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원제 : The Trap
1959년 미국영화
감독 : 노만 파나마
출연 : 리처드 위드마크, 리 J 콥, 티나 루이스
얼 홀리맨, 칼 벤튼 레이드, 론 그린
피터 볼드윈, 리처드 섀논
1959년 작품 '함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물입니다. 40년대 성행했던 필름 느와르 장르 영화와 유사한 내용이지요. 범죄에 빠져든 주인공이 빠져나가기 위해서 허우적거리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필름 느와르 보다는 서부극의 현대버전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그마한 마을의 외관은 영락없는 서부영화 마을의 모습입니다. 광야 한복판에 어설픈 세트로 세워진 듯한 느낌. 길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들을 치워버리면 마을의 구조는 완전한 서부극입니다. 거기다 보안관 사무실의 모습도 그렇고. 마을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외딴곳에 덜렁 놓여있는 주인공 가족의 주택과 대치를 벌이는 장소인 넓은 광야도 그렇고. 내용 자체도 무법자 무리와 주인공이 대결구도를 갖는 서부극이지요. 자동차를 마차로, 비행기를 열차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즉 서부극의 흔한 내용을 현대를 배경으로 옮긴듯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랄프(리처드 위드마크)는 변호사인데 어쩌다 악당무리를 돕게 되었고, 악당 두목인 마조네티(리 J 콥)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비행기로 도피하려고 하는데 그 장소를 랄프의 고향인 작은 마을의 공항으로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이 바로 랄프의 아버지였던 것이고 랄프에게 그들을 설득하여 그날 하루동안 경비를 느슨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원톱 주연의 리처드 위드마크
차 안에서 쳐다보는 인물은 '보난자'의 론 그린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재회한 동생
하지만 껄끄럽다. 형이 사랑했던 여자와
동생은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옛 연인과의 오랜만의 재회
하지만 이미 동생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랄프, 집나간 탕자의 귀환이지만 그리 반가운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동생인 티피(얼 홀리맨)는 보안관 조수로 아버지를 돕고 있었지만 술독에 빠져 의욕을 잃은 삶을 살고 있었고, 랄프가 사랑했던 여인 린다(티나 루이스)는 동생 티피와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랄프를 쌀쌀맞게 대합니다. 랄프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아버지에게 호소합니다. 마조네티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흉악한 그의 무리들이 마을을 어지럽힐거라고. 아들의 목숨이 위험할까봐 마지못해 승낙한 아버지, 하지만 마조네티에게 걸린 현상금 1만5천달러를 탐낸 티피는 몰래 경찰을 데리고 마조네티를 체포하려고 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랄프에게 이야기하러 가다가 악당의 총에 맞고 숨을 거둡니다. 분노한 랄프는 마조네티를 체포하여 티피와 함께 그를 차에 실어 호송하는데 마조네티의 부하들이 기습하여 경찰들이 죽고 랄프, 티피, 마조네티는 무더운 광야에 고립됩니다. 마조네티의 부하들은 마조네티가 인질로 잡혀 있어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이 와중에 악당들에게서 겨우 빠져나온 린다도 합류하여 4명은 지루한 대치를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마조네티는 티피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합니다. 과연 랄프는 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마조네티를 호송하여 넘길 수 있을까요?
리처드 위드마크, 티나 루이스
모처럼 한 가족이 모였지만 분위기는 좋지 못하다
형이 돌아왔고 형의 옛 연인이었던
아내와 갈등이 깊어진다.
