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바스코 (Chubasco)
1968년 미국영화
각본, 감독 : 알렌 H 마이너
출연 : 크리스토퍼 존스, 수잔 스트라스버그, 리처드 이간
앤 소던, 사이먼 오클랜드, 오드리 토터
프레스턴 포스터, 피터 위트니
1968년에 만들어진 해양 모험 로맨스 '츄바스코'는 지금은 많이 잊혀진 저평가받은 영화지만 사실 그렇게 무시할 작품은 아닙니다 보통 별로 안 알려진 감독의 작품중에서 뜻밖에 제법 볼만한 영화들이 있게 마련인데 감독이나 배우의 레벨 때문에 과소평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츄바스코'도 그런 케이스죠. 걸작이나 명작레벨의 영화는 아니지만 충분히 상업적이고 통속적으로 즐기기에는 손색이 없는 60년대 고전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선속의 이야기인데 어부를 등장시킨 여러 영화들이 주로 해안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반면, '츄바스코'는 거의 바다에 떠다니는 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로 전개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했다면 고래잡이겠지만 20세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참치잡이 어선이 배경이지요.
실제 부부였던 수잔 스트라스버그와
크리스토퍼 존스
마치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체격 등으로
제 2의 제임스 딘을 기대하게 했던 크리스토퍼 존스
경찰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힌 망나니 청년 츄바스코(크리스토퍼 존스), 그는 고기잡이로 제법 성공한 선장 세바스찬(리처드 이간)의 딸 버니(수잔 스트라스버그)와 사랑에 빠져있지만 완고한 아버지 세바스찬은 츄바스코 같은 망나니가 딸과 가까이 지낸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합니다.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츄바스코를 안타깝게 여긴 판사는 그를 친구인 어업회사 사장에게 소개하고 그 사장의 추천으로 그는 참치잡이 배에 올라타게 됩니다. 츄바스코의 아버지도 어부였고 그 사장과도 알 아는 사이였지만 아버지가 죽은 뒤 츄바스코는 할머니와 어렵게 살아왔고 삐딱한 문제아로 자랐습니다. 배에서 새출발을 다짐한 츄바스코는 성공해서 당당히 버니와 결혼하고자 마음먹었고, 선장은 그에게 전망대에서 고기떼를 찾는 일을 시킵니다. 눈이 좋은 츄바스코는 고기떼를 발견하는데 소질을 보여주고 배는 만선이 됩니다. 그렇게 선원의 경험을 쌓아가던 츄바스코는 나이가 들어서 힘들어하는 노인선장의 배에 타게 되고 그를 도와서 배를 만선으로 만들고 당당히 버니에게 연락합니다. 딸을 츄바스코와 떼어 놓으려고 하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버니는 츄바스코에게 달려갔고 둘은 안젤라 라는 여자가 운영하는 해피하우스라는 유흥업소에서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그날 파티에서 선장이 갑자기 죽게 되고 츄바스코는 실업자가 될 위기에 놓입니다. 하지만 안젤라의 소개로 새로운 배에 타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 배는 세바스찬이 선장으로 있는 배였습니다. 과연 두 사람의 악연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다소 만화같은 통속물인데 뭐 통속영화에서 그정도의 드라마틱한 내용은 흔히 나오는 편이지요. 근본없이 막 자란 반항아 청년이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마음을 고쳐먹고 고기잡이배의 선원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츄바스코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버니
참치잡이 배의 선원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츄바스코
이 영화를 보면 딱 '자이안트'에서의 제임스 딘의 캐릭터가 연상되는데 실제로 츄바스코 역의 크리스토퍼 존스는 제임스 딘을 닮은 배우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작은 키에 다부진 체형도 딱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고 외모도 유사합니다. 실제로 그는 성장과정에서 주인공 츄바스코처럼 반항적으로 어렵게 자랐고 제임스 딘을 닮은 것이 눈에 띄어서 연기자로 발탁되었습니다. TV에 먼저 출연했던 그는 '츄바스코'를 통해서 영화에 데뷔했는데 함께 공연한 수잔 스트라스버그와는 실제로 부부였습니다.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10대 후반에 출연한 '피크닉'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고 '제로지대' '페니의 환상' 등 주연급 작품을 남긴 이름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아직 무명배우였던 연하남 크리스토퍼 존스와의 연애에 아버지인 리 스트라스버그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즉 '츄바스코'의 내용은 크리스토퍼 존스의 실제 삶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사실적인 연기가 나온 느낌입니다. 다만 '페니의 환상'이나 '제로지대' 등에서 깜찍하고 야무진 느낌을 주었던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30세에 접어드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좀 시들어가는 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담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여배우가 그런 분위기를 상실하니 평범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전적으로 크리스토퍼 존스가 돋보였고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그냥 평범한 조연배우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9년뒤에 출연한 '블러디 선데이'에서 곱게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더 괜찮아보였을 정도입니다.
