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원제 : Dr. Jekyll and Mr. Hyde
1931년 미국영화
감독 : 루벤 마물리안
원작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출연 : 프레드릭 마치, 미리암 홉킨스, 로즈 호바트
홈즈 허버트, 할리웰 홉스, 에드가 노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프레드릭 마치)
로버트 스티븐슨의 인기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영화가 탄생하고 단기간동안에 3번이나 영화화 되었습니다. 1920년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31년 프레드릭 마치 주연으로 유성영화 버전이 만들어졌으며 1941년에는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22년동안 3번이나 영화화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셈입니다. 이중 루벤 마물리안 감독, 프레드릭 마치 주연의 1931년 작품이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프레드릭 마치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획득하였습니다. 사실 1942년 작품에 대해서는 좀 갸우뚱하기는 하지요. 굳이 11년전에 나온 영화를 왜 다시 만들었는지 모르겠고, 주연을 맡은 스펜서 트레이시가 너무 늙수그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큰 의미없는 리메이크 작품에 무려 라나 터너와 잉그리드 버그만 이라는 여배우 두명을 캐스팅한것도 그렇고. 못 만든 작품은 아니었지만 보통 리메이크 라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영화에서 칼라영화로, 유럽영화를 할리우드영화로 또는 현대물로의 각색으로, 뭐 그런식으로 변화를 주는 방식이 보편적인데 31년 작품과 41년 작품은 특별한 차이가 없습니다. 배우만 바뀌었을 뿐이죠. 더구나 소설과 달리 지킬박사를 젊은 청년으로 설정하고 로맨스 영화로 만든 것도 동일합니다. 31년 영화가 각색이 많았다면 41년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던가 그랬다면 모를까. 아무튼 좀 이해가 안되는 1941년 리메이크고 명배우 스펜서 트레이시 외에도 아직 신인시절이라서 대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엄밀히 싹수가 보이는 두 전설적 미녀배우까지 출연시켰다는 것은 대체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크게 명성을 얻은 빅터 플레밍이 왜 그랬을까 싶습니다. 1941년 영화는 소설의 각색물이라기 보다는 1932년 영화버전의 내용을 거의 동일하게 한 리메이크 였습니다.
프레드릭 마치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고전영화들에서는
근엄한 중년의 모습이었지만
34살의 프레드릭 마치는 이렇게 미남 청년이었다.
1941년 작품 이후로도 각색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했는데 '홀쭉이와 뚱뚱이' 시리즈로 유명한 애보트와 코스텔로 콤비의 영화중 지킬 앤 하이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코믹한 작품이 1953년에 등장했고, 1960년 영국 해머영화사에서 '지킬박사의 두 얼굴' 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각색물도 있었고, 1968년 잭 팔란스 주연의 TV영화도 있었고, 1989년 안소니 퍼킨스 주연의 각색작품이 '닥터 지킬'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기도 했고, 코미디 버전으로 각색한 '지킬 박사와 미스 하이드(95)' 라는 작품도 개봉되었고, 원작의 모티브를 하녀 버전으로 변형하여 쓴 유사소설을 각색한 '메리 라일리' 라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도 있었습니다. 참 많이 응용된 소설인데 괴이하고 충격적인 내용이 미스테리 호러 장르로 활용되기가 적합했습니다. 아무튼 역대 최고의 각색작은 프레드릭 마치의 1931년 작품이 꼽힙니다.
1931년 작품은 유성영화 초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그런 시대적 이질감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적절한 속도의 대사처리가 일품입니다. 우리가 30년대 초반 영화를 볼때 유성영화 초기라는 특징과 장비문제 때문인지 꽤 하이톤으로 빽빽 소리지르듯 연기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연기는 30년대 후반쯤이 되어서야 좀 안정되어 가는데 그래도 잘 만든 영화들은 이런 느낌이 훨씬 덜 듭니다. 대표적으로 1933년 작품 '작은 아씨들' 같은 영화죠.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도 40-50년대 영화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투박한 느낌이 안드는 세련된 작품입니다.
원작에서는 중년의 기품있는 박사로 설정된 지킬 박사를 젊고 파릇파릇한 청년으로 설정했고, 원작에는 없는 로맨스 이야기를 비중있게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10년뒤에 리메이크 된 빅터 플레밍 감독,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에 고스란히 재활용 되었지요.
실험에 성공하는 지킬 박사
스스로 약을 먹고 셀프 실험을 하는 지킬
분리된 악의 인간 하이드로 변한 지킬
의학박사인 헨리 지킬(프레드릭 마치)은 인간의 이중성인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는 이론을 강의하여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을 둘로 쪼갤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미 지킬 박사는 남몰래 선과 악의 인격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고, 그 실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지킬에게는 뮤리엘(로즈 호바트)이라는 아리따운 약혼녀가 있었고 두 사람은 빨리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뮤리엘의 아버지가 자신의 결혼기념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고집을 부려서 결혼식을 못 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지킬 박사는 우연히 곤경에 빠진 아이비(미리암 홉킨스)라는 여인을 구해주고 그녀로부터 육체적 유혹을 받지만 친구인 래니언 박사로 인하여 그냥 빠져나오게 됩니다. 드디어 약품을 완성하여 목숨을 걸고 마시게 된 지킬, 약물을 마시자 그는 흉측한 외모의 악인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신합니다. 하이드가 된 그는 당장 아이비를 찾아가서 쾌락의 노예로 삼습니다. 이후 지킬 박사로서 품위와 존경을 받는 인물로, 그리고 못생긴 하이드로서의 자유로움과 쾌락을 탐닉하는 삶으로 이중의 삶을 살게 되는데 뮤리엘과의 결혼을 앞두고 더 이상 하이드로의 활동을 접고자 하고, 그동안 하이드에게 괴롭힘을 당한 댓가로 아이비에게도 돈을 보냅니다. 아이비는 지킬을 찾아와 하이드에게서 구해달라고 사정하고 지킬은 꼭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뭐 당연히 이렇게 좋게 이야기가 마무리될 리는 없죠. 이후의 비극은 뜻하지 않게 찾아옵니다. 드디어 뮤리엘의 아버지가 여러 지인들을 모아놓고 딸의 결혼발표를 하는 날, 기분좋게 뮤리엘의 집을 찾아가던 지킬은 갑자기 하이드로 모습이 변하게 됩니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지킬이 나타나지 않자 뮤리엘과 아버지는 크게 실망을 합니다. 하이드는 아이비를 찾아가 지킬에게 자신을 험담한 것을 추궁하다가 그만 그녀를 살해하게 되고, 본 모습을 찾기 위해서 친구인 래니언 박사에게 편지를 써서 지킬의 실험실에 있는 약품을 가져오게 한다음 래니언이 보는 앞에서 하이드에서 지킬로 변신합니다. 크게 충격을 받은 래니언, 결국 지킬은 결혼을 포기하기로 하고 뮤리엘을 찾아가는데....
