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와 고양이의 대화법 외 1편
이영은
비가 온다
당신이 데쳐 둔 나물을 접시에 담아 두었어 낮에는 창문을 열고 집 안을 환기했어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잘 울더라 그 애는 내가 밖으로 나설 때 문 앞을 서성거려 반기는 것보다 배웅하는 일이 더 익숙한 듯 보였어 당신도 그렇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장면과 오랫동안 알던 누군가와 이별하는 장면 둘 중에
어떤 걸 더 잘 떠올릴 수 있어?
오래된 벤치에 함께 앉아 먼 성당의 종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는지 세어 봤었지 나는 멀리서도 흰 첨탑을 볼 수 있었어 그때 줄을 엮어 그네를 매어 두고 싶은 나무 하나를 봤잖아 우리는 무르게 돋아난 가지 하나를 꺾어 서로의 가슴께를 가리켰는데
아주 커다란
종려나무의 잎사귀들이 차례대로 떨어졌고 발밑으로 소리 없이 쌓이는 것들이 무서웠어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기다리다 지쳐 목이 쉬어 가도록 울고 있을까 봐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고 당신은
그래
비가 와
비가 오니까 당신은 돌아오지 않겠지 손가락을 접어 가며 처마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들을 세어 보겠지 나는 나물의 물기가 마를 때까지 접시만을 바라보며 오래 앉아 있을 걸 알아 더는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가 나의 발치를
지키고 있을 것도
조우
이영은
멀리 바다가 있는 집이었다. 창틀에는 작은 선인장이 있고, 내가 낳았지만 키운 적 없는 아이가 선인장의 가시를 잘라 냈다.
아이는 자기 전마다 질문을 했고 나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엊그제는 아이가 나에게 사랑을 아느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손가락을 접어 가며 질문에 맞는 대답을 고른다. 우리 함께 모래성을 지어 본 적 있잖아. 그게 무너질 때 사랑이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나는 그 갸우뚱이 싫다.
낡은 티 포트를 꺼내 차를 우린다. 우리 같이 산책 갈까 물어보면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얇고 긴 가시가 발밑으로 떨어진다. 아이는 이것도 사랑이야? 물어보았고,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 그 창으로는 바다가
보여? 보이지 않아. 대답한다. 아이는 어느새 당신이 될 만큼 자랐고, 아이가 자꾸만 자라는 게 나는 싫다.
나의 키를 웃돌 만큼 자란 당신은 나를 달랠 수 있다. 당신은 내가 모르는 것만을 물어보고, 나는 대답해 보지만
당신은 아는 척하지 말라며 읊조리고 나는 손가락을 접는 법마저 잊는다.
열린 창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당신의 몸에 딱 맞는 보트를 사 오기로 했고, 나는 키운 적 없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법부터 배운다.
손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어. 어깨를 감싸 안으면 돼. 파도가 치면 발끝부터 사라지겠지. 편지를 쓰겠다는 말을 덧붙여도 좋아.
만약 편지를 쓰고 싶지 않을 땐 어떻게 할까. 내가 당신이 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질문하는 법을 배운 적 없으니까 묻지 못하는데
당신은 나에게 자신을 떠나보내는 법을 가르치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서서 편지를 쓸게.
멀리 바다가 있는 집이었고, 밀물과 썰물이 반복될 때마다 바다는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애지 겨울호에서
약력: 2022 문학동네신인상 시 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