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글밭] 2020.08.15(토) '광복절을 독립일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였읍니다.
1945년 7월, 독일 포츠담에 모인 연합국 대표들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을 치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거절합니다.
미국은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립니다.
1941년 12월 7일, 미국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한지 4년만입니다.
그래서 8.15 광복은 ‘도둑같이 왔다’는 표현을 이따금씩 합니다.
백성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사이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여 해방을 맞게 되었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의 독립과 관련된 회의를 소개합니다.
1943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진행한 ‘카이로 회담’이 있읍니다.
‘전쟁 후의 처리 문제’를 다루었는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해, 독일의 베를린 옆에 있는 포츠담에서 이를 다시금 확인한 ‘포츠담 선언’이 있읍니다.
8.15 광복절을 맞는 오늘, 잠시 그때의 주변 상황을 살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살펴 볼 일은 그때,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 김구의 심정’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항복’이 마냥 기쁘지만 않았던 백범 김구의 마음을요.
빼앗긴 나라 땅에서 일본군과 맞닥뜨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로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틀 후인 12월 9일, 선전 포고를 합니다.
1940년, 충칭으로 옮겨온 임정은 1년 전인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을 창설했으니까요.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총사령부의 단순한 체제로 출발을 시작한 셈입니다.
그 뒤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합류하면서 김원봉이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제대로 틀을 갖춥니다.
따라서 항일 독립전쟁은 ‘의열단 투쟁’에서 본격적인 ‘광복군의 독립전쟁’으로 바뀔 즈음이지요.
김원봉이 이끄는 충칭지역의 제1지대, 이범석이 이끄는 시안지역의 제2지대,
김학규가 이끄는 푸양지역의 제3지대로 편성했으니까요.
특히 제2지대를 중심으로 빼앗긴 우리 땅에 침투할 비행대도 편성할 정도였으니까요.
드디어 빼앗긴 우리의 땅에 침투하여 한바탕 싸움을 치를 계획을 잡은 날이 8월 13일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우리 독립군의 침투 계획은 무산되고 맙니다.
이처럼 8월 13일에 세웠던 우리의 꿈은 실행해 보지도 못한 채 좌절의 수모를 겪습니다.
바로 여기에 백범 김구의 애달픔이 숨어 있지요.
이 애달픔이 어찌 백범 김구만의 애달픔이리오.
이제 그 애달픔을 풀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광복절'을 스스로 꿋꿋하게 서자는 뜻이 담긴 ‘독립일’로 바꾸었으면 싶습니다.
스스로 꿋꿋하게 서는 날의 시작으로 삼아 떳떳한 우리나라로 채워가자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흐릿한 하늘을 머리에 인, 조금은 우울한 토요일 새벽입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첫댓글 오늘은 8.15 광복절입니다.
도둑같이 온 광복입니다.
미국의 일본에 떨어뜨린
원자 폭탄의 위력으로 항복하여 얻은 것이지요.
이것에 만족하는 우리들이면 안 될 테지요.
이것을 거부하는 오늘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광복절을 독립일로 바꾸자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을 담았읍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