하이드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인
존경받는 교수이자 미남 청년인 지킬
더 이상 하이드가 되지 않기로 결심하는 지킬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시로
하이드로 변신하게 된 지킬의 운명은....
암울하고 절망적인 내용으로 흐르는 로버트 스티븐슨의 원작을 젊은 지킬로 바꾸고, 두 여인을 비중있게 등장시키면서 좀 더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잘 각색했습니다. 원작의 염세주의적인 분위기보다는 흥미로운 소재의 범죄 스릴러로 변신시킨 것으로 영화라는 매체에 맞는 좋은 각색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프레드릭 마치의 재발견으로 느껴지는데 주로 우리나라 고전영화 관객들이 기억하는 프레드릭 마치는 '필사의 도망자'나 '우리생애 최고의 해' '원한의 도곡리 철교' 등의 영화에 등장한 나이가 지긋하고 근엄한 분위기의 중년 신사 이미지입니다. 그나마 1937년의 '스타탄생' 에서 40세의 비교적 젊은 프레드릭 마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킬 박사 역의 프레드릭 마치는 34세의 청년 나이였고, 인물도 꽤 잘생긴 훈남청년입니다. 아마도 그가 출연한 30년대 영화를 좀 더 많이 보았다면 잘생긴 미남배우 프레드릭 마치로 기억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하이드로 바뀌었을때는 굉장히 흉측하고 지저분한 얼굴로 변신하여 도저히 같은 배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1941년 리메이크작에서 지킬이든 하이드든 별로 외모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던 스펜서 트레이시와 비교할 때 프레드릭 마치가 월등히 뛰어납니다. 완전히 상이한 두 얼굴을 완벽하게 연기하지요. 아마 이런 부분이 감안되어 아카데상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유성영화 초기의 대표적 연기파 명배우로 남게 된 스펜서 트레이시지만 그의 경력에서 이 영화는 실패작으로 남게 되었고 프레드릭 마치는 '세일즈맨의 죽음'과 '우리생애 최고의 해'와 함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두 배우 모두 두 번이나 아카데미 주연상을 탄 전설적 명배우입니다.
거의 동일한 내용의 두 영화지만 1931년 작품은 배우의 적역 캐스팅과 철저히 보조역할을 수행한 두 여배우로 인하여 지킬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된 굉장히 재미난 각색물로 흥미로웠고, 1941년 작품은 배우의 미스캐스팅과 조악한 분장, 그리고 불필요하게 거물급 여배우 둘을 캐스팅하여 이야기를 산만하게 만든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면 1931년 영화가 모든 면에서 뛰어납니다. 여배우의 미모가 뛰어난 것 외에는 1941년 영화가 더 나은 점이 없지요.
네안네르탈인을 참고하여 창조한
하이드의 외모
흉폭한 하이드
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지만 1932년에 국내에서 상영하였고, DVD 출시는 1941년 영화만 되어서 31년 작품은 희귀작입니다. 프레드릭 마치의 변신연기도 좋았지만 하이드의 날쌔고 빠른 몸놀림도 돋보였습니다. 프레드릭 마치가 캐스팅 된 이유는 지킬과 하이드 두 역할에 모두 완벽할 거라는 루벤 마물리안 감독의 주장이 먹혔기 때문인데 감독의 생각이 딱 들어맞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잘생긴 지킬과 사악하고 교활한 하이드의 두 얼굴을 모두 잘 표현했습니다. 하이드의 비중도 제법 크기 때문에 짙은 분장을 잘 참아니야 하는 인내심도 상당히 필요했을 것입니다. 1930년대 유성영화 초기영화중 흥미롭게 잘 만든 고전입니다.
ps1 : 1시간 32분짜리 영화인데 80분 버전만 존재하였다가 90년대 중반에야 92분 버전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ps2 : 원작자 로버트 스티븐슨은 이 작품 외에 '보물섬' 여러번 영화화되었습니다.
ps3 : 하이드의 흉측한 외모는 네안네르탈인의 화석에서 참고를 했다고 합니다.
ps4 : CG가 없던 1930년대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에서의 지킬의 피부색의 변화는 빛의 반사의 변화를 통해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흑백영화라서 가능했겠죠.
ps5 : 1932년 신문에 실린 영화개봉 소개글입니다.
ps6 : 지킬에서 하이드로, 하이드에서 지킬로의 변신장면입니다.
[출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Dr. Jekyll and Mr. Hyde, 31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