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화는 좌익권력강화인가, 진짜 국가발전인가?
나는 서울대 좌파 지식인의 한국 사회에 끼친 범죄적인 측면을 주목해 왔다. 그러나, 서울대 우파들의 좌파들에 대한 의리 때문에, 이것은 철저히 막혀져 왔다.
어제 케이비에스 일일드라마에서 이덕화가 맡은 배역의 딸 인생 망치는 개입을 보았다. 유교 논리를 배척하면서 권위주의자적인 일본식 유교의 권력영역은 움켜쥐고 도덕을 경시하는 기성세대들을 느끼는, 일반대중들의 평균감각을 이덕화의 연기로 보여주었다. 국립 서울대학교 동문들에는 책임의식이 있다는 것을, 법률용어로 풀어서 설명해야만 먹히며, 아니면 딸인생 망치는 이덕화스러운 수준에서 멈추는 듯 하다.
국민과 서울대 동문간에는 채권 채무의 관계에 있으며 일방적으로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독특한 입장을, 준 물권적인 상징성으로 규정했다. 현행 민법에 물권은 법과 관습에 의해서 창출한다고 그러는데, 서울대 동문 지위의 사용수익의 측면을 기도하는 재수생 시장이 빵빵한 관습적 측면을 놓고 보면, 이러한 시각은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제대로 역할 못하는 사람을 끄집어 낼 수 있어야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라고? 서울대 좌파들의 주장은 10여년 동안 단 한번이라도 ‘기스’ 나본 적 있던가? 한국 사회의 공공적 교육라인을 들머쥐고 지식사기극을 벌였던 것 아닌가?
윤영관 교수 저작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송두율식 유물사관의 흔적에 대해서, 이 땅에서 제도권 논리로 유효하게 붕괴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없다! 인터넷에서 이렇게 푸념하는 수준으로는 아무것도 변할 게 없다. 대중들을 계몽 시키며 숫자 모으기도 전에, 감정 거스를 말만을 폭포수처럼 나열하는 가격적 글쓰기는 더욱 더 전망이 없다.
국가발전은 일반적 의미에서 국민의 삶의 질의 전체적 상승이다. 지금에 있어서, 행정수도를 나눠서 어디가 얼만큼 불안하네 덜 불안하네 저울질 하면서, 내 말만 잘들어 하는 ‘이해찬 후보’의 이야기를 듣는 게, 국가발전이 아니다. 이것은 교활한 차원의 ‘사기극’인 것이다.
조선일보 1면 기사를 보고서 하도 울화통 터져서, 간만에 신문을 샀다. 그런데, 친북좌파 심지연교수가 회장으로 있다는 정치학회 세미나 기사도, 나를 더 화가 나게 했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서 정치학회 교수들이 주장하는 ‘변화’ 차원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대한민국의 공화주의적 지향인가? 한국 사회에서 정치학자의 철학적 현학성이 높아질 수록, 딸 인생 망치는 드라마 속 이덕화 배역같은 기성세대는 늘어났다. 대중 사회는 결국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면 끝일 테니 하면서, 대중들의 도덕수준을 하락시키고, 정치학회라고 주문하는 것이 고작해야 언론플레이 수준이다. 언론에 그렇게 한 칸을 얼굴 내놓고 하면 가십 수준에도 고상한 문화자본이 형성되겠지 하는 전략이겠다.
구단주가 성적이 꼴지가 계속 꼴지가 되더라도 자기의지대로 가야 한다며, 기본기 무시하는 감독을 팬들의 분노에도 계속 앉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서울대 좌익 지식인의 사악한 비전을 무효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중수준의 질적 하락에 우파 사회의 인문사회학 토대의 미흡은, 서울대 좌익 지식인의 하자 투성이의 이론을 천황주의에 대드는 섯부른 장수 이미지로 만들고 만다. 게다가, 의심하기 좋아하되 지적 능력이 미흡한 우파 네티즌들의 딴지 몇 번만 있으면, 우파 내부에서도 서울대 좌익의 국가망국으로 이끄는 프로그램을 고칠 기회가 없다.
지방분권화가 국가발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해찬후보가 서울시민들에게 자기 말 잘들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서울대 좌익스타일의 공산주의적 유물사관이 무오류라고 강제하는 스타일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