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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무엘상 17:1-58
오늘은 6 25 73주년 주일입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전쟁을 겪어 보았지만 대부분은 625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르는 전후세대들입니다. 625전쟁은 북한 공산주의자인 김일성이 자유 대한민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남침한 전쟁으로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체재전쟁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73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핵을 사용해서라도 남한을 공산화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란 엄밀한 보면 마귀에게서 나온 사상으로서 너무도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할 수 있다고 속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사상에 속아서 공산주의를 지지하였고 마귀 세상으로 끌려들어가 살육당하고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런 적화야육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요? 겁을 먹고 떨며 지혜롭게 타협해야 합니까 아니면 담대하게 fighting 정신(도전 정신)을 가지고 마주 대해야 합니까? 다윗은 비록 소년일지라도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그는 갑옷도 없었고 칼도 없었고 단창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였을까요? 오늘 말씀 통해 다윗의 믿음에서 나온 용기를 배워 우리 한국교회도 적화야욕에 담대하게 도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시 전쟁은 서로 진을 치고 그 진을 대표할 만한 용사가 나와서 싸움으로 승패를 결정하였습니다. 먼저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골리앗이 선봉장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으로 약 3m가 되는 거구였습니다. 거기에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습니다. 비늘갑옷은 철로 물고기 비늘처럼 장식한 옷인데 그 갑옷의 무게만 해도 약 57Kg이 되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의 무게만도 7Kg이나 되었습니다. 또 그 앞에는 방패든 자가 행하였습니다. 그는 완전무장한 탱크같았습니다. 그의 모습만 보더라도 기가 죽고 두려워 전의가 꺾였습니다. 이런 그가 나와서 우뢰 같은 목소리로 이스라엘 진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우하하하!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그는 조무라기 같은 녀석들이 겁도 없이 싸우려 한다고 멸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소리로 계속하여 말했습니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이 말에서 보면 골리앗이 싸움을 거는 목적은 이스라엘을 종 삼고자 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싸움에 지면 치욕적인 종노릇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싸우고 싶지 않고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싸우지 않으면 패배하여 죄의 종이요, 사단의 종이 되며 마귀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16절을 보면 골리앗이 40일 동안 조석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위협했습니다. 그가 당장에 쳐들어오지 않고 계속 엄포만 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고도의 심리전입니다. 두려움을 심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게 됩니다. 사단도 언제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습니다. 우리를 직접 해치지는 않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두려움을 심습니다. 두려움에 잡히게 되면 싸울 힘을 잃고 드러눕게 됩니다. 중풍병자와 같이 무기력하게 되어 손발을 놀릴 수 없게 됩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작전에 말려들어 놀라며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24절에서는 골리앗을 보기만 해도 심히 두려워서 도망쳤습니다. 이들은 싸워 보기도 전에 골리앗의 위협에 위축되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부전패했습니다. 사울은 지도자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목숨을 내놓고 싸우도록 군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벌벌 떨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합심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을 그 때 다윗은 아직 나이어린 소년 이였습니다. 그는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아버지의 양을 치고 심부름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전쟁터에 나오게 된 것은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형들에게 달려가 문안하고 있을 때 전과 같이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23). 이때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 대신 큰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26절을 보면.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그의 분노는 젊은 객기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는데서 오는 영적 분노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받고 모욕 받을 때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을 때 분노합니다. 이런 영적 분노는 소년 다윗으로 거대한 골리앗에 도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먼저 사울을 위로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이때까지 누구하나 싸워 보고자 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윗이 나서서 싸우겠다니 사울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황당했습니다.
