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백범 김구 선생의 가족사진. 앉아 있는 이가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왼쪽부터 백범의 맏아들 인, 백범, 둘째아들 신
위대한 인물 뒤에는 꼭 위대한 어머니가 있듯 백범 김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곽낙원(郭樂園)은 일찍이 기독교에 귀의하여 권사가 되었고, 신앙생활에 적극적이었으며 아들을 위해 평생을 기도했다. 그 어머니의 교훈과 신앙적 격려는 백범의 생애와 활동에 큰 격려와 뒷받침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을미사변 후 김구가 명성왕후를 시해한 무리 중의 하나인 일본 육군 중위 쓰지다(士田)를 죽인 후 살인범으로 체포되고, 서울로 압송될 때 모친께 기어이 목숨을 부지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내겠다는 결심을 말했다. 그때 대범한 그의 어머니는 “좋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려 줄 것이다. 하늘이 너를 살려 줄 것이다. 네가 그토록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면 나는 이제부터 안심이다. 너는 살아서 기어이 큰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백범을 끌어안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훗날 사지에서 백범은 살아났고 그 신앙적 확신과 기도는 마침내 이루어졌다. 이런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백범 김구는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물으시면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라고 말하겠노라고 했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또 이런 일화도 있다. 김구 선생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일본인 헌병이 한국 청년을 매수해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 청년은 얼마 안 가서 붙잡혔고, 사람들은 청년을 처형하기 직전에 김구 선생에게 데리고 왔다. “당신을 암살하려던 청년을 붙잡았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자 김구는 그 자리에서 이 청년을 용서해 주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청년을 붙들고서 “내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한국 청년을 여기서 만나니 실로 감격스럽다”고 했다. 자기를 암살하려고 권총을 들었던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서 기뻐하자 청년은 김구 선생의 인품에 감동되어 이후 독립군으로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헌신했다. 사람에 대한 이런 믿음도 어머니의 기도가 그의 삶을 다스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면 이 김구로 하여금 그 정부청사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하게 해주소서.” 이것이 김구 선생의 간절한 기도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본분을 낮추는 소박한 신앙을 민족애와 독립사상으로 승화시킨 누구보다 순수한 독립운동가였다. 백범 김구에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평생을 신앙적 확신과 기도의 힘으로 살아갔던 것이다. 기도하는 어머니를 둔 자녀들은 평생 어머니의 기도를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