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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7일(수)
* 시작 기도
(왕상 10:8)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주님...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 왕 곁에 있는 사람들과 그의 신하들을 복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항상 왕의 곁에 서서 왕의 말과 지혜를 듣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오늘 이 시간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말씀과 지혜를 듣는 저는 진정 복된 자임을 믿습니다.
이 종에게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날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그렇게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이 시간 우리 주님의 날개로 덮으사 그 안에서 쉐키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창세전부터 착한 일 곧 영생으로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히 이루실 줄을 믿습니다.
그 은혜가 지금도 충만하오니 영광을 받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대상 20:1-8
제목 :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
1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격파하고 들어가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2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아 중량을 달아보니 금 한 달란트라. 그들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오고
3 그 가운데 백성을 끌어내어 톱과 쇠도끼와 돌써래로 일하게 하니라. 다윗이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을 이같이 하고 다윗이 모든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4 이 후에 블레셋 사람들과 게셀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키가 큰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죽이매 그들이 항복하였더라.
5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6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 큰 자 하나는 손과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넷이 있는데 그도 키가 큰 자의 소생이라.
7 그가 이스라엘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8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
* 나의 묵상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3절, 암몬 정복과 관련하여 다루고 있다.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의 전쟁이 있었던 다음해에 요압이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암몬의 왕성 랍바를 함락한 사실과 다윗이 랍바성으로 가서 수많은 전리품을 포획하고 개선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역대상의 오늘 본문은 사무엘하 11:1과 및 12:26-31절과 병행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사무엘하에서는 11:1절과 12:26절 사이에 다윗의 범죄 곧 밧세바 간음 사건과 우리야 살해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역대상은 이를 생략하고 오직 이스라엘이 암몬의 왕성 랍바를 함락한 사실만을 기록한다.
역대상이 이를 생략한 이유는 다윗 왕국의 영광을 모범으로 삼아 선민의 영광을 회복시켜야 할 사명이 있는 본서의 1차 독자들인 포로 귀환 세대에게 다윗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무엘서 기자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왕국의 잘잘못을 여과 없이 이는 그대로 기록한 반면 역대기 시자는 포로 귀환 세대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하는 저작 목적상 이스라엘 왕국의 부정적인 측면은 되도록 부각시키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고 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4-8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다윗의 세 용사 곧 십브개, 엘하난, 요나단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본문에 언급된 블레셋과의 전쟁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 발생한 두 번에 걸친 르바임 골짜기 전투와 관련된 것으로 오늘 본문은 일종의 보충 기사에 해당한다.
요압은 자신이 암몬을 정복한 후에 그로 인하여 얻은 명예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하여 다윗에게 암몬 성채에 대한 마지막 공세를 지휘하도록 하여 그로 인해 얻는 명예를 다윗이 차지하게 하였다.
(삼하 12:27-28) 요압이 전령을 다윗에게 보내 이르되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읍을 쳐서 점령하였으니 이제 왕은 그 백성의 남은 군사를 모아 그 성에 맞서 진 치고 이 성읍을 쳐서 점령하소서. 내가 이 성읍을 점령하면 이 성읍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다윗은 요압의 간언을 받아들였다.
하여 암몬 왕의 왕관과 많은 전리품을 획득했으며 사람들을 부역에 썼다.
암몬 왕의 왕관을 금 한 달란트나 되었는데 다윗은 그것을 자기 머리에 썼다.
다윗은 전리품을 여호와께 바쳤으나 이번에는 자기 머리에 쓴 것이다.
이것은 정복자로서의 시위이지만, 역대기 사가의 메시야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곧 다윗의 태도는 오실 메시야가 받는 영광을 예시하는 것이다.
20장 후반부의 블레셋 정복과 관련한 일화가 3개 들어 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다윗의 용사들은 블레셋의 거인들을 물리쳤다.
게셀에서 일어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후사 사람 십브개가 키가 큰 자의 아들 중에 십배를 쳐 죽였다.
