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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호정
관심
조수미를 들으며 알 수 있습니다
🔹큰 성량과 비교해 들어보기
🔹말하는 목소리와 함께 들어보기
🔹플루트 보다 더 플루트 같은 목소리
🔹조수미의 특기, '점점 작게' 들어보기
💕부록: '자 대고 그은 콧날'에 반했던 첫사랑
믿을 수가 없군. 네 노래는 꼭 깨끗한 물 같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한 말입니다. 1987년 25세이던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고 나서죠. 죽음을 두 해 앞둔 카라얀은 앞날을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조수미를 봅니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남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1986년 이탈리아에서 데뷔한 조수미는 카라얀, 보닝, 솔티, 가디너, 메타 같은 거장 지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앙포토
‘깨끗한 물 같다’는 말, 참 정확합니다. 우리는 보통 다음과 같은 표현에 익숙하죠. ‘신이 내린 목소리’ 또는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음성’. 카라얀이 조수미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찬사입니다.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신이 ‘무엇을’ 내렸다는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그보다는 ‘깨끗한 물’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입니다.
이제 조수미를 들으면 왜 그런지 알게 됩니다. 카라얀이 들었던 그 노래, 바로 그 부분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3분 44초부터 재생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왜 하필 물인지, 음악을 들으니 알 수 있죠? 가볍기 때문입니다. 신이 조수미에게 가장 먼저 내린 것은 목소리의 가벼움, 또 밝음일 것 같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높은음을 내는 능력’만이 아니고요.
조수미는 두텁고 굵은 목소리와 거리가 멉니다. 음악학자 고(故) 이강숙의 1993년 비평을 보겠습니다. ‘조수미의 목소리는 굵다기보다는 가는 편이다. 가늘고 곱지, 굵고 기름지고 폭이 넓지는 않았다.’ 약간의 아쉬움도 보입니다. ‘소리가 좀 더 굵었더라면 사람의 가슴을 더 울렸을 것 같다.’
사실 오페라 무대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어야 하는 성악가에게 가볍고 가는 목소리는 약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조수미는 1980년대부터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을 도맡으며 경력을 쌓았죠. 카라얀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조수미와 오페라 녹음을 준비했고, 조수미는 밀라노·런던·뉴욕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지휘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어떤 매력 때문일까요?
대포 소리 이기는 맑고 밝음
빼놓을 수 없는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청중을 충격에 빠뜨렸던, 조수미의 ‘밤의 여왕’ 두 번째 노래입니다. 특별히 소리가 우람하고 폭이 넓은 성악가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역할은 그런 소프라노들이 주로 맡아 인정을 받아 왔거든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소리가 크고, 고음도 잘 내는 소프라노의 노래와 비교해 들어보세요.
〈35초부터〉
〈33초부터〉
밤의 여왕은 여기에서 ‘엄마의 분노’를 표현해야 합니다. “내 딸아, 복수해라! 그자를 죽여라!” 여기에 어떤 분노가 어울릴까요? 땅이 울리듯 무거운 분노? 신경질적으로 쿡쿡 긁어대는 엄마의 격노? 중요한 점은 이 부분이 스타카토라는 겁니다. 끊어서 부르라며 모차르트가 찍어 놓은 작은 점들을 보면, 조수미의 금속성 가득한 분노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의 밤의여왕 두번째 아리아. 높은 음에 찍혀있는 스타카토가 소프라노를 난감하게 만든다.
대포를 쏘듯 풍성한 소리에 맞서서 조수미는 날카로운 무기로 정곡을 찌르며 등장했습니다. 1989~90년에 ‘밤의 여왕’ 녹음만 세 차례, 그것도 서로 다른 음반사에서 했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던 거장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다른 음반사에 간곡한 편지를 쓰고 조수미를 밤의 여왕으로 '빌려 온' 스토리도 유명하죠.
밝게 말하는 재능
밝은 소리가 재능입니다. 모든 성악가가 자신이 가진 소리에서 출발하죠. 조수미도 그렇습니다. 평소 말하는 목소리에 어두운 면이 없습니다. 굉장히 밝죠.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할 때도 음높이가 높은 편이다. 또 말하는 소리가 납작하지 않고 잘 띄워져 있다.” 누구보다 신경질적인데 쨍하게 밝은 밤의 여왕은 바로 이런 가진 소리가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겠죠.
이처럼 조수미는 말과 노래 사이의 차이가 작은 성악가입니다. 프랑스 지휘자이며 오페라 무대에 자주 서는 아드리앙 페뤼송은 조수미의 노래 중에 말이 섞여 있는 부분을 주목합니다. “대중음악과 같은 노래, 말로 하는 대사, 그리고 극도로 높이 올라가는 음계, 화려한 불꽃놀이가 한데 있는 노래가 있다. 조수미는 이 서로 다른 것들을 이음새 없이 전환한다.” 그 노래는 바로 이겁니다.
