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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족 사회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 귀족 세력과 왕권 사이에서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 을 하였다. •집단의 단결을 강화하고 부정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였다. |
① 화백제도② 화랑제도
③ 골품제도④ 책화
답이 1번으로 체크되어 있는데 2번 아닌가요?
2. 조선시대에 다음과 같은 제도의 시행이나 노력들이 공통적으로 의도한 바는?
• 오가작퉁법을 시행하였다. • 신분에 관계없이 남자들에게 호패를 패용하도록 하였다. • 춘대 추납에 의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환곡제를 시 행 하였다. •「구황촬요」등을 편찬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도록 하였다. |
① 민본적인 왕도정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② 토지로부터 농민들이 이탈을 막으려하였다.
③ 성리학적 정치 이념을 보다 널리 보급하려 하였다.
④ 국가의 재정을 확충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정답은 2번입니다. 근데 궁극적인 이유는 4번이라고 생각하는데 호패와 오가작통법이 있어서 2번이 답인가요?
다음에서 설명하고 있는 고려 시대의 신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조세 ∙ 공납 ∙ 역의 의무가 있었다. •토지를 지급받는 군인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법적으로는 과거 응시에 제약이 없었다. |
① 국가에서 토지를 지급 밭아 경작하였다.
② 남반, 향리, 잡류, 역리 등이 이에 속하였다.
③ 특별한 직역이 없었기 때문에 백정이라고 불렸다.
④ 주인과 따로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일정량의
신공을 바쳤다.
순서대로 상류, 중류, 양민, 천민인데 3번에 백정은 특별한 직역이 없었다고 나와있는데 역의 의무가 없었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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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번 해설-- 씨족사회의 유풍 즉 신석기 시대 잔재로 남아있다고 하는 것이 동예는 책화,족외혼 신라는 화백, 화랑 입니다. 지문에서 공통으로 설명하는 것을 고르는 문제이므로 일단 두번째 지문도 같이 봐야겠죠.. 두번째지문에서 귀족과 왕의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나오므로 화백으로 봐야겠죠. 세번째 지문은 화백의 운영방식에 대한 걸 물어본겁니다. 화백은 만장일치로 운영되었으므로 다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았겠죠. 그러니까 다수의 부정을 막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님이 1번 문제에서 화랑으로 생각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랑도은 보통 1명의 귀족 화랑과 수백명의 평민 낭도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여러해 동안 같이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친해서 아무래도 계층의식에 대한 것이 완화되었을 것이라고 보통 책에 나오는데 그걸 헤깔리신것 같아염.^^
2번 해설- 오가작통법과 호패제는 보통 농민들의 숫자를 파악해서 조세징수나 역의 의무를 지우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보통 이야기 합니다. 문제 지문에서 보면 이것말고 환곡제도 나오고 구황찰요라고 해서 가뭄이 들었을때 먹을거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담기 책까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문제에서 공통적인 것을 고르라고 했으므로 농민의 토지 이탈를 막을려고 했다가 정답일것 같습니다. 농민들이 이탈하지 않고 말없이 농사를 지어줘야 국가도 재정을 보다 쉽게 확보할수 있으므로 일단은 농민이탈이 보다 상위의 목적이라고 생각해 볼수 있겠네염^^
3번 해설- 문제에서 이야기하는 계층은 양인이 맞습니다. 조세, 공납, 역의 의무를 지고 과거응시가 가능했고 이런 것들이 하나의 힌트가 되겠네요... 근데 님께서 헤깔리신게 일반적으로 조세, 공납, 역의 의무를 진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역은 보통 군역과 요역 등을 말합니다. 근데 고려시대 농민을 백정으로 이야기할때 한자로 백은 회다, 없다는 의미로 되어서 직역이 없는 백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직역이라는 것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관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겁니다. 귀족은 관리로 나아가니까 직역이 있는 셈이겠죠. 또한 중류들도 보통 남반이나 궁궐 수비등을
이어 받아서 하니까 직역이 있는 셈이죠... 근데 농민한테는 직역이 없으므로 백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불리던 백정이 조선시대 세종때 바뀌게 됩니다. 자애로운 세종께서 도살업자를 백성으로 끌어않고 싶으셔서 도살업자들도 이제부터는 백정이라고 부르도록 명령을 했는데 기존의 농민들이 자신들이 도살업자와 동급이 되는걸 싫어해서 그 이후 백정이라는 명칭을 안썻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즉 직역할때 <직> 을 관직할 때 <직>자로 이해하시면 문제는 해결^^
1번문제에서 화랑이 안돼는 이유는 단순이 왕권조절과 거리가 멀다는거 말고 화랑제도가 신분계층의 화합을 목적으로 만든 제도 아닌가요? 언제 책에서 본거 같은데 말이죠. 낭도는 일반 국민이었고. 그 낭도의 우두머리..- 머라고 하는지는 까먹엇네요. 우두머리격은 진골이상의 귀족이 했다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계층의식의 완화라는 표현을 했는데 신분계층의 화합도 비슷한 표현이니까 님이 알고 계신게 맞습니다.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백제, 고구려에도 화랑과 비슷한 제도는 있었다고 유추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