야일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쳐 죽였다.
또한 키가 큰 자의 후손 중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6개씩 모두 24개였는데 다윗의 조카 요나단이 그를 쳐 죽였다.
이렇게 키가 큰 자의 후손이라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멸망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이 땅에 번성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았다.
영의 사람들이었던 경건한 셋의 후손들까지 가인의 후예들에게 다 먹혀버린 것이다.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을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함으로 인하여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신다.
바로 그 당시에 네피림이 있었는데 이 네피림은 곧 용사요 거인이며 세상의 유명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가면 갈수록 죄악을 낳는 기계 인간이 되어 갔다.
(창 6:4-7)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말의 뜻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상에서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각종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내서 자기들의 힘을 과시한 가인의 후예들이다(창 4:16-24).
사람의 딸들이란, 경건한 셋의 후손을 말한다(창 5장).
이렇게 세상은 두 부류로 딱 나뉜다.
하지만 세상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며 악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사실 세상의 전쟁은 이 두 부류의 전쟁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전쟁 역시 이와 같은 두 부류의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용사 거인 유명한 자들이 제 잘 난 맛에 살아가고 있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노아이다.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그들에 비해서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방주 건축 명령을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저 묵묵히 배만 만들 뿐이다.
가끔씩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는 배를 만들 때도 바닷가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꼭대기에서 만들고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얼마나 비웃고 손가락질을 했겠는가?
저 사람 미쳤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노아는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 그리고 비웃음으로 죽어갔다.
세상 모든 사람을 상대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 전쟁은 바위에 계란치기다.
그런데 이 전쟁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노아 가족의 전쟁을 넘어 세상의 악과 하나님과의 전쟁이다.
하여 그 전쟁의 결과 120년 후에 세상 모든 사람은 물에 빠져 다 죽는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만 유일하게 물 위에 뜬다.
그들은 방주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노아는 육신적으로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표상 되는 방주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그는 그 방주에 속하여 물 위에 뜬 것이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자이다.
그가 비록 전쟁에 지쳐 피곤하였지만, 그의 부하들과 함께 블레셋 거인들을 물리쳤다.
이는 그의 힘이 아니라 노아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집어삼킬 것 같은 홍해가 막고 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다.
홍해를 향하여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들라고 말이다.
지팡이를 들자 바닷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른 땅으로 걸었다.
이 장면을 설명하는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고전 10:1-2)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세례는 물에 빠져서 완전히 죽는 것이며 또한 그 물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것을 모세에게 속하여 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이 죽고 다시 살아났음을 의미한다.
나는 분명히 예수에 속하여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자임을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도 함께 연합하여 죽고 주님의 장사됨에 연합하여 함께 장사됨이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연합된 자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가 살리심 같이 나도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예수에 속하여 산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의의 과정 중에 어떠한 것 하나도 내가 행한 것이 없다.
나는 구원 받은 자임에도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시는 자였다.
이런 나는 마땅히 영 죽을 죄인이며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내가 산 자로 지금 당당히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창세전 언약에 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맞지만 나의 믿음이라는 것은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여 날마다 흔들린다.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나는 불과 며칠이 못되어 넘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믿음을 주님께서는 ‘믿음있음’으로 봐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약함이 은혜인 것이다.
나를 용사요 거인이며 유명한 자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약한 자를 주님의 강함으로 이끌어주시는 그 은혜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세상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하여 애를 쓰는 자였습니다.
세상의 거인은 자신을 자랑할 것이 많고, 드러낼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종은 그런 노력과 애씀에도 전혀 드러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은혜였음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용사와 거인을 부러워했고, 큰 자와 유명한 자들이 어찌 그리 부럽던지요.
하지만 지금은 복음을 알기에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네피림에 마음을 빼앗겼던 지난 날, 나의 모습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제는 약한 자임이 나의 자랑이 되고, 부족함이 나의 자랑입니다.
내가 약하기에 우리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날마다 몸으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나의 약함을 더욱 뼈저리게 깨닫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