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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회고록 40] 동생 지만 면회도 거절했다…박근혜가 감추고 싶었던 것
내가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최서원 원장이 나에게 몇 차례 편지를 보내왔다.
읽어봤지만 여전히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려고 한다면 당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재판에서 느꼈던 배신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편지 외에는 4년9개월여간 옥중 생활을 하면서 따로 외부와 접촉하는 수단은 없었다.
TV나 신문도 거의 보지 않았다.
그래도 많은 분이 보내주시는 편지를 통해 중요한 소식을 전달받았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TV를 본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고, 총선 결과도 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나 2020년 총선도 모두 투표하지 않았고 정치와 관련해서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외부 접촉 없던 수감 생활, 면회 안 한 이유
2017년 5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출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중앙포토
간혹 과거 인연이 있는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로 일했던 분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구치소 측을 통해 면회를 신청하기도 했지만
모두 만나지 않았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내가 동생을 비롯한 가족의 면회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는 수의를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다다.
다른 분들을 만나지 않은 것은 나와 나눈 이야기가 밖에서 부풀려지거나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사실처럼 퍼지는 것을
경계했던 측면도 있다.
과거에도 그런 일을 많이 겪었는데, 심지어 내가 구치소에 있는 탓에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퍼져도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내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모든 면회를 거절하자, 항간에서는
‘유영하 변호사가 나와 접촉하려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모두 가로막고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분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런 편지가 올 때마다 유 변호사에게 보여주고 “그냥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오해가 풀릴 거니깐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때마다 유 변호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는 그 심정이 무척이나 억울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 변호사도 이런저런 말을 듣는 것이 지쳤는지, 하루는 접견 도중 내게
“대통령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들이 연락이 많이 온다.
그중에는 정말로 꼭 뵙고 싶어서 간절하게 부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조용히 한 번 정도 보시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나로 인해 또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이 싫어 그때마다 거절했다.
수감 기간이 길어지면서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었고, 2039년까지의 형기를 생각하면 기분이 우울해졌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를 정신적으로 지탱해준 것은 국민들의 위로 편지, 그리고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국방·외교·안보 분야와 경제·복지 분야 등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과제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한일 지소미아나 연금개혁 등이다.
만약 이런 과제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탄핵됐다면 마음에 굉장한 후회가 남아 구치소에서도
‘내가 이걸 못 했구나’라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나라를 위해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거의 다 해낸 덕분에
그래도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이용해 누군가의 사익을 챙겨주거나 스스로 사익을 추구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어떤 구형이 나오든, 어떤 판결이 나오든 상관없었다.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나 자신에게 떳떳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치소 생활을 버티게 해준 동력이었다.
구치소에서 책 많이 읽어…예술가 땀, 눈물이 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 조사를 받은 2017년 12월 26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에는 경찰이 배치됐다.
중앙포토
바깥 소식과는 거리를 뒀지만 구치소에서는 하루 1시간 정도의 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통령이었을 때는 바빠서 엄두도 내지 못한 책들을 이곳에서는 정말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대하소설 『대망』이나 김주영의 『객주』, 박경리의『토지』, 이병주의 『지리산』 등 대하소설을 읽었다.
『객주』는 과거 조선시대에 사용한 말들을 그대로 사용해 관심을 갖고 봤다.
전에 읽었던 책도 있었으나 여기서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 읽으며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읽는 맛이 있었다.
김규현 전 외교안보수석이 넣어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와
유 변호사가 넣어준 장진호 전투를 다룬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는 내가 구치소 생활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을 주었다.
『제국의 품격』과『천재들의 도시 피렌체』『인간의 품격』『군주의 거울』『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사피엔스』 등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들이다.
중국 고전인 『정관정요』『자치통감』『사기열전』은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고,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들인데 마치 지금도 그런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다룬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홀로 선 자의 역사』『치욕』등도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었다.
특히 미술 분야 책을 많이 읽었는데 미술은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 주는 치유능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러시아 그림이야기』 『오늘 그림이 말했다』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시대를 훔친 미술』『명화독서』『그림이 위로가 되는 순간』등은 내게 많은 위안을 주었고, 안정을 찾게 했다.
빈센트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을 다시 본 것도 기뻤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다시 만난 것은 큰 행복이었다.
