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10月8日(木曜日)
1.본문:歴代誌第一 21章1〜8節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2. 시작기도
아버지….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모든 악한 것들에게서 제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작은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사람의 시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불안이 찾아올 때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역대상 21장은 다윗의 병적조사와 그에 따른 심판을 다루며, 사무엘하 24장과 나란히 놓고 읽을 수 있는 본문이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다윗을 부추겼고, 다윗은 요압에게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백성을 세어 보고하라고 명했다. 요압은 모두가 왕의 백성인데 굳이 세어야 하느냐며 말렸지만, 다윗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요압은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 결과를 보고했다. 칼을 쓸 수 있는 군사는 이스라엘에 110만 명, 유다에 47만 명이었다. 요압은 왕의 명령이 내키지 않아 레위와 베냐민 지파는 세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일을 좋지 않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치셨고, 다윗은 큰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구했다.
역대상은 사탄이 다윗을 부추겼다고 하고, 사무엘하 24:1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윗을 움직였다고 한다. 하나님이 사탄의 활동을 허락하셨으니 두 본문이 말하는 바는 같다. 하나님이 왜 진노하셨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조사 순서도 역대상은 브엘세바에서 단으로, 사무엘하는 단에서 브엘세바로 되어 있다.
군사 수에도 차이가 있다. 사무엘하는 이스라엘 80만, 유다 50만으로 모두 130만이다. 역대상의 숫자가 적은 것은 레위와 베냐민을 뺐기 때문으로 보인다. 레위는 민수기 1:49에서 계수하지 말라고 했고, 베냐민은 기브온 고지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다의 숫자가 3만 명 많은 것도 유다에 속하게 된 베냐민 사람 3만 명을 빼고 센 결과로 이해된다. 이를 보면 역대기 사가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나누기보다 온 이스라엘을 하나로 보려 했다.
병적조사는 군사적 목적으로 하는 일이고, 이는 하나님이 정하실 일이었다(민 1, 26장). 하나님의 명령 없이 한 조사는 백성에게 군사 의무나 세금을 지우는 근거가 될 수 있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
다윗은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다고 고백하며 죄를 자백했다. 밧세바 사건 때는 나단의 책망으로 깨달았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깨달았는지 나오지 않는다. 사무엘하 24:10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죄를 깨우쳐 준다(요일 1:8, 10). 양심도 마찬가지다. 믿는 사람은 죄를 지을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 영혼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를 털어놓으면 용서받는다(시 32:3-5; 요일 1:9).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며, 사탄은 믿는 사람을 부추겨 죄를 짓게 한다(요일 3:8). 하지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사람은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듯 죄의 세력에서 풀려나고, 부추김에 끌려가던 마음은 참회로 바뀐다(시 124:7). 허물을 용서받고 죄가 가려진 사람은 복되다(시 32:1-2).
4. 나의 묵상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오늘 본문을 읽으며 이 찬송이 떠올랐다. 나도 근심과 낙심 속에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헤아려 보라고 권하곤 한다. 그런데 본문의 다윗이 센 것은 은혜가 아니라 군사의 숫자였다.
사람은 불안할 때 숫자를 센다고 한다. 은행 잔고, SNS 팔로워 수, 성적, 실적 같은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숫자가 있으면 내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다. 남들과 나를 견주어 보고, 때로는 내가 묵상을 잘하고 있는가 싶어서 올린 글이 얼마나 읽혔는지 세어 본다. 숫자를 확인하면 잠깐은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본문은 사탄이 다윗을 "충동했다"고 한다. 충동은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지만, 그 바람에 흔들린 것은 다윗의 마음속이었다.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자리를 지켜 준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나라가 안정되고 사방이 평안해지자 오히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본문이 그 속마음을 다 말해 주지는 않지만, 가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불안과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 교만이 그 틈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사탄은 우상을 세우라거나 노골적인 악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백성의 수를 세어 보게 했을 뿐이다. 겉으로는 별일 아닌 듯했으나, 그 속뜻은 "네 힘이 얼마나 되는지 보라"는 것이었고,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숫자로 옮겨 가는 순간이었다.
요압이 "모두 왕의 백성이 아닙니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하십니까" 하고 말렸을 때도 다윗은 물러서지 않았다. 본문은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했다고 전한다. 한번 격동한 마음은 곁에서 하는 바른말마저 듣지 못하게 만든다. 다윗은 그렇게 자기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갔다.
그렇게 숫자를 다 모았을 때 다윗이 얻은 것은 안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악하게 여기셨고, 다윗의 마음에는 자책이 밀려왔다. 그토록 확인하고 싶었던 숫자가 손에 들어왔지만 그의 영혼은 오히려 무겁고 답답해졌다. 그제야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까지 흘러갔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변명하지 않고 곧바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고 고백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죄를 알았을 때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도 중요하다. 죄를 숨기고 있으면 영혼이 답답하고 무겁지만, 하나님 앞에 털어놓으면 올무에서 벗어난 새처럼 가벼워진다. 그 용서의 자유가 있기에 나도 내 어리석음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다.
5. 묵상기도
아버지….
오늘도 말씀으로 저를 비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신 은혜를 잊고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저도 불안할 때마다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숫자와 사람들의 평가를 먼저 붙잡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제 가치를 제가 가진 것으로 증명하려 했던 교만과 어리석음을 용서하옵소서.
아버지….
사탄이 작은 틈을 타고 들어와 제 마음을 충동하고 흔들 때, 그 소리를 분별하게 하옵소서. 마음이 격동하여 곁에서 해 주는 바른말마저 듣지 못하는 완악함에서 저를 지켜 주옵소서. 양심이 깨우쳐 주는 음성에 귀를 막지 않게 하시고, 죄를 숨기지 않고 곧바로 주님께 나아가 고백하게 하소서. 그때마다 용서해 주시는 은혜로 올무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아버지….
이제는 제가 가진 것을 세지 않고, 주께서 내려 주신 복을 세게 하옵소서. 마음이 술렁이고 근심과 낙심이 몰려올 때에도 주님이 지금까지 인도하신 길을 기억하며 감사로 일어서게 하시고, 제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