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빙판길이 녹아 내려 서둘러 길을 나섰다.
또다시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었던지라 눈속에 갇혀 지낼 동안에 필요한 먹거리 비축하러 나서는 길.
그것도 너무 이른 아침이면 여전히 결빙 구간이 남아있을까 싶어 10시가 지나서 슬슬 운전대를 잡고
울퉁불퉁 제멋대로 길을 지나고 나니 오호라, 마을 입구는 이미 싸악 정리된 채 뽀샤시 도로가 나타난다.
젠장, 마을에서 무설재 까지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건만 어찌 도로가 이다지도 차이가 난다냐 싶어 욱 하다가
예약된 시간 오후 2시 까지 돌아오기 위해 서둘러 운전을 하고 미친 년 널 뛰듯이 바람을 가르고 이런 저런 볼 일을 마친 후
마악 집으로 들어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자니 "지금 출발이에요. 30분 안에 도착할 거에요" 라는 소식이 날아든다.
급하게 점심을 먹고 후다닥 차실로 들어서자 마자 뒤이어 찾아든 그녀들이 왁자지껄 들어서더니만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기에 바쁜 모습을 보자니
문득 얼마 전에 딸과 함께 대만 여행을 하면서 급하게 구입했던 셀카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쩔쩔 매던 생각이 나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구입하는 것 보다 얼결에 사느라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까지 포함하여.


어쨋거나 천안에서 찾아든 조차순님의 잦은 발걸음 덕분에 그녀의 친구들까지 먼 길을 납셔 무설재 까지 찾아들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요
덕분에 눈 내린 산 골짜기 적막강산이 모처럼 활기차고 화기애애하였다.


그녀들, 전남 영암군 미암면 미암초등학교 동창생들이란다.
이런 저런 연유로 타향살이 시작한지 오래도록 여전히 끈끈한 소싯적 인연을 이어오고 그중에서도 또 온전히 마음을 나누고 속엣말을 할 수 있는 사이까지 이르르니
친구라고 해서 누구나 죄다 친구가 될 수 없으며 무늬만 친구인 친구와는 급이 다른 LTE급 친구 쯤 되시겠다.
게다가 입만 열었다 하면 은근짜로 좌중을 휘어 잡는 친구 하나쯤은 존재하게 마련이니
그 친구가 들려주는 세상사 거칠 것 없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넋을 빼고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니 정말 웃다가 돌아가실 일 쯤 된다는 말씀.

* 한참 전에 천안 단국대 글쟁이들과 함께 찾아들기 시작하여 그 이후로 잦은 발걸음을 놓으며 이런 저런 세상사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나누며 한층 친밀해진 조차순님, 그녀 덕분에 쓸쓸한 계절이 따스했고 그 따스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동안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어려움을 극복하게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날을 보상받으며
자신을 위한 삶을 더 많이 준비하는 중이라는 그녀는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에 빠지기도 하고 온갖 명산을 휘저으며 산행을 하며
산 기운을 받기도 한다는데 잊을 수 없는 비오는 날의 새벽 지리산 종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는 것.
말하자면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비오는 새벽에 헤드랜턴 하나로 의지하며 지리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공포가 사라지고
높고 험한 실체가 보이는 산세를 바라보며 오르는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말씀인데 희미한 그림자가 주는 안정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암튼 생각이 많아 하루의 일상을 조용히 반성하며 잠을 청하는 그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어서 좋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녀의 시상詩想이 어디로 부터 기인하는지 알겠다.
** 이미 친구 따라 강남 온 처지로 거처지 수원에서 딸과 찾아들기도 했고 저절로 친구와 동행을 하기도 했던 김미라님,
갈수록 한결 좋아보이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괜시리 흐뭇하다.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애쓰는 노력파이기도 해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러 미리 앞선 걱정이 그녀를 옭아매기도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라 여전히 쿨한 그녀가 근사하다.

