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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섬들아, 내 앞에서 잠잠하라. 백성들로 힘을 새롭게 하게 하라. 그들로 가까이 오게 하고, 그들로 말하게 하라. 우리가 서로 가까이하여 판단하자. 1)
Keep silence before me, O islands; and let the people renew their strength:
let them come near; then let them speak: let us come near together to judgment. 1)
서로 판단함에 있어 가까이 오게하여, 그들이 말하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에는 그로하여금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말을 하게 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럴때 스스로의 과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은 그것을 깨닫는 방법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앞에 펼쳐져 있는 책들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2절
섬들은 민족들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이고, 앗시리아의 교만과 그들의 말실수로 인한 멸망과 이스라엘에게 다시 주어지는 은혜의 시기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힘을 새롭게 주시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살펴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앗시리아의 멸망은 랍사케의 입방정으로 인함이고, 이것은 골리앗의 입방정과도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개입을 즐겨하지 않으시나 그의 존재의 부정을 받으시면 자신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개입하시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면서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력한 앗시리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들은 당시의 사람의 계산으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판단하여 본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눈으로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누가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 민족들을 그 앞에 주어서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가 그들을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날아가는 그루터기 같게 하였도다. 2)
Who raised up the righteous man from the east, called him to his foot,
gave the nations before him, and made him rule over kings?
he gave them as the dust to his sword, and as driven stubble to his bow. 2)
위 말씀에서 the east는 지금의 아시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지역 지금의 이란 지역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은 앗시리아의 산헤립일 수 있고, 느부캇넷살일 수 있습니다. 이방인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쓰임을 받으면 그들은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죠. 동방에서 온 의인들에게 민족들을 그들의 칼앞에 먼지가 되게 하시고, 그들의 활에 표적이 되게 하심입니다.
즉 이스라엘 근방의 민족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동방의 의인을 불러들이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민족들이 침략대상이 되도록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징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시작과 끝인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이 없는 것은 그분이 시작과 끝이시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징계로 때로는 은혜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들을 쫓아가서 자기 발로 가 보지 못했던 그 길을 따라 안전하게 지나갔도다. 3)
He pursued them, and passed safely; even by the way that he had not gone with his feet. 4)
위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유대 근방의 민족들을 징계하심의 방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방에서 일어나 침략하는 세력이 한번도 온적이 없는 유대땅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안전하게 그 지역의 거민들을 추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누가 그 일을 행하였으며, 태초부터 세대들을 불렀겠느냐? 나 주, 곧 처음이요 또 나중에도 함께할, 내가 그니라. 4)
Who hath wrought and done it, calling the generations from the beginning?
I the LORD, the first, and with the last; I am he. 4)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의 징계하심에 있어서도 이렇게 개입하심을 스스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에 우연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곧 시작과 끝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매일 매일의 순간에 하나님은 지켜보시고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하나도 세시는 분임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매일의 삶에 그분이 지켜보고 측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나니
마태복음 10장 30절
우리의 모든 일에 의미없는 일은 없습니다.
아침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세고 계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섬들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였고, 땅 끝들이 무서워하며 가까이 다가왔도다. 5)
The isles saw it, and feared; the ends of the earth were afraid, drew near, and came. 5)
isle 뜻① 섬 ② 제도
섬들과 땅끝들은 곧 모든 민족을 의미합니다. 심판은 이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교를 믿건 힌두교를 믿건간에 모두 하나님앞에 서게 됩니다.
그들이 각기 자기 이웃을 도우며, 자기 형제에게 말하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였도다. 6)
They helped every one his neighbour; and every one said to his brother,
Be of good courage. 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서로도와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기에 그가 주시는 은혜도 있고 상급도 있지만 징계하심도 있고, 형벌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시기도 하시고 심판자이십니다.
우리는 심판자는 될 수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도울 수 있고 용기를 복돋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을 기뻐하기에는 그 고통이 너무나도 큽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그러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도 원하셨고 그래서 우리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웃과 달리 형제는 믿음의 길에 있는 동료이므로 그에게는 courage, 용기를 가지라. 담대하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수는 금 세공장이를 격려하며, 망치로 다듬는 자는 모루치는 자를 격려하여 말하기를 "땜질할 준비가 되었도다." 하니 그가 못들로 단단히 고정하여 그것이 흔들리지 않게 하였도다. 7)
So the carpenter encouraged the goldsmith, and he that smootheth with the hammer him
that smote the anvil, saying, It is ready for the sodering: and he fastened it with nails,
that is should not be moved. 7)
anvil 뜻① 모루 ② …을 모루에서 단련하다 ③ 침골
sodering 땜질로 추측됨
목수와 금 세공장이는 다른 직업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웃들이 각자 지체로 다름을 의미한다고도 보여집니다.
각기 다른 지체가 협동하여 한가지의 목적을 위하여 준비하고 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다르지만 다투지 않고,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가 바로 이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되어 생명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19절에 우상을 만드는 세공장이와 여기서의 세공장이는 같지만 본질로는 완전히 다릅니다. 마치 성전을 건축하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가 택한 야곱, 내 친구 아브라함의 씨야, 너는 나의 종이라. 8)
But thou, Israel, art my servant,
Jacob whom I have chosen, the seed of Abraham my friend. 8)
내가 너를 땅 끝에서부터 취하였고 거기의 우두머리들로부터 너를 불러서 네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였고 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하였노라. 9)
Thou whom I have taken from the ends of the earth,
and called thee from the chief men thereof, and said unto thee,
Thou art my servent; I have chosen thee, and not cast thee away. 9)
O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임이라. 내가 너를 강건하게 하리라. 정녕, 내가 너를 도우리라. 정녕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높이리라. 10)
Fear thou not; for I am with thee: be not dismayed; for I am thy God:
I will strengthen thee; yea, I will help thee; yea, I will uphold thee with the right hand of my righteousness. 10)
이사야 41장 1절 ~ 10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민족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도 이러한 약속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명을 받은 민족이고, 그들의 사명의 대상은 곧 모든 민족에게 입니다. 그들의 역사가 곧 하나님을 드러내는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별을 쫓아 예루살렘으로 온 것처럼 우리도 의로 높이 들려진 이스라엘이라는 사명의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쫓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할을 위하여 힘을 주시고 그들이 힘을 내어 이 공중권세가 사탄에게 넘어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로 서는 것만이 그들의 사명이 아니라 그들이 쓰러지고 실패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는 그들의 사명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아슈케나지와 세피라딕으로 나눠지며 10%의 세피라딕이 진짜 유대인이며, 우리가 아는 성공한 유대인들은 대부분 아슈케나지로 이들은 진짜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소수의 세파르딕 유대인들로 이뤄질 것이며, 그 약속은 동시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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