등 온갖 대학살이 다 사라진다. 바로 맞대응했으면 형사 고소 사건이었는데 미루고 또 미루다 이렇게 되었다. 그냥 두려웠다. 극한의 공포는 나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10월이 지나면 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내가 괴물들을 처단할 시간은 이제 영원히 사라진다. 나도 괴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장칼라스 사건 >
1762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 장 칼라스(프랑스어: Jean Calas)가 아들 앙투안느가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배신감으로 아들을 죽였다는 소문이었다. 이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일 가정에 더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배달되지 않은 끔찍한 불행들이 운송 중이었다.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두가 모함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자비나 관용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시한 계기가 되었다. "똘레랑스"는 프랑스어로 자비나 관용이라는 뜻이다. 칼라스는 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들을 죽였다는 모함을 받고 수레바퀴형에 처형되었다. 그는 국가 권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칼라스의 처형에 찬성한 판사들은 극형에 가해질 경우, 노인이 죄를 자백할 거라 생각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형을 내렸다. 도대체 왜 그토록 가혹한 형이 그에게 내린 걸까? 이유는 그가 위그노 개신교도였기 때문이었다.
장 칼라스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18세기 프랑스는 가톨릭이 우세했다. 사실 아들 앙투안느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지만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낙방했다는 사실에 좌절해서 자살한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이 우세했고 위그노 개신교인들에 대한 어떤 자비나 관용은 없었다.
그는 수레바퀴에 매달려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찾아 자신의 결백함을 인정받으려 했다. 극한의 고통에서도 예수처럼 여덟 명 판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까지 했다. 강렬한 눈빛과 목소리만은 무수한 공간을 넘어 바람처럼 떠돌다 수백 년이 지나 지금의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사람이 얼마나 강인한 존재이며 신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릴 수 있는 그는 신념의 인간이었다.
이 사건을 본 볼테르가 수많은 팸플릿을 작성해서 가족들을 변호했다. 파리의 변호사들과 지식인들 여론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똘레랑스"가 없는 다수의 여론은 괴물이 되기 쉽다. 볼테르라는 지식인의 힘이 여론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었다.
1765년 3년 만에 볼테르의 노력으로 인해 칼라스는 죽은 지 3년 만에 무죄와 복권이 선고됐다. 코로나 확진 후, 3년이 다되어 가지만 무너진 내 삶은 돌아오지 못했다. 내 삶에서 가장 힘든 고통의 정점의 순간 거열형을 당하며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과 병실 복도 창틀에 여러 번 올라섰던 창문에 비친 환자복의 내 실루엣만이 남아있다.
볼테르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예술이다. 나의 사랑 볼테르, 그는 프랑스를 계몽시킨 철학자이다. 광신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를 세상에 알렸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살 수 있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영민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먼저 돈을 벌었다. 그는 돈에 진심이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자가 진정한 강자이다. 법률과 경제 지식은 그가 가는 길에 레드카펫을 깔아 주었다. 정권과 손을 잡았다. 책을 써서 돈 버는 일에도 이용했다.
사람이 자유롭고 서슴없이 말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고민해 보았다. 결국 <돈>이었다. 그는 복권투자로 부를 축적하고 군량사업과 대미통상무역,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뛰어들었다. 영민하고 총명한 그는 신이 내린 지독하게 운 좋은 자였다. 평민출신의 유럽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다. 교황에게도 서슴없이 비난의 편지를 썼다. 평생 잘 살다 갔다. 그는 활달했고 방탕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파급력이 큰 자! 멋진 인생이다. 돈이 많으니까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아부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사상계몽과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돈으로부터의 자유 때문이었다. 자유롭게 쓰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갔다. 마녀사냥을 혐오했다. 교황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등등 인생을 볼테르처럼 살다가 볼테르처럼 갔다.
행복한자는 끝도 없이 행복하고 불행한자는 지하갱도까지 파고 들만큼 불행하다. 인생이 그렇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내가 변호하고 싶은 건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기의 천재가 나타나 모든 자연 현상을 공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생을 설명하진 못할 것이다. 관성의 법칙이나 운동의 법칙처럼 운명의 공식을 쏟아 놓는 그날이 온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행복이나 불행의 법칙을 증명하진 못할 것이다. 왜 극도로 불행한자는 점점 더 불행해지고 극한의 행복한 자가 더 행복해지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문은 하나의 경첩으로 이어져 있으며 양면에 손잡이가 있다. 내가 어느 쪽을 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내가 살아 이 땅 위를 걷고 있지만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순간이 더 많다. 감옥에 갇혀 본 자만이 감옥밖의 세상을 알 수 있다. 2주간 죽음의 감옥에서 수시로 생혈을 뽑혀야 했다.
강제로 끌려가 샤워실도 없는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주 동안 격리 되었다. 세상은 욕하는 자들로 넘쳐났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인생은 골로 갔다. 입을 여는 순간 지겨운 코로나 얘기 그만하라고 한다. 3년
이 지났다. 볼테르가 환생해 판을 뒤집고 심판할 수 있기를 희망이 없는 요즘 생각해 본다. 내 소리가 지겨우면 제발 진지하게 해결책을 찾아주시라.
흰핏톨, 붉은 핏톨이 분리되었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길이나 솟구치고 온 땅이 흔들리고 꽃비가 내렸다. 차라리 나도 순교할걸 재수 없이 살아 생육신처럼 떠돈다.
내가 나대는 이유, 현재는 미래를 잉태한다. 5년마다 온갖 질병들이 새로 나타나는데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마녀 사냥의 환생은 다른 갑옷을 입고 새로운 말을 타고 첨단 무기를 지니고 계속될 것이다.
아들 앙투안느의 죽음과 칼라스의 근거 없는 소문에 볼테르의 펜은 길잡이가 된다. 프랑스 지식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여론은 들끓었고 다시 조사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비나 관용이 가식이라고 하지만 정녕 그 가식이 누군가에게 칼을 겨눈 적이 있었던가?
답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질문으로 판단하라!
볼테르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K방역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
질병 감염법이란 게 있었던가?
자비나 관용이 정녕 있었던가?
동선공개에 자신도 십자가에 달릴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누구 하나 지금까지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힘듬으로 덮어가려는 자?
국가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자?
그날 손이 장애인 내가 벌초를 했을까?
정치인 최고의 덕목은 무엇인가?
힘에 의한 지배가 난무한다면 짐승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왜 아무도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전 국민을 선동질해 벼랑 끝으로 몰고 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현대판 볼테르는 누가 될 것인가?
살아있는 지성이나 양심을 가진 권력자가 세상에 존재하는가?
코로나를 내가 만든 것인가?
2020년 10월 8일 난 살았던가? 죽었던가?
그는 프랑스 영웅들의 묘지인 판테온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별처럼 묻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