* 그저 사람 좋아 보이고 눈웃음이 매력적인 조숙향님은 의외로 옹골찬 직장인 되시겠다.
이미 14년 차 톨게이트 통행료 담당자로서 하루 24시간을 함부로 쓰거나 허투로 쓰는 법 없이 당차게 활용 중이라는데
3교대 근무 직장은 물론 가정생활과 자신의 취미 일상까지 거뜬히 소화해내는 가정주부 철인 3종의 모범이 되겠다.
그중에서도 전국의 명산은 죄다 섭렵하고도 모자라 사철마다 색다른 철철이 산행하기를 즐겨하기도 하고 나름 정서적 함양을 위해
남편과 틈틈이 데이트 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그녀가 쏟아낸 말 중에서도 압권은 그녀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별별 사건들 되시겠다.
하긴 우리에게 톨게이트란 그저 지나온 길에 대한 통행료를 내는 곳 만으로 알았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에 대한 개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심히 다닌 기억 밖에 없어 그녀가 전해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들으면서는 기절할 뻔 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티켓을 건네고 받아 찍고 다시 건네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초.
그 3초 안에 선물을 주는 사람, 살며시 쪽지를 건네는 사람, 커다란 박스 안에 여자에게 필요한 용품을 건네는 사람 등등 일일이 거론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는데
와중에도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멋진 사람은 눈에 들어온다는 말씀이고보면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
가장 압권은 톨게이트에도 바바리맨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살다살다 별 잡스런 인간들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러나
뒤집어지도록 웃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듣다보니 이제는 톨게이트 통행료 내는 장소를 무심히 지나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거 아세요? 900원을 주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으잉? 이건 또 뭔 얘긴가 싶었더니 그 구간 통행료 900원을 내면서 기세등등하게 권위적으로 나오는 사람,
반말하는 사람, 아랫 것 쳐다 보듯이 멸시하는 눈빛으로 보는 사람, 기타 등등 온통 대접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투성이라는 것.
암튼 지면에는 죄다 올리지 못할 이야기꺼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 한 편은 되겠다 싶었으며 여전히 건재하는 바바리맨들의 실체를 듣고 나니 참 개탄스럽고
정신질환 내지는 사이코라 불리우는 병명 뒤에 숨어서 추접스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미친 것들이 어째 거리를 활보하는지 기가 막히다가
그 웃지 못할 경악스런 일들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했으나 실제석 상황을 듣다가 보면
순간에 전해져 오는 웃음발은 그야말로 명약 중에 명약이라, 그놈의 바바리맨 덕분에 실컷 웃었다 는.
** 친구의 부름에 열일 젖혀 놓고 서울에서 날아왔다는 그녀 배예순님.
조신한 모습과 언어 구사력이 딱 현모양처감으로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역시 맏며느리.
그러다 보니 시댁의 온갖 허드렛 일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셋이나 되는 시누들과도 잘 지냄은 물론 시어른들 섬기기도 기본이라 참, 잘 살아내는 인간 군상의 표본 쯤 될 터.
그러다 보니 저절로 따라 붙는 일복은 당연지사요 한 3년 전 쯤 김장 하기 퍼포먼스는 일생을 두고 살아가는 내내 잊혀지지 않을 에피소드라는데
사연인즉은 천안의 배추밭에 있는 배추를 " 600원씩 여기서 부터 저기까지 몽땅 뽑아가라"는 땅 주인의 말에 얼씨구나 웬 횡재냐 싶어
마구잡이로 배추를 뽑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겨 가져가라는 곳보다 더 많이 "여기부터 저기"를 행사하게 되었다는 말씀.
하긴 손으로 지적한 "여기 부터 저기' 란 적당히 알아서 가져가라는 말이었던 터라 그만 욕심이 과해져 한 500포기 넘게 배추를 뽑았더라는 것.
하지만 아뿔사 되시겠다....뽑을 땐 좋았지만 손질하고 절이고 속을 넣고, 일은 끝도 없고 배추는 줄어들지 아니하고
그래도 기어이 완료한 김치는 여섯 집의 김치통 마다 꽉 꽉 들어 차 더 이상 넣을 곳도 없어 아는 지인들에게 죄다 전화를 하여
"배추 절인 것 드릴 테니 김장하시라"고 닦달하여 전부 택배로 보내주었다는 말에는 완전히 뒤집어 질 뻔 하였다.
보내는 것도 문제지만 솔직히 택배료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말이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는 말씀이다,
그러게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느니라 라는 말의 실체를 보았다는 이야기.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일단 무설재에 입성을 하면 시간 도독이 난입을 하여 본인도 모르는 시간을 거저 빼앗아 간다는 사실을.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낮은 산 뒤로 숨었고 먼 길 나설 그녀들의 마음을 바빠질 수밖에.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다냐.." .툴툴대던 그녀들이 간만에 엔돌핀 팍팍 오르는 폭풍같은 웃음을 선물로 주고 돌아갔다.
나름 조촐한 망년회를 하고 다담을 나누기 위해 일부러 찾아든 그녀들의 마음이 고.맙.다....나머지 톨게이트 시리즈는
다음으로 기약하며 되돌아서는 그녀들에게 무사 무탈을 빌어 주었다.
첫댓글 ㅎㅎㅎ 며칠 속시끄럽게 사느라 못들어 왔더니만 그런 사연들이~?
참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많은 이야기들이~? ㅎㅎㅎ 요지경 속이네요~! ㅋㅋㅋ
그러게나 말입니다.
힌반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들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