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가 지은 체육관 덕에 학교 갈 맛 난대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6호(2019. 07.15)
건축가 부부 이승환(45세)·전보림 동문(44세)
공공건물로 2019 젊은
건축가상 수상 - 각각 조경, 조소로 입학해 건축 전과
눈을 감고 ‘공공건축물’을 떠올려 보자. 어릴 적 다녔던 학교, 관공서 건물도 좋다. 어쩐지 성냥갑 같은 건물이 떠오른다. 이렇듯 획일적이고 관습적인 건축의 상징이었던 공공건축에 새로운 기대를 품게 만드는 건축가 부부 동문이 있다. 최근 ‘2019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의 이승환(조경92-96·건축94-98)·전보림(조소93-97·건축95-99) 공동대표다. 공공건축으로 이미 대한민국공공건축상 최우수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신진건축사대상 대상, 울산시 건축상 대상 등 여러 차례 큰 상을 받은 이들은 공공건축 시스템과 건축가의 처우에 대해 소신 있는 목소리도 꾸준히 내왔다. “잘 만들어진 공공건축은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고 믿는 두 동문을 6월 26일 안양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전의 공공건축은 마치 별도의 시장과 같아서 저희 윗 세대 건축가들은 공공건축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젊은 건축가들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만들어낸 사례가 많지 않아 주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두 동문은 5년 전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주택 등 민간건축과 더불어 5건 이상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많은 상을 받은 울산 매곡도서관을 시작으로 서울 언북중과 압구정초등학교 다목적강당 등을 설계했다. 처음 겪은 공공건축은 “모든 것이 새롭고 충격적인 신세계”였다. 규모에 비해 부족한 설계기간과 비용, 너무 많은 이들의 관여로 건축가가 의도를 관철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투쟁하듯’ 건물 하나하나를 지어 올렸다. 공공건축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적어 반향을 일으킨 글들이 이 과정에서 나왔다. 큰 상을 받을 때마다 기대했던 것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었다.
“건축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은 결국 세금을 제대로 쓰는 겁니다. 합당한 능력을 가진 건축가들에게 합당한 기회와 시간, 비용을 주고 제대로 된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뭐든지 ‘쥐어짜기만’ 해요. 건물에 예산을 아끼다 보면 결국은 마감재에서 줄이게 됩니다. 사용자가 느끼는 차이는 마감재에서 나타나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건물을 완성해도 끝이 아니다. 자연광이 여러 겹 빛의 띠를 이루며 실내를 환하게 채우게끔 설계한 체육관에 후일 가보니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빛을 차단하는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전문가로서 건축가의 권위를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어도 사용하는 사람이 안목과 조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유지되는데……”
‘다신 안 해야지’ 싶으면서도 자꾸만 공공건축에 이끌리는 건 실제로 건물을 사용하는 이들의 만족감이 전해질 때다.
언북중 다목적강당(노 경 작가 촬영,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제공)
“체육관 일로 속상해할 때 어떤 학생이 사무소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어요. 저희가 지은 체육관이 너무 좋아서 학교가 좋아졌다고요. 멍하니 앉아서 공간을 음미하기도 한대요. ‘건축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건축을 공부하고 싶다 기에 사무실로 불러서 진로 상담도 해줬죠.”
험난한 길이지만 두 동문은 “서로가 있어 의지가 된다”고 말한다. 학생 부부가 로망이었던 이 동문 덕에 논문 쓰기 바쁜 대학원 졸업학기에 결혼해 벌써 세 자녀의 부모다. 각각 다른 전공으로 입학해 건축과에서 만났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해온 순수미술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차에 동생(전보경 건축94-98)이 건축과에 입학하면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죠. 힘들어도 유용하게 쓰이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기뻤어요.”
“건축과 출신 아버지(이규목 건축61-65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명예교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2차원의 조경을 하다 공간의 조직과 질서를 다루는 3차원의 건축이 너무 재밌더군요. 결혼 후엔 같은 지역의 설계사무소를 택해 3년간 함께 출퇴근했어요. 한 쪽에서 회식하면 같이 끼어서 서로 사무소 명예직원처럼 지냈죠.”
일 얘기를 할 때도 척척 호흡이 맞더니, 더욱 ‘꿀 떨어지는’ 눈빛이 됐다. 이 동문과 전 동문은 각각 세종 행복도시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 중이고 모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표를 묻자
“그때그때 유행이나 시류를 쫓기보다 일관적인 가치관이 밑바탕에 깊게 배어나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이 동문에 이어 전 동문은
“도시가 건물들로 이뤄진 점묘화라면, 괜찮은 점을 하나씩 찍어 나가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건축을 하고 싶다”는 두 동문. 함께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 같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