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이 열리는 3월 초.
강원도 영동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 소식을 듣고 전에 썼던 글을 꺼내봅니다.
‘100년만의 3월 폭설 대란’에서 얻은 교훈
2004년 3월 5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다. 양지쪽 목련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었다. 계절과는 달리 지난밤부터 중부지방에 목화송이 같은 눈이 쏟아져 내렸다. 라디오에서는 낭만적이라며 노래 ‘눈이 내리 네’를 들려주었다.
게릴라성 폭설은 연기지역에 불과 10여 시간 만에 최고 44cm나 쏟아 부었다. 겨울철 눈과는 달리 습기를 머금어 무겁고 미끄러웠다. 모든 길이 마비되는 사태를 불렀다. 고속도로는 추돌사고 여파로 수많은 차량이 오도가도 하지 못하여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운전자가 차를 놔둔 채 떠나버리기도 하여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밤중에 기름이 떨어져 히터를 켜지 못한 채 떨고 있는가 하면 마실 물조차 없었다. 먹을 것을 구하러 휴게소까지 걸어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헬기로 마실 것, 먹을 것을 낙하했다, 꽉 막힌 국도에서는 봉사단체회원들이 커피, 보리차, 빵, 우유를 제공했다.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났고 주택, 축사, 비닐하우스, 공장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고립된 마을에서는 ‘길을 뚫어 달라, 연료를 보내 달라’ 아우성이었다.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버스가 멈춰 발목을 덮는 눈길 몇 십리를 걸어야 했고 아예 귀가를 포기하기도 했다. 모든 학교가 휴교했다. 군 장병, 전‧의경, 학생,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피해복구에 나섰다. 정부는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필자는 전 날 저녁, 대전 모임에 갔다가 좀 늦은 시간에 조치원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이니 아침에 가도 되었지만 그 밤에 가기로 했다. 시‧군계 고개를 넘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금강을 건너 지금 세종시 중심부가 된 남면에 이르니 함박눈으로 변하여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라이트를 켜면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등만 켜야 했다. 덤비듯 몰아치는 눈발을 와이퍼가 힘겹게 밀어냈다. 직진하면 자꾸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중앙분리대에 부딪힌다는 각오로 운전해야 했다. 도중에 숙박업소가 있으면 묵고 가려했으나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걸려 조치원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이른 새벽 출근, 관계자에게 연락하여 농민들에게 일괄 문자메시지 발송과 마을 앰프방송을 하도록 조치했다.
많은 공무원들이 지각하거나 결근했다. 만약 그 밤에 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출근하지 못했을 테니 부군수로서 입장이 뭐가되었을까? 아찔했다. 각계 시찰단이 줄을 이었다. 기획예산처장관도 방문한다고 했다. ‘나라의 곳간’을 책임진 장관의 재해현장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건의사항과 답변을 조율하고자 기획예산처 담당관과 밤새 줄다리기했다. 오랜 협의 끝에 지원기준을 최소 1.2배에서 4배까지 상향조정하였다. 이때 담당관은 “부군수의 열의에 느낀 바가 많다며 지역사업비 확보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하여 숙원이었던 전의 산업단지 진입도로 사업비 240억 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복구 작업과 보상지원이 마무리 되면서, 예기치 못한 재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100년만의 3월 폭설, 그 시련과 극복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백서를 만들었다. 필자가 책에 쓴 글의 일부이다.
<“비닐하우스 안에 가득 촛불을 켜면 2℃를 올릴 수 있다고 해서 양초를 사다가 불을 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여느 때라면 금남에서 유성을 오가는데 채 30분도 안 걸리는 길을 7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다녀왔는데…”, 전기가 끊겨 싸늘히 식어버린 비닐하우스 안에서 삶은 채소처럼 축 늘어진 오이 잎 새를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머니. 큰 눈망울을 굴리던 젖소가 폭삭 주저앉은 축사에 깔려 처절하게 죽어가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안절부절 못하고 뚝뚝 눈물을 흘리던 목장 주인. 무너진 지붕 사이로 들어온 눈 녹은 물에 망가져 버린 제품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서 있던 사장님.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누워버린 이웃집 비닐하우스를 모른 채 할 수 없어 거들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노인. 건네는 빵 하나, 우유 한 개가 이처럼 값지게 느껴 본 적이 없다면 고마워하던 운전자. 해맑은 얼굴로 힘든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듯 뒤뚱거리며 폐자재를 나르던 학생, 서울, 경기, 대전, 경상도에서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이것이 폭설 대란의 현장, 피해복구의 열기와 인정어린 모습이었다.>
큰일은 교훈을 남긴다. 공직자로서 근무지를 먼저 생각 하는 것, 맡은 일에 혼과 열정을 담는 것도 그 하나이다. 사람들의 ‘민낯’도 보았다. 수습 경험은 2007년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대책에 소중한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19에서 얻을 것은 무엇일까?
첫댓글 아~ 언젠가 님의 위의글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자연재난은 언제든 있을수있는것
유비무환이 최상책일텐데 . . 인간의 능력은 한계. 어려울수록 잘 이겨낼수있는
우리의 지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유정님! 늘 건강 행복하세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