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96]‘또조카’에게 주는 책 선물
‘또조카’라 하면 누구라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의 호칭을 ‘또삼촌’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터. 당연히 자기의 조카(친조카, 생질, 당질 등)는 아니지만, 절친의 아들을 일컫는 호칭이다. 젊은 시절, 친구에게 자기 부인을 ‘형수’라 부르라거나, 그 아들에게 ‘큰 아버지’라 부르라던 ‘장난’을 많이 쳤던 일을 생각해 보라. 반대로 그 친구는 ‘제수씨’ ‘작은 아버지(삼촌)’을 고집하지 않았던가. 그게 못마땅해 나의 '50년 절친'이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를 뜻하는 ‘또삼촌’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진짜 삼촌은 아니지만, 삼촌같은 사람, 기가 막힌 조어(造語)라고 박수를 친 게 어느덧 40년 전이다. 나의 두 아들이 자라며 익힌 단어가 또삼촌, 제법 커서도 입에 달고 다닌 호칭인지라 또삼촌이라는 단어가 실제 있고, 친척 비슷한 줄 알았다고 했다. ‘또숙모’는 또삼촌의 부인일 것은 불문가지. 또조카가 아들을 낳으면 ‘또손(자)’이고, 나는 ‘또할(아버지)’이 될 터인데. 단어의 확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버지의 또다른 절친은 '또또삼촌'이고, '또또또삼촌'도 얼마든지 있을 터. 언중(言衆)이 이런 호칭을 많이 쓰면 언젠가 국어사전에도 표제어로 등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엊그제 최근에 펴낸 졸저 『찬샘별곡』(6월 20일 비아아트 펴냄) 한 권을 ‘또조카’(절친의 아들)에게 “또조카 00에게, 건강하고 행복해라!”는 덕담과 함께 선물하며 모처럼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딱 한 명 있는 조카. 8년 전인가 결혼도 하고 너무 바쁘게 살아 근래에는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래도 연말연시와 명절이 다가오면 안부전화를 꼭 하는 게 기특하다. 아무 때든 “또삼촌”하며 부르는 녀석이 왜 이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녀석 제 부모에게 신혼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요즘 부모가 2세를 가지라한다고 애를 낳는 커플이 있던가. 갓난애 때부터 봐온 녀석이어서 나도 그만큼의 애정이 있지만, 또삼촌이라고 그 이유를 묻기도 거시기해 못본 체 하고 지낸다. 제 아버지에게 부탁하기 뭐한 것(주로 책선물)을 부탁해 들어주기도 하는 사이이다.
제 아빠가 항암치료로 고생하고 있어, 외아들인 녀석의 마음고생-몸고생이 안쓰럽다. 아들 도리는 다하려고 항암치료 날짜만 되면 시골에 사는 아빠에게 달려가 서울 병원까지 왕복운전을 하는 등 진력을 하고 있다. 다행히 친구는 신약 임상시험이 효과를 발휘해 암세포가 많이 죽었다한다. ‘시한부’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진짜 멘붕이 와 한동안 헤매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나이 칠십은 얼마나 젊은가. 아무리 못해도 팔십은 넘겨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한 일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지만, 바짝 ‘쫄아버린’ 친구의 몸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프고 속도 상해 죽을 지경이다. 그 와중에도 나의 졸저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리자 가까운 친구에게 선물한다며 10여권을 샀다고 한다. 고교 1학년(1973년) 때 만났으니, 어언 반세기가 넘은, 고향 꾀복쟁이같은 친구, 한때는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이었던 적도 있지만, 살다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정(友情)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친구. 그의 건강을 비는 마음 가득하다.
아무튼, 또조카인 이 녀석이 아무리 바빠도 나의 졸저(저서라고는 하나, 교양서 70권을 읽은 후 쓴 생생한 독후감 모음집이다)를 틈틈이 읽으며, 또삼촌인 나의 생각과 2세들의 삶을 염려하는 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독후감을 쓴 의도는 우리의 자식세대들과 대화와 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다. 교양서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음으로써 촛불혁명, 빛의 혁명으로 다시 재건한 우리 민주주의의 과정과 그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부모세대와 불통되기 쉬운 것을 우려한 것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을 기억해야 하듯, 나는 내 아들들과 또조카를 비롯한 그 세대들이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위인들의 삶과 사상을 알아야 한다는 게 오랜 지론이다.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백기완 선생을 비롯하여 신영복 김남주 이어령 최재천 조정래 한강 김용옥 김장하 황현필 김누리 유홍준 님 등의 책을 나의 글을 통해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리 지식정보사회라 하지만,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칼럼들). 또한 현대 정치를 올바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각(관점)을 갖기를 바란다(최강욱 유시민 등의 저서). 이런 것이 ‘나의 비원(悲願: 꼭 이뤄지길 바라는 비장한 염원이나 소원)이라 할 것이다. 사랑하는 또조카야, 네가 3살이나 됐을까? 거실에서 네 애비랑 짜란히 소파에 비스듬이 누워 발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담담디 담담디' 노래를 부르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귀였웠던지. 그런 네가 어느새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어간다. 꼭 읽어야 하고, 궁금한 것은 언제든 물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