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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반기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단을 쌓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고유하고 비범한 덕목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데살로니까 성도들은 외부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까 성도들이 이 어려움을 잘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으로 도왔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5:16)
16절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온통 속상하고 마음아프게 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뉴스를 보게되면 러시아 저 푸틴을 어째야하나! 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원 정신과를 찾는 환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시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기뻐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상황에 관계없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기쁨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주부들은 요리하는 TV프로를 보면서 기뻐하고 아이들은 스포츠경기를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일시적입니다. 그래도 이런 즐거움은 건전한 즐거움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해악을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를 죄의 쾌락이라고 말합니다. 성적인 쾌락, 마약, 알코올, 도박과 같은 것들은 순간적인 쾌락을 주지만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영원히 고통과 슬픔에 이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는 줄 알면서도 찾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기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영적인 기쁨이 필요합니다.
본래 인간은 ‘기쁨’ 의 에덴동산에서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였었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을 슬프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죽음이나 질병이 없었습니다. 죄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탐욕을 부릴 필요도 없었고, 또한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죄의 소욕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인간은 단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사랑하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기쁨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서 교만과 의심에 빠지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에덴을 상실한 인간은 더 이상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어 늘 사단이 심는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로 인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창 3:19). 그 정도가 아니라 죽음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둘째 사망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계 21:8).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슬픈 소식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다 소유하고 원없이 산다 할지라도 죽음과 함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무엇을 한들 기뻐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0)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많이 소유했다거나 조건이 좋아짐으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있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크게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5:17)
17절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기도”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와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눅 11:1-4). 주기도문은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욕심에 기초해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시지 않지만(약 4:2),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요일 5:14-15).
“쉬지 말고 기도하라”(pray continually)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끊임없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예수님이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 즉 포기치 말아야 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땅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다음세대를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포기하지 말고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 하게 되면 마귀가 주목해 봅니다. 마귀가 있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들도 흔히 만만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놀립니다. 자기보다 강하다싶으면 아예 건들지 않습니다. 마귀도 기도를 않는 사람, 중심이 불분명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엡 6:12).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상황을 핑계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더 사단의 궤계에 말리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한나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시기와 무시로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브닌나와 감정과 혈기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쏟아 놓고 기도함으로써 고차원적인 영적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무엘을 허락하사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5:18)
5: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대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을 주시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과 먹을 음식과 가족과 친구들과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통해서 죄사함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죄책감과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참 자유와 기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셔서 천성을 향하여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사명인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칩니다. 우리에게는 불평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오직 감사할 이유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적극적으로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시 103:2-5)
마틴루터는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불평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행복을 창조합니다.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으로 감사제목을 찾아야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 속으로 가는 중이였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만큼 가다가 두 부자는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참 감사해요“ "제가 아버지를 찾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바퀴를 굴렀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거이 없어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안다친 것을 참 감사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너를 찾는 동안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진 적이 없는 것이 더 감사하구나." 사고난뒤 안다친 것도 감사하지만 아예 사고가 없는 것이 더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사고가 없는 것이 더 감사한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우리는 평범한 것에서 감사제목을 찾지 못하고 오늘 우리가 안전하고 건강한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높은 마음, 욕심, 경쟁심, 시기, 질투가 감사의 마음을 흐려놓을 때가 참 많습니다. 감사하고자 하면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감사를 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으면 감사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감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상황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in all circumstances)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불평은 하지 않지만 마음에 감사가 없을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지 않는 것도 큰 죄가 됩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감사할 일을 불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를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주위 사람들의 시기로 사자굴에 들어가 사자의 밥이 되는 위기 상황을 만났습니다. 일반적으로 힘든 상황을 만나면 “왜 나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다니엘도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참았는데 “하나님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였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는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원수들을 파멸시켜 주시고 사자굴을 없이해 주시도록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고 감사하였습니다.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기뻐하시고 사자굴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굴을 없애주지 아니하시고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사자의 입을 막으심으로 입맛도 다시지 못하게 하시고 다니엘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을 없이 하시지 않고 우리가 믿음으로 위기 상황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위기 상황을 통해서 더 큰 믿음의 능력,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우리 사랑의 교회는 없는 것 바라보고 불평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적극적으로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은혜가 넘치고 무엇보다 감사가 넘치는 성공적인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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