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눈님 덕분에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저절로 기분이 수직하강이라 길이 뚫리지자마자 딸과 함께 볼 일을 보러 나갔다.
뭐, 볼 일이래야 요즈음은 거창하게 쇼핑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만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것이 고작이다.
어쨋거나 십여년 만에 딸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어 의미와는 상관 없이 조금은 들뜬 마음.
하여 간단하게 이런 저런 장을 보아 돌아오는 길에 딸내미가 호주에서 많은 신세를 졌던 친구에게 택배를 보내고
휘리릭 집으로 돌아와 수제품 케잌 만들기에 도전을 하였다.
한때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만 하면 오븐을 이용하여 빵을 만들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애들 학교 선생님들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기도 했는데 이젠 아이들도 다 자랐고 요즘은 게을러져 귀찮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속품을 구할 수가 없어 무용지물이 된 오븐의 활용도가 없어 빵은 이제 그만 만들게 되었다.
헌데 최근 집으로 돌아온 딸이 압력 밥솥을 이용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케잌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장담을 하였다.
하긴 요즘엔 오븐기 없어도 전자렌지나 밥솥을 이용한 요리 제품들이 자주 티비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안그래도 한 번 해볼까 싶었던 터라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럼 네가 해봐...라고 허락을 하였더니만
딸내미 왈
'이래봬도 남의 나라에 살면서 많이 해먹던 솜씨야. 그리고 이맘때 쯤 파는 케잌은 믿을 수가 없어' 랍신다.
암튼 그렇게 부엌을 점령한 딸이 저울에 일일이 계량을 하며 버터를 비롯하여 필요 재료-박력분 밀가루, 크림치즈, 요플레 퓨어, 쿠키, 계란-들을 조합하여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척척 모양새를 만들어 가더니만 밥솥을 이용하여 드디어 쥔장이 좋아하는 근사한 치즈케잌을 완성해 내었다.
오호라...굳이 오븐 타령할 일은 아니네 싶을만큼 잘 만들어진 치즈케잌은 냉장고에 밤새도록 넣어져 차갑게 굳힌 뒤
오늘 아침에 먹어 보니 괜히 뿌듯하다.
안성으로 거처지를 옮긴 후에 아이들이 없어도 즐길 것은 즐겨야 한다며 트리도 장식하고 밤새도록 트리전구를 이용해 불을 밝히기도 하였지만
어느 해 부터는 그것도 즐어군 명목에서 빠져 버리게 되어 전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딱히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별다른 이색 이벤트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주고받는 선물도 이젠 그만, 버려지고 비워져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이즈음에는 넘쳐나는 것들 투성이라 아이들의 선물도 마다 할 처지.
그러다 보니 저절로 조용하고도 조촐한 성탄이나 연말 연시를 맞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좌우지간 그렇긴 해도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딸내미가 만들어 준 케잌을 먹다보니 어느새 다 자란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가
인생의 뒤안길을 서성이는 나이 든 중년의 엄마로 자리매김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묘한 기분까지 겹쳐져 서글프다가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딸내미 정성이 가득 들어간 케잌을 먹으며 감탄을 하며 "내손을 떠났소이다" 를 실감한다.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갖아 좋아할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도 즐거운 성탄이다.
종교와 상관 없이 누구나 누리는 여분같은 이 하루가 모두에게 축복의 날이 되길 희망하면서 수제품 케잌으로 인한 소회는 여기까지.
첫댓글 우와~ 맛나겠다^^ 언니 글 읽다보니 내가 다 뿌듯한 마음이네.. 이래저래 그저 부럽당~
요즘 딸내미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중.
언제 또 날아갈지 몰라서 ㅎㅎㅎㅎ
와~! 그 수제 케잌맛이 어덜까~? 궁금~?
우리 여행가는날 간식으로 주문해도 좋을까나요~? ㅎㅎㅎ
ㅎㅎㅎㅎㅎ 지금 딸이 부산 여행 중이므로 돌아오면 물어보겠삼.
가능하다면 만들어가도록 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