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8일(목)
* 시작 기도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으로서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셨습니다.
이러한 복종을 아버지가 받으시고 그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하여 하늘에 있는 자들, 땅에 있는 자들,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의 모든 무릎을 그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입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부르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오늘도 내게 임합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거룩한 불구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대상 21:1-8
제목 :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110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47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탄의 충동을 받아 백성을 계수하였다고 기록한다.
사탄이 다윗의 마음을 충동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하였는데, 그 인구계수는 단순한 인구센서스가 아니라 군사의 숫자를 세는 것이었다.
사탄이 다윗의 마음에 충동질 한 것은 곧 네가 매번 전쟁에 나가 승리를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너의 군사 숫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다윗 네가 강하니까 전쟁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그러니 너의 군사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세어보고 너의 힘을 과시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창조 시에 선악과 앞에서 아담의 모습과 동일하다 하겠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시면서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담은 그것이 너무나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여서 안 먹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를 먹고 말았다.
아담의 이런 행동은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에 다름 아니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해서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키셨다.
다윗의 마음에 지금까지 모든 전쟁의 승리는 ‘네가 한 것’이라는 자기 의의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라고 한 것이다.
그는 여지없이 그 미혹에 빠지고 말았다.
하여 군사령관 요압을 불러 군사를 계수하도록 명하였다.
그동안 요압은 끊임없이 다윗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 역할을 하였으나, 이번만큼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른 말로 고언(苦言)을 한다.
백성의 수가 많든 적든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백배나 더해 주실 것인데 왕은 왜 이런 일을 기뻐하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왕의 명령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요압을 재촉하였다.
이에 요압을 비롯한 사령관들이 계수하기 위하여 출발한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계수한 이들은 아홉 달 20일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삼하 24:8).
그리고 왕에게 보고하기를 칼을 빼는 담대한 자 곧 군사가 이스라엘에는 110만 명, 유다에는 47만 명이라고 하였다.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고 레위와 베냐민의 군사 숫자는 세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치셨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찔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미련하게 행하였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사죄의 은총을 구하였다.
첫 사람 아담의 죄는 아담 이후에 오고오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시험이다.
이는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미혹에 빠져 범죄하였던 것처럼 그 미혹에서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정직함을 인정하셨던 욥 역시 이 죄에서 자유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하여 10명의 자녀들을 다 잃고 모든 소유물을 다 날렸음에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하였다(욥 1:20-21).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한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경건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결국 그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자신의 속내를 온전히 드러낸다.
(욥 3:25-26, 쉬운성경)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임하였고, 무서워하던 모든 것이 닥쳤구나. 나에게는 평안도, 쉼도, 안식도 없이 고통만이 찾아오는구나.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냈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못한 채 끝까지 붙든다.
그리고 자기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욥 27:5-6)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그 안에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하나님처럼’의 본성이 켜켜이 싸여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실존이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가나안 원주민들의 문명과 문물에 마음을 다 빼앗겨 다 멸절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곧 자기들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義로 심판하신다.
그 심판은 그들이 가나안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들이 바로 그 방증이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다 진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그 은혜는 바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음이다.
나는 어떤가?
나야말로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얼마나 애를 쓰고 갖은 수고를 다 했던가?
그렇게 수고와 노력의 결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칭찬을 받기도 하고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그런 나의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으로 알고 날마다 내려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여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툭하면 걸려 넘어지는 것이 나의 자존심이며 나의 영광 챙기기다.
그것이 한 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나도 나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을 충동질한 사탄의 계략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렇게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세전 나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신 그 은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힘이나 나의 능력을 힘입음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담대하게 아버지께로 나아갈 뿐이다.
오늘도 나는 ‘없음’이요 ‘죽은 흙’임을 인정하며 나의 나 된 것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이든지, 아니면 주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나의 넘어짐은 계속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의 은혜의 날개 아래 거할 것이다.
그곳만이 나의 숨 쉴 곳이며 나의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안에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본성이 존재합니다.
이를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이 내 안에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나는 이렇게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요, 실존(失存)입니다.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성적 힘이 나를 온통 지배하여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 하오니 이런 나를 주님의 뜻대로 심판하여 주소서.
주님 안에서 잘 죽는 것이 복임을 믿습니다.
오늘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주님의 은혜를 덧입기 원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탄식이오나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처소로 덧입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곧 덮으심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