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연습과 말씀의 착념
디모데전서 4:6~16
요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디모데전서 4:7)
찬송가 420장(너 성결키 위해)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감옥에서 갇혔다가 석방되어 그가 세운 여러 이방 교회들을 순회하며 가르칠 때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가면서 젊은 동역자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남도록 하여 그 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치며 목회하는 중책을 맡겼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큰 교회였고 그 교회에는 악한 이리 같은 거짓 교사들도 넘보고 있었고 그 교회의 장로들 중에도 삯꾼 목자도 일어나고 있어서 그 교회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는 매우 힘든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사도 바울의 당부가 엄중한 가르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이 담긴 단락인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라고 하시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나이가 당시 디모데가 약 30대 중반쯤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당시 약 60세 정도였을 것이니, 많은 차이가 납니다. 성도들 중에 장로들은 그 당시에 사도 바울 정도의 나이도 적지 않게 많았을 것이니 디모데는 너무 어리게 느끼고 사도의 대리자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의 연소함이 약점이 되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이나 성도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면서 여러 가지를 당부하였으니, 곧 경건에 이르도록 항상 자신을 훈련하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디모데전서 4:7)
경건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거룩한 신앙 인격의 향취가 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요 끊임없는 자기 부인과 영적 훈련을 통하여 내면 인격의 깊은 곳부터 주님의 인품이 배여 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늘 경건에 이르기 위하여 훈련해야 해야 했기에, 사도는 그렇게 경건에 이르기를 위하여 훈련하라고 엄중하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에 세속적인 탐욕이나 허영이나 자랑이 없고, 거룩하고 성결하고 의롭고 진실하고 착하고 온유하고 친절하고 사랑이 많고 진실한 주님의 내면 인격이 영글어서 그를 보면 마치 사도 바울을 본 듯하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본듯한 마음이 들어서 저절로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게 되어야 한다고 사도는 디모데에게 엄중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도 늘 우리 마음 속에 육체에 속한 교만과 욕심과 야망이 없고 거짓과 사심과 질투가 없고 거칠고 이기적이거나 거짓과 교활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진실하고 참되고 겸손한 자가 되도록 늘 자기를 성찰하고 십자가에 자기를 쳐서 못박아 옛 사람을 죽이고 성령의 열매가 우리 입술과 말과 생각과 행실에서 맺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가르치는 것이 화려하고 아름답고 선할지라도 그 가르침을 전하는 자의 삶에서 먼저 입증되는 열매가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늘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여, 생활 속에서 열매 맺도록 자신을 늘 쳐서 십자가에 못박으며, 성령께서 내 안에서 복스런 주님의 인품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주님과 성령께 내어 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사도가 디모데에게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늘 착념하여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쓰라는 것이었습니다. 13절에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당시에 로마 제국에는 스토아 철학이 유행하였습니다. 그 철학은 자기를 절제하며 고난을 견디면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자세로 가르쳤습니다. 신앙이 없는 입장에서 본다면 건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의 선비 정신 속에도 청빈하고 자기를 절제하는 소박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의 아름다움이나 혹은 그와 다른 방향에서 영적인 신비함의 체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영혼의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영혼이 구원받고 삶에서 참된 자유를 얻고 만유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험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진리의 가르침은 어디에서도 얻지 못합니다. 오직 진리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의 감동 감화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디모데에게 오직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라고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이 가르침의 사역을 계속하라고 명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의 말씀만이 영생을 주며 영원한 저주와 영벌의 심판에서 사람들을 살려내며 이 땅에서도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귀한 직분이 주의 종들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과된 엄중한 책무입니다. 이 귀한 책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여 이 일에 능통해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성경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이것을 전하며 가르치는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저희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불렀던 찬송 420장 “너 성결키 위해”라는 찬송의 영어 제목이 ‘Take time to be holy.’입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시간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성화의 진보를 위해서는 그 만큼 시간을 써야 합니다. 늘 자신의 내면의 옛 사람의 본성을 발견할 때 즉시 십자가에 못박으십시오. 힘써 회개하십시오. 늘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경건의 온전함을 추구하십시오. 그리고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구원의 진리의 말씀에 정통하십시오. 확신을 가지십시오. 세상의 모든 철학, 종교, 그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림자요 진리의 파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 진리의 복음을 더욱 사랑하여 깊이 알아가고 복음 안에서 부요함을 깨달으십시오. 그리고 이 복음과 함께 기꺼이 고난을 당하십시오. 그러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구원이 더욱 든든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듣는 자들도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