〈3분 15초부터〉
노래하는 목소리와 말하는 목소리가 비슷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페뤼송은 “조수미의 색채는 어디에서나 균일하게 유지된다. 낮은음, 중간 음, 높은음 모두에서 자신만의 색채가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음을 부르는 능력은 조수미를 설명하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고음을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고음에서 어떤 색깔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조수미는 뭐니 뭐니 해도 플루트입니다. 가벼운 금빛의 이 악기와 똑 닮은 소리를 냅니다. 조수미가 플루트와 경쟁하는 부분을 들어보시죠. 어느 순간엔 플루트보다 더 플루트 같습니다.
〈3분 45초부터〉
'그 높은음에서 무엇을 할 줄 아는가'가 또 다른 관건입니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높은음에서 소리를 줄이는 데크레셴도에 주목하라”고 했습니다. 보통은 고음에서 힘을 줘 소리를 지르게 되죠. 그게 더 효과적이고, 어떻게 보면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조수미의 주특기는 그럴 때 힘을 빼는 겁니다. 소리를 줄이지만 중심은 꽉 채워 높은음을 끌고 갑니다. 어려운 기술이죠. 청중은 집중하고, 성악가의 감정은 절절하게 전해집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입니다.
〈5분 30초부터〉
신이 내린 관리력
청중은 신기해하지만, 성악가들은 큰 한숨을 쉬며 듣습니다. 훈련하고 연마한 긴 시간을 신이 내린 재능보다 먼저 보기 때문이죠.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조수미와 함께 공연했던 뮤지컬 배우 카이는 “처음부터 잘 설계된 등산로”라는 비유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길도 있지만, 철저하게 계획하고 매일매일 공사해서 길이 된 곳도 있다. 조수미의 노래는 후자다.”
조수미는 정확한 절대음감, 기분 좋도록 가볍게 타고난 소리를 계획적으로 갈고 닦는 성악가입니다. 목을 망칠까 봐 평생 찬물을 마시지 않았고, 감기에 걸릴까 봐 젖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며, 뒤풀이 파티에 참석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무엇보다 조수미의 음성에서 청중은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어려운 테크닉이 아주 쉽게 해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조수미를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이아경은 “스스로 끊임없이 관리하고, 무대는 놀랄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한다. 철저하게 준비돼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관객도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거죠.
이 밖에도 청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쇼맨십, 깊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적극성 같은 것들이 그를 지금의 조수미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뮤지컬 음악, 가요, 월드컵 응원가까지 용감하게 불러 팬층을 넓혔고요.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합니다. 해외에서 오페라 무대에 주로 섰던 성악가가 이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죠.
1987년 카라얀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정말 영리하구나! 정말이야. 센스가 있어!” 신이 그에게 무엇을 내렸는지 아시겠죠? 가볍고 밝은 목소리, 그걸 잘 사용하는 영리함, 마지막으로 노력하는 끈기까지. 신은 가끔 제품에 사용 팁까지 결합해 한꺼번에 주기도 하나 봅니다.
김경진 기자
유명짜했던 입학과 퇴학
학교에 들어갈 때도, 떠날 때도 대단했다. 선화예고에서 성악을 했던 조수미는 1981년 서울대 음대에 역사상 최고 점수로 수석 입학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조수미의 K군’ 스토리가 곧 시작된다. 1학년 3월에 음대 식당에서 경영대학생 K군을 마주친다. ‘자를 대고 그은 듯 선이 분명한 콧날, 상아색 피부. 그 옆모습에 내 시선이 멈춤과 동시에 내 가슴도 멈췄다.’(저서 『조수미의 아름다운 도전』중에서)
조수미는 쾌활하고 적극적인 성격답게 다가갔고, 열애 끝에 학과 꼴찌를 차지하게 된다. 수업은커녕 시험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열렬한 사랑이었다. 학점은 수직 낙하했고, 조수미는 학과 52명 중 52등을 하면서 당시 시행 중이던 졸업정원제에 등 떠밀리듯 서울대를 떠나 로마로 향했다. 단돈 300만원을 들고 급하게 떠난 유학이었다고 한다. K군은 둘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스토리를 낭독한 카세트테이프를 유학 선물로 건넸다.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입학시험도 떠들썩하게 치렀다. 입학시험 날 반주자가 몸이 아파 오지 않았다. 조수미는 자진해서 학생 60명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조수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가야금, 그림, 무용을 배웠다. 특히 혹독한 연습 과정을 견뎌야 했다. “네 살부터 이유도 모르고 하루 8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며 어머니를 원망했었는데, 이날 그 연습이 빛을 발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피아노를 유난히 잘 치는 성악가로 꼽힌다. 정확한 음정, 기악적인 기교의 근원을 피아노 실력에서 찾을 수도 있다.
조수미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세계 무대로 튀어나왔다. 그 사이 K군은 한국에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로마로 온 지 4개월 만에 편지로 이별 통보를 받은 조수미는 독한 마음으로 음악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조수미는 자신의 책을 비롯해 곳곳에서 K군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한다. ‘그와 사랑하면서 나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폭발적이고 섬세한지 배웠고, 그와 이별하면서 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와의 사랑은 내 인생의 스승이었다.’
김호정의 더클래식 1~7회
에디터
관심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