사울에게 필요한 사람은 다윗과 같이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평소에는 그 진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때, 다른 사람이 다 두려움에 잡혀 실족할 때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다윗의 도전정신은 가상하지만 사울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아직 소년이요,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전쟁에 단련된 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사울에게 자신이 능히 이길 수 있다면서 근거로 가지고 설명하였습니다. 34절과 35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고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우리는 다윗의 말에서 그의 도전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였습니다. 다윗은 의무감으로 치지 않았고 적당히 돌보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과 충성심을 가지고 돌보았습니다. 그의 양들에 대한 사랑은 위기에 부딪쳤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그가 양을 칠 때 사자나 곰과 같은 사나운 짐승들이 나타나 양들을 물어갔습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기겁을 하고 피했을 것입니다. 사자나 곰과 싸운다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사자나 곰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주먹으로 그것들의 눈통을 쳤습니다. 그러면 사자나 곰은 새끼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자나 곰은 화가 나서 덤벼듭니다. 그러면 다윗은 수염을 잡고 사자나 곰을 쳐 죽였습니다. 다윗의 이런 도전정신은 그의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36,37절을 보면 그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골리앗에게 또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나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전에도 하나님께서 도우셨으므로 현재도 틀림없이 도우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가 이 믿음의 눈으로 보았을 때 골리앗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거대한 모습은 거대한만큼 맞추기 쉽게 보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눈으로 볼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 믿음으로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믿고 거대한 골리앗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다면 그 역시도 골리앗을 보고는 두려워서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았을 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싸우고자 도전하였습니다. 그에게는 fighting spirit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서 싸우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혔습니다. 다윗은 칼을 군복 위에 차고 시험적으로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맞춤복이 아니라서 어색하고 익숙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벗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평소 입던 복장 그대로 손에 막대기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런 다윗을 볼 때 완전무장한 골리앗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하고 무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자생활을 하면서 남몰래 갈고 닦은 물매였습니다. 이것은 골리앗의 약점을 파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가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골리앗에게 도전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평소에 갈고 닦아야 할 비장의 물매는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2절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악령과의 싸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10:3-5절에서 우리는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사상과의 싸움임을 증거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단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힘과 지혜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엡6:17,18에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것과 기도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1) 특히 말씀공부는 거대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쾌락주의의 골리앗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공부의 위력은 싸워 본 사람만이 압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말씀공부의 돌을 던지는 훈련을 통하여 세상의 흐름을 이겨가고 있습니다. 2) 또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는 누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으므로 마치 시냇가에 널려 있는 조약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말씀공부의 물매, 기도의 조약돌을 던지는 연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비장의 무기를 사단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하겠습니다.
골리앗은 오랫만에 이스라엘 진에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나온 것을 보고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점점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는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홍안의 미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겨야 싸울 맛이 나는데 미소년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으니 기가 찼던 모양입니다. 그는 성질이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그러나 이에 대한 다윗의 응전을 보면. 45-47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전쟁에서 무엇을 의지하는가 하는 것은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과 자기 힘을 의지하고 나아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은 골리앗과 같이 눈에 보이는 돈과 의술과 자신의 건강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골리앗이 의지하는 칼과 창과 단창은 겉으로 볼 때 힘이 있는 것같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무력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전쟁의 승패가 전력이나 무기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때만이 승리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이 싸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만방에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살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죽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나의 생명처럼 귀중한 시간과 물질과 진심을 드려 힘든 영적 싸움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까?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의 싸움의 동기는 순수하고 분명하였습니다.
설전이 끝나자 다윗은 곧 골리앗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는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돌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혔습니다. 펴옹! 딱! 퍽! 이 세마디로 싸움은 너무나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 거대한 체구가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재빨리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쓰윽 베었습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승리는 1회전에 KO로 끝나 버렸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도전하는 파이팅 스피릿 때문이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웠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시댁의 안믿는 부모님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도 앞으로 걸릴 것입니다. 그 외에도 외적인 골리앗보다 더 힘세고 싸우기 힘든 골리앗은 내 속에 역사하는 불신과 교만과 거역하는 마음도 골리앗들입니다. 이런 골리앗들이 항상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내면에 자의식과 패배감, 운명주의적인 생각을 심고 싸우기를 포기하게 합니다. 그러나 실상 이런 골리앗들은 믿음으로 부딪쳐서 싸워 보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야고보서 4:7절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fighting spirit 입니다. fighting spirit을 가지고 믿음으로 도전할 때 사단은 놀라서 도망갈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 자체가 싸움입니다. 시부모님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남편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 두려움에 지면 사단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싸우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도전하여 어린 양들을 사자나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고 두려움을 심는 골리앗의 머리를 베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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