세바스찬 역의 리처드 이간은 '스파르타 총공격' '피서지에서 생긴 일' '야성녀' '러브 미 텐더 등 여러 영화에서 비중있게 출연한 선이 굵고 거친 남성역에 잘 어울리는 투박한 인상의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도 잘 어울렸습니다. 크리스토퍼 존스는 펄펄 날았고 리처드 이간은 적역이었고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평범해보인 작품입니다.
할머니와 둘이 자란 츄바스코
츄바스코의 할머니를 찾아뵙고 그를 그리워하는 버니
할머니의 부음을 배에서 전달받은 츄바스코
고기잡이 선원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하는 츄바스코
선원으로 성공의 조짐이 보이자
버니를 불러 그녀의 부모 몰래 결혼을 한 츄바스코
수준높은 걸작은 아니지만 무난히 재미난 영화입니다. 참치를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도 상당히 색다르고 고기잡이 어선에 대한 디테일한 장면이 나오는 보기 드문 영화지요. '백경'에서 고래잡는 장면이 나온 이후 가장 구체적인 장면 같습니다.
이 영화는 1970년에 개봉했는데 서울의 역사깊은 명문극장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거의 2개월 가까이 상영할 만큼 준수한 흥행을 거두었는데 70년 단성사에서 상영된 11편의 영화중 최장기간 상영작이었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나 존 웨인 주연 '치섬' 같은 영화보다 오래 상영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존스라는 배우가 우리나라에 확실히 각인된 영화지요. 이후 그의 1969년 출연작 '비설'이 개봉되었고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70년 대작 '라이언의 처녀'도 개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점점 올랐고, 제임스 딘의 성공적인 길을 걸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모르는 법, 의외로 '라이언의 처녀'가 혹평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크리스토퍼 리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츄바스코'처럼 반항적 연기가 아니라 너무 직선적인 밋밋한 장교 역이라서 개성이 없었지요. 게다가 '츄바스코' 출연 이후 수잔 스트라스버그 와는 이혼을 했고, 샤론 테이트와 특별한 관계였는데 그녀가 1969년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스타가 된 올리비아 핫세를 좋아했지만 그녀가 딘 마틴의 아들과 결혼해버렸고, 이런 여러가지 악재가 2-3년간 터지면서 그 영향이었는지 배우로서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됩니다. 심지어 심한 교통사고까지 발생하여 하마터면 닮았다는 제임스 딘처럼 세상과 이별할 뻔 했지만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당했습니다. 이후 '펄프픽션'에 출연제의를 받아서 복귀할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했고 '라이언의 처녀' 이후의 활동은 96년 단역출연 작품 하나만 딱 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데뷔때는 많이 주목받았지만 비운의 배우로 끝난 셈이지죠. 존 커나 트로이 도나휴 처럼. 연기폭의 한계, 반항적으로 자란 성격문제, '라이언의 딸'의 실패, 몇몇 여배우들과의 비운 등 정말 운때가 따르지 않으면 배우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 케이스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라이언의 처녀' '비설' '츄바스코' 등은 고전영화 팬들의 머리속에 아련한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장이 죽게 되어 실업자가 될 위기의 츄바스코
버니의 부모문제도 걸리고...
해결해야 할 난관이 많은 신혼부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츄바스코'는 1970년 개봉한 이후 1982년 TV에서 방영하였고, 이후에 자취를 감춘 희귀작이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존스가 이후 별로 성장하지 못해서인지, 꽤 많은 고전영화들이 블루레이 출시가 되어 고화질 영상감상이 가능한 요즘인데도 츄바스코는 아직 해외 DVD만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배우가 전설급이 되어야 초기에 출연한 영화들도 대접을 받기 마련이데 그런 면에서 비운의 영화가 된 셈입니다.
ps1 : 어업을 소재로 한 영화 수작으로는 우리나라 영화 '만선'과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가 생각나네요. 홍기선 감독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도 있네요.
ps2 : 곱게 키운 딸이 장래가 불투명한 청년과 사귀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도 참 많이 다루는 이야기라서 이 영화가 우리나라 정서에도 많이 맞았을 것 같습니다.
ps3 : '츄바스코'는 스페인 말로 소나기라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존스는 포르투갈계로 설정됩니다.
[출처] 츄바스코(Chubasco, 68년) 통속 해양 모험 로맨스|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