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SNS에는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영상이 수 없이 올라왔고, 값비싼 스포츠카를 길에 방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후륜구동 차는 위험하다', '폭설에 후륜구동 차를 끌고 나오다니 제정신이 아니다'는 등 날 선 비판을 쏟아졌다.
과연 후륜구동 자체가 위험한 것일까? 모터그래프는 차량 구동 방식과 타이어 종류에 따라 눈길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차량은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한 BMW 5시리즈 PHEV(후륜구동)와 여름용 타이어를 장착한 기아차 스팅어(후륜구동), 사계절용 타이어를 장착한 현대차 아반떼(전륜구동) 등 3종이다.
# 말랑말랑한 겨울용 타이어 vs 딱딱한 여름용 타이어
(왼쪽부터) 여름용 타이어, 겨울용 타이어, 사계절용 타이어
우선 눈으로 각 타이어를 살펴봤다. 스팅어에는 고성능 미쉐린 PS4 타이어가 적용됐다. 여름용 타이어에 트레드 마모도 셋 중 가장 많다. 힘껏 손으로 눌러도 플라스틱처럼 딱딱하다.
530e는 금호타이어 윈터크래프트 WP72를 신고 있다. 누가 봐도 여름용 타이어와 차이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패턴과 재질이 다르다. 여름용 타이어는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세로무늬가 도드라졌다. 반면, 겨울용 타이어는 가로 및 사선 무늬가 촘촘하다. '사이프'라 부르는 미세한 홈도 많이 파여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손으로 누르면 말랑말랑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무른 재질이 인상적이다.
아반떼는 한국타이어 키너지 GT 사계절용 타이어가 장착됐다. 앞서 언급한 두 타이어의 특징을 고루 섞어놓은 모양새다.
# 이게 팽이야 자동차야?
스팅어는 출발과 동시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페달을 조금 깊게 밟으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지만, 똑바로 달리지는 못한다. 극도로 섬세한 조작이 필요하다.
눈길에서 고립됐을 때 자세제어장치(ESC)를 해제하는 편이 더 유용하다. 여름용 타이어가 탑재된 스팅어도 ESC를 해제하니 바퀴가 빠르게 헛돌며 눈을 파헤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동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했지만 제대로 멈출 수 없다.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앞바퀴가 잠겨 조향이 불가능하다. 눈이 녹고 있는 날씨였지만, 차량은 제멋대로 미끄러진다.
겨울용 타이어가 장착된 5시리즈는 안정적인 출발이 가능했다. 가속 페달에 발을 살짝만 얹어도 마구 움직이던 스팅어와 달리 바닥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간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도 차체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뒤쪽이 미끄러지거나 방향이 이리저리 바뀌지도 않았다.
여름용 타이어와 가장 큰 차이점은 멈출 때다. 마른 노면보다 제동거리는 길어졌지만, 스팅어처럼 바퀴가 헛돌며 ABS가 작동하지는 않았다. 30km/h 이상에서 급제동을 하면, 그제서야 ABS가 개입한다.
다만, 페달을 강하게 밟거나 급격하게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 눈길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눈길에서는 저속 주행만이 답이다.
5시리즈도 자세제어장치를 껐다. 뒷바퀴가 미끄러지긴 하지만,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순간순간 미끄러지지만, 브레이크나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의도한 대로 움직일 수 있다.
아반떼도 5시리즈처럼 저속 주행에서는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나아갔다. 방향 전환도 부드럽다. 다만, 제동에는 취약했다. 20~30km/h에서 제동 시 ABS가 작동하며 한참을 밀려갔다.
눈길에서 실험 결과 모든 차는 미끄러졌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댓글에서 흔히 보이는 '눈길에서는 후륜구동차보다 전륜구동차가 안전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계절용 타이어를 장착한 아반떼보다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한 5시리즈가 훨씬 더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특히, 타이어의 마찰력이 관건인 제동 과정에서 그 차이는 극명하게 벌어졌다.
# 눈 쌓인 언덕길에서도 빛나는 겨울용 타이어
다음은 눈이 쌓인 언덕길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경사도는 약 17º다. 스키장 중ㆍ상급자 코스 수준이다.
여름용 타이어는 1m도 채 올라가지 못했다. 뒷바퀴가 눈을 밟는 순간부터 헛돌기 시작했다. ESC를 끄면 위태롭게 겨우겨우 중턱까지는 올라갔지만, 방향 조종이 전혀 되지 않아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 상태에서 내려가는 것도 문제다. 네 바퀴가 모두 미끄러지며 정상적인 후진이 불가능해 도로 가장자리의 낙엽과 풀을 밟고 겨우 내려왔다.
겨울용 타이어는 다소 싱겁게(?) 실험이 끝났다. 자세제어장치를 끌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언덕을 올랐다. 이따금 바퀴가 헛돌긴 했지만, 금세 접지력을 되찾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리막길도 마찬가지다. ABS 개입 없이 부드럽게 오갈 수 있다.
사계절용 타이어도 바퀴가 여러번 헛돌기는 했지만, 간신히 언덕을 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쌓인 부분을 밟으면 미끄러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흔들면서 겨우 올라갔다.
언덕길에서도 구동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여름용 타이어를 장착한 스팅어나 사계절용 타이어를 장착한 아반떼가 오르지 못하는 길은 겨울용 타이어를 신은 5시리즈가 아무렇지 않게 올라갔다.
# 고가의 후륜구동 수입차는 죄가 없다
일부 기사나 댓글에서 주장하는 바와 다르게 눈길에서는 구동 방식보다 타이어가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후륜구동 차라도 여름용 타이어보다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한 차가 월등히 안정적이었다. 전륜구동 차도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한 후륜구동 차보다 못했다. 결국 겨울에는 겨울용 타이어를 장착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이미지=티스테이션 홈페이지
물론, 겨울용 타이어는 구매부터 보관까지 비용 부담이 작용한다. 다만, 겨울용 타이어로 단 한 번의 사고만 막아도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겨울철 차량 운행이 많은 이들은 반드시 필요하겠다.
최근 직사광선과 습기에 취약한 타이어를 보관하기 어려운 소비자를 위해 계절별 보관 서비스도 보편화됐다. 물론, 보관료는 무료부터 월 1만원까지 타이어 구매처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