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꽂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산골 부부
2021년 5월 21일
음력 辛丑年 사월 열흘날, 소만(小滿)
오늘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드는 소만(小滿)이다.
햇볕이 풍부해 만물은 점점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시기는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곳 산골에도
밭에 모종을 심어 가득 채워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부터 텃밭농사를 짓고있는 산골부부는
점점 바빠지게 된다. 모종을 심어놓은 다음에 해야
할 일들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한 것은 아니라서
천천히 시나브로 하려고 한다.
어제는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에 마음이 좀 급했다.
이미 며칠전 미리 준비를 해놓은 꽃모종을 심으면
활착에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혼자 꽃모종을 심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블루베리
16그루를 심어놓은 밭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가
영 마음에 걸렸다. 실은 그 밭에 2년전 더덕 씨앗을
뿌려놓아 이미 더덕이 자라고 있는데 딱히 마땅한
곳이 여기 뿐이라서 블루베리를 심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블루베리와 더덕보다 쇠뜨기를 비롯한 온갖
잡초들이 더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지나다닐
때마다 볼상 사나워 신경이 쓰였다. 거름을 주려고
해도 잡초들 좋은 일 시킬 것 같았다. 안되겠다 싶어
호미를 들고 이른 아침에 두어 시간 할애하여 몽땅
뽑고 캐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나서 거름을 듬뿍
주었다. 사실 더덕도 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까
하다가 블루베리 나무가 자라는 것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함께 길러보기로 했다. 더덕은 자라면 캐면
되니까 괜찮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촌부가 블루베리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아내는 혼자서 전날 만들어 놓은 꽃밭에 꽃모종을
심고 있었다. 우선 장독대앞 화단에 심은 꽃이 너무
빈약하다며 백일홍과 과꽃 모종으로 여백을 채웠고
작은밭 입구에 마련한 꽃밭에 백일홍, 과꽃, 봉숭아
모종을 심었다. 그리고나서 함께 목공실앞 빈터에
마련한 꽃밭에는 지난해와는 달리 나름의 방법으로
맨가운데 봉숭아, 그 다음 맨드라미, 그리고 끝으로
메리골드를 미리 그려놓은 원형 안에 심어보았다.
아직 모종이라 어려서 그런지 세 군데 다 훵하고 좀
빈약해 보인다. 모종을 무려 300그루나 심었는데...
점점 자라 풍성해지면 괜찮겠지? 이젠 어쩔 수 없다.
잘 자라 예쁜 꽃을 피우기를 바랄 뿐이다.
꽃모종을 심은 다음에 조리개로 물을 듬뿍 주었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혹시나 전날 채소모종을 심고
물을 주지않아 낭패를 볼 뻔한 일이 생각나서 물을
준 것이다. 물을 주다보니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꽃을 꺾지만, 꽃을 사랑
하는 사람은 그 꽃에 물을 준다.'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맞다! 우리 부부는 꽃을 무척 좋아하고 사랑한다.
지금껏 20년 세월 온갖 야생화를 비롯하여 허브,
그 외 화초를 길러왔지만 꽃을 꺾어본 기억은 없다.
이 말을 기억하면서 또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울컥했다. 꽃을 좋아하시던 엄마(장모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단지를 돌다가
보니 꺾어서 시들은 꽃들이 몇 번 보이기 시작했다.
꽃을 꺾을 사람이 없는데 누구일까? 아내에게 꽃을
꺾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집안 화병에
꽂느라고 꺾은 것 같다고 했다. 그때 아내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노친네 그냥 보시면 될 것을 왜 꺾으시는지 몰라?"
라고 하면서 언짢은 내색을 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못내 후회스럽다. 꽃을 꺾으셔도 좋으니
우리들 옆에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심은 모종이 자라 예쁘게 꽃피면 또 요양원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나겠지 싶다.
어젯밤에 시작한 비가 지금껏 내리고 있다. 이 비는
분명 우리에게는 단비다. 밭에 심은 채소모종과 또
어제 심은 꽃모종들이 빗물을 듬뿍 머금고 제대로
뿌리를 내려 활착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보에
따라 시기를 택해 모종을 심긴 했으나 이렇게 제때
비가 내려주는 것은 기쁨이며 행운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까 어제 저녁무렵에 산책을 하던 아내가
발견한 다섯 잎 클로버의 꽃말이 '큰 행운, 경제적
번영'이라고 하더니 우리에게 단비를 내려주려고
암시를 한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