어쩔 수 없이 범죄자를 돕게 되는 주인공
리처드 위드마크의 분노에 찬 연기
이러 일그러진 표정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리처드 위드마크는 필름 느와르의 악당 역할로 경력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데뷔작인 '죽음의 키스'에서 인상적인 악당 조연역을 선보였고, 이후 '무명가' '노웨이 아웃' '밤 그리고 도시' 등의 범죄물에 주로 출연했지요. 경력을 쌓고 인기 주연급 배우가 되면서 선역을 더 많이 맡게 되었고 서부극에서 매우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악의 화원' '부러진 창' '여섯번째 사나이' '최후의 포장마차' '고스트타운의 결투' 등은 그가 출연한 흥미로운 서부극이었습니다. 그의 동생역을 맡은 얼 홀리맨 역시 'O.K목장의 결투' 에서의 보안관 조수, '건 힐의 결투'에서의 망나니 아들 등 서부극에서 조연 연기를 보여준 배우지요.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현대물이 아닌 서부시대로 배경을 맞추어 놓으면 더 어울릴 듯한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리 J 콥은 전형적인 현대의 조직보스에 어울리는 배우긴 하죠.
가족에게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범죄에 휘말려 가족과 분쟁이 벌어지고 아버지와 동생을 잃는 대신에 동생의 아내가 된 채 살고 있던 옛 연인과 다시 재회하여 때늦은 사랑을 찾는다..... 뭐 그러한 내용의 다소 고루한 이야기입니다. 박진감있는 내용의 연속이 아닌 악당두목을 잡고 대치하는 내용위주로 흘러가서 다소 지루한 느낌도 듭니다. 필름 느와르 전성기 시대의 많은 명작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레벨차이가 나고 50년대 흔한 악당 서부극의 보통 작품 정도의 재미지요. 다만 리처드 위드마크의 생기있는 연기는 얼 홀리맨의 힘없는 연기와 대조적으로 빛이 납니다.
남편은 뒷전이고 옛 애인을 더 신경쓰는 여인
악당 리 J 콥과 주인공 리처드 위드마크의
카리스마 대결
노만 파나마 감독은 당시 시대에서 꽤 생소한 인물이지요. 리처드 위드마크 급의 배우가 주연인 영화에서 감독이 좀 빈약한 느낌입니다. 상대역 여배우인 티나 루이스도 메이저 영화 주연으로는 다소 레벨이 낮은 느낌입니다. (이 배우는 얼마전 리뷰를 올린 캐서린 로스 주연의 '스태포드의 아내들' 에서 다소 관능미있는 테니스 치는 부인으로 등장했지요) 리 J 콥이 악역 조연으로 잘 어울리는 배우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에서는 주로 잡혀있는 역할이라서 '워터프론트'나 '12인의 성난 사람들' 에서 보여준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벤허' '기적' '안네의 일기' 등이 등장한 1959년 당시로서는 그냥 흘러갈만한 영화인데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영화가 발표된 1959년에 바로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습니다. 59년 7월에 개봉되었으니 본국인 미국과 몇달 간격밖에 나지 않았지요. 상영시간도 짧고 리처드 위드마크가 당시 인기가 높던 시절이라서 수월하게 개봉된 느낌입니다. 59년 개봉된 이후로 꽤 희귀작으로 오래 머물렀는데 2020년 뜻하지 않게 DVD가 출시되면서 접할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워낙 개성있는 연기로 좋은 명작을 다수 남긴 리처드 위드마크인데 주로 빅스타 배우들과의 공연에서 보조를 잘 맞추어 빛을 발했지요. 단독 주연한 이 영화에서 좋은 연기는 보였지만 영화는 다소 평범해서 아쉬웠습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비행기와 자동차가 부딫치면 누가 이길까요?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할 답과 반대되는 현상이 이 영화 엔딩부분에 발생합니다.
ps2 : 윌리암 홀덴이 이 주인공 랄프 역을 거절했는데 그가 연기했어도 굉장히 잘 어울렸을 듯 합니다.
ps3 : '보난자'로 알려진 론 그린이 악당 무리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
ps4 : 최근 몇년동안 출시되는 비라이센스 고전 DVD가 대부분 이렇듯 이 작품도 도저히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싱크엉망인 한글자막이라서 매우 불편합니다.
[출처] 함정(The Trap, 59년) 리처드 위드마크 주연 범죄물|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