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김태식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불어와도 수산시장의 어물전에는 다양한 생선들이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기다린다. 살아 움직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숨을 멈춘 녀석도 있다. 대부분의 생선은 손님의 주문에 따라 구이용이나 찌개용으로 다듬어진다. 싱싱한 녀석은 횟감으로도 손질된다. 아직 팔리지 않은 생선들은 배를 밑으로 깔고 등을 위쪽으로 하고 있다. 아니면 옆으로 번듯하게 눕혀져 있다.
그런데 어물전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드러내 놓은 채 연한 회갈색 빛깔의 생선이 있다. 이 녀석은 언제나 할복(割腹)을 한 상태이며 배가 위로 향해 있다. 겉모습만 보면 살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다. 처음 이 녀석의 배를 가르면 그 속에는 미처 소화되지 않은 여러 가지 생선들이 들어있다. 멸치, 새우, 빨간 고기, 오징어, 도미, 장어 등이 이 녀석의 먹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생선 한 마리 잘 사면 그 속에 든 생선이 더 비싸다는 말이 있다. 이 녀석은 겨울이 무르익을 무렵 모습을 드러내어 늦봄까지 자신의 속을 모두 벌려 놓고 팔려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녀석의 형상은 가히 예술적이다.
머리는 크고 납작하다. 몸통은 역삼각형이고 꼬리는 짧은 편이다. 주둥이에 가시만 없다면 문어와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다. 아가미 구멍은 다른 생선에 비해 작고 가슴지느러미 뒤쪽에 있는 것이 특이하다. 입은 매우 크고, 뭉퉁 하고 도톰한데 이빨은 톱날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락부락하고 못생긴 녀석이다. 바로 '아귀'라는 생선이다.
이 생선은 어른 손 크기의 것에서부터 큰 가오리만한 녀석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비늘이 없으니 껍질이 매끈하다. 이 녀석의 몸통은 찜이나 수육으로 만들 때 쓰이고, 내장과 껍질은 살과 함께 국거리로 쓰이니 버릴 것이 없다. 날 것일 때는 흐물흐물 하던 살이 삶으면 단단해지면서 하얀 빛깔이 난다. 이 녀석은 이름에서부터 고생을 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상도에서는아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아귀라는 생선의 재료로 만들어진 찜은아구찜이요, 국은아구탕이다. 여수전남지역에서는아꾸라 불리는가 하면 인천지역에서는텀벙이라 부른다. 서해안에서는꺽정이라 하니 그 이름도 다양하다.
영어 이름도 재밌다.
'sea devil' -바다의 악마다.
생긴 모습을 연상시켜 주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fishing frog' -고기 잡는 개구리.
이것은 다른 어종을 잡아먹는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 같다.
이 생선의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아귀(餓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아귀란 살아서 탐욕이 많았던 사람이 죽은 후에 굶주림의 형벌을 받아서 되는 귀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입이 크고 흉하게 생긴 모습과 자신의 크기 만 한 물고기도 잡아먹는 식성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승에서 욕심을 부리며 살다 가면 저승에서도 그다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 앞에 음식물이 보이면 아귀들은 그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것을 가리켜아귀다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조차 한가지로 정확하게 불리지 않고 있는 이 녀석은 경상도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십 여 년 전 만해도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다시 바다로 버려졌다. 생긴 모습이 흉물스러워 재수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고급음식으로 대접을 받는 녀석이 되어 있다. 저지방에 고단백 식품이라고 기세가 등등하다. 사람팔자만 시간문제가 아니라 생선팔자도 그런가 보다.
어릴 때 고향에서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아구탕은 저지방이고, 고단백 이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고, 그저 밥을 먹기 위한 국이었다. 어머니는 감기 몸살이 심하면 아구탕을 끓여 뜨끈한 국물을 마시고는 훌훌 털고 몸을 일으켰다. 어른들은 뜨거운 국물을 드시면서 언제나 '시원하다' 였다. 겨우내 먹었던 그때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요즈음에도 나는 아구탕을 즐겨 먹는다.
어머니가 싱싱하고 통통한 아귀로 아구탕을 만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구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우려내어야 한다. 충분히 끓인 다음 생 아귀 살을 그 속에 넣는다. 어느 정도 익은 살이 꼭지를 딴 콩나물과 향긋한 미나리, 갖은 양념을 만나게 되면 칼칼하고 후련한 '생아구탕'이 된다. 숙취에도 좋을 뿐 아니라 나른한 봄날에 더욱 맛을 낸다.
아구탕이 시원함을 주는 것이라면 아구찜은 얼큰함을 준다. 아구찜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적인 여유를 가져야 한다. 큼지막한 아귀를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내어 채반에 담는다. 작은 아귀는 살이 깊지 않아 맛이 덜하다. 물기를 빼고 소금을 뿌려 살이 꾸덕해 지도록 두어야 간도 배고 비린내도 사라진다. 그리고 미더덕을 연한 소금물에 씻어 물기를 빼고, 미리 삶아 둔 콩나물에다가 아귀 몸통 살과 미더덕을 함께 섞는다. 여기에다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버무려 만든 찜은 얼큰한 맛을 낸다.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에다 매콤한 청양고추와 함께 쫄깃한 아귀와의 만남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 맛의 비법은 양념에 있다는데, 장사를 하는 집에서는 비밀로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구찜으로 유명한 마산에서는 서로가 원조(元祖)임을 강조한다. 이 녀석은 자신의 이름이 정확하게 불리어지지 않는 것에서부터 원조라는 주장에 휘말리기까지 이래저래 심기가 편하지 않다.
아귀라는 녀석은 일 년 내내 잡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제철이 지나고 생 아귀가 잡히지 않을 때에도 이 녀석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비해 이 녀석들은 커다란 냉동실로 옮겨지게 된다.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살아 움직일 듯하던 녀석들의 피부운동은 중단되고 싱싱한 맛을 내는 재료로 거듭나기 위해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아니면 턱 밑에 대나무 꼬챙이를 걸어 마치 십자가를 맨 듯이 빨랫줄에 걸려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이 녀석은 머지 않아 아삭한 콩나물을 만나게 될 것이고 향긋한 미나리를 만날 녀석이다.
오늘도 동네 재래시장의 생선가게에 있는 아귀는 언제나 험상궂은 모습의 얼굴이다. 아직도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한 듯 탐욕스러운 입은 크게 벌어져 있고, 남의 것을 탐하려는 욕심이 서려 있다.
아귀는 호감이 가는 모습은 아니지만 몸통은 우리의 입맛을 즐겁게 해 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각박한 현대사회는 아귀다툼의 장이다. 생존경쟁을 벌여가며 살아야 하기에 때로는 속과 겉이 다른 사람도 간혹 있다. 이렇듯 아귀는 마치 속과 겉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