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내 학교
일제강점기의 교육 정책은 조선인들을 일본에 충성하는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황국신민화 정책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선교육령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은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을 강화하고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며, 전통적인 조선 교육 기관들을 일본식 학교로 대체했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인들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나, 동시에 조선인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교육 정책은 조선인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쳤으며,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항 이후, 동래지역에는 근대 국가 건설과 교육을 통해 구국운동을 표방하는 보통학교령에 따라 1907년에 동래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사립학교의 필요성을 느낀 동래기영회는 1898년(광무 2년) 동래군에 한문 소학교인 동래부학교를 설립하며 교육의 길을 열었다.
이 학교는 1904년 개양학교에 통합되었고, 1906년에는 기영회 회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협력하여 삼락학교를 세웠다.
1907년에는 삼락학교와 개양학교를 통합하여 사립 동래동명학교를 설립하였고, 이 학교는 현재 동래고등학교와 동래중학교로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래공립보통학교
동래 지방 최초 공립 보통학교. 지금의 동래시장 자리인 동래 관아 터에 교사를 짓고 동래부 객사를 실험실과 음악실,강당으로 사용하였다
입학연령은 8세부터이며
수업연한은 3년. 한일병탄이후 4년,1924년부터 6년제가 되었다 교과목은 국어,한문,일어,신수,
체육,농업,상업 기초 등이며 여학생 교육을 위해 1912년 여자부를 개설했다 .
학생수가 늘어나고 교사가 부족
하여 1935년 인근 부지로 옮겼는데 오늘날 내성초등학교
이며 여자부는 1924년 낙민초등학교 자리로 교사를 옮겨 제2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내성초등학교
동래공립보통학교 정문이었던 식파루
1923년 루위에 도서관이 개관된다(동래 최초 도서관)
동래공립보통학교
한옥은 동래부 객사
2회 졸업식 기념사진
동래공립보통학교 이전 부지 정리 모습
개화기 이후 초등교육기관 이름 변천:
소학교 (1895)보통학교(1906)
심상소학교(1938)국민학교
(1941)초등학교 (1996)
1942년 동래심상보통학교¡
제2공립보통학교 자리(현 낙민초등학교)
동래일신여학교
1895년 10월 호주장로교 선교회에서 설립하였다
동래에 여자고등부학교 필요에 따라 동래 유지가 중심이 되어 일신여학교를 유치하였으며
현 복산동 우성아파트 자리에 교사를 짓고
1925년 6월 이전, 1926년 1월 동래일신여학교가 개교되었다.1930년대 후반 신사참배강요를 거부하여 학교가 폐교위기에 이르자 동래 유지들이 학교 설립에 필요한 성금 40만원
을 모아 학교를 인수하여 동래여고로 개편하였다
1987년 금정구 부곡동으로 이전되었다
학소대 외솔나무를 배경으로
동래일신여학교 이전 개교식
1930년대 운동회
우측건물은 일성관(현 복산동 주민센터 자리)
1940년대 학교 전경
1960년대 학교 전경
현 학교 전경(구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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