깊은 색채와 정밀한 구도가 인상적인 작품을 남긴 베르메르는 고요한 실내 풍경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 등도 우리 문화의 찬란함과 우수성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실제로 미술관을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해주었던 『스페인미술관 산책』『독일미술관을 걷다』 『도쿄미술관』
『파리 미술관 역사로 걷다』 등도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다룬 『아트인문학』『아트인문학여행』『아트인문학여행 파리』『아트인문학여행 스페인』등은
예술의 암흑시대인 중세를 깨뜨리고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도래하게 만든 수많은 천재 예술가의 열정을 느끼게 해줬고,
내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 잊게 만들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상을 조각했는데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자,
몰래 피에타상 한 구석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나왔다가 찬란한 노을을 보고는
‘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만든 하나님도 이런 것을 만드시고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않는데
내가 겨우 조각상 하나를 만들었다고 뽐내려 했구나’라며 자책했다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고독함과 그러한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을 이기고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은 좌절과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인류에게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겨준
수많은 예술가의 땀과 눈물에서 받은 위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수 합쳐야 한다는 생각 전하려 총선 옥중 메시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20년 4월 총선을 앞둔 3월 4일 구치소 수감 중 보수 야당의 단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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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부터 나에 대한 사면 이야기가 조금씩 나왔다.
자세한 속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대강의 분위기는 전달받고 있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나의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치권에서 선거를 앞두고 으레 나도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또 문재인 정부가 나의 석방을 보수 진영을 분열시키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알고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2020년 3월 4일 유 변호사를 통해 탄핵 후 처음으로 정치권에 메시지를 낸 것도
어쨌든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 진영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 있다가 막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한 상황이었지만
좀처럼 하나로 묶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화학적 결합을 도와 달라는 부탁도 변호인을 통해 여러 곳에서 받았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원하거나 바라고 메시지를 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정치 인생 내내 그런 식으로 메시지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해 총선은 예상과 달리 야당의 대패로 마무리됐다.
나도 구치소에서 언론과 편지를 통해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다양한 의견을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몸담았던 정당이 패배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몸 망가지자 마음도 따라서 지쳐…멍하니 있는 시간도
2017년 8월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해가 바뀌고 2021년 1월 나에 대한 재판이 확정되었다.
재판이 확정되고 기결수 신분이 되자 변호인 접견도 제한됐다.
매일 오던 접견이 일주일에 1번씩으로 바뀌게 되자 혼자 견디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나의 고립감도 깊어만 갔다.
그해 광복절이 되자 또 사면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들려왔다.
말은 무성했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딱히 없었다. 유 변호사는 몇 차례 청와대 인사를 만나기도 한 모양인데,
돌아와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았다.
이 무렵쯤 다시 어깨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일단 치료를 꾸준히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감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체력도 거의 바닥난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한번 망가진 몸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몸이 지쳐가자 마음도 따라서 지쳐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국정을 운영하면서 비록 실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내가 사익을 추구하거나
어느 개인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마음을 다잡고 견디어 냈었다.
하지만 나는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보기도 싫어지고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내가 다 지고 가면 해결될 것” 유 변호사에게 메모지 건네
그렇게 무료하고 무기력하게 일상이 지나가던 2021년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일어난 것이고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초를 겪고 있다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지고 가면 해결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루는 접견 온 유 변호사에게 이런 생각을 담은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나중에 읽어보라고 했다.
그 글을 건네주고 다음에 접견을 온 유 변호사는 메모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소소한 이야기로 나와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내가 사면이 되고 난 뒤에, 유 변호사는 당시 내가 건네준 글을 읽은 후에 구치소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구치소 측에서도 당시 나의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상부보고를 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그 후 예전에 입원했던 서울성모병원 측에 나의 입원 문의를 했다고 한다.
서울성모병원에서는 내가 입원을 하면 계호를 담당할 구치소 직원들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한번 입원실에 들어오면 3일 동안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치소에서는 여직원들이 3일씩 집에 가지 못하게 되면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니
하루씩 교대로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병원에서는 방침상 허락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다른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구치소 관내에 있는 병원도 알아봤지만 계호 문제로 적당하지 않았고, 마땅한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입원할 병원을 찾는 동안 나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구치소 측에서 나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면서 병원을 알아보던 중, 하루는 담당 직원이 유 변호사에게
“삼성서울병원은 구치소 직원들이 하루씩 교대해도 된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 삼성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구치소 측은 삼성과 내가 재판에 연관됐기 때문에 삼성병원 입원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했던 것 같다.
유 변호사는 병원비는 우리가 부담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상부에서 입원이 가능하다고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입원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2021년 11월 외부진료 의뢰 형식으로 삼성서울병원 입원이 결정된 것이다. 내가 삼성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서울 성모병원에 문제가 있어 바꾼 것 아니냐는 오해도 있었지만,
구치소 직원의 계호 문제로 삼성서울병원으로 정해진 것뿐이다.
삼성병원에 입원한 후 의료진이 내 몸 상태에 대해 정밀검진을 했다.
그리고 내 상태를 본 병원에서는 구치소 측에 이듬해 2월까지는 최소한 있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내 건강 상태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어 있었고, 구치소 측에서도 혹여나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삼성병원에 입원했어도, 입원 초기에는 예전처럼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클래식부터 팝송,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이 어느 날부터는 소음처럼 느껴져서 도저히 들을 수 없었다.
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냥 듣는 것 그 자체가 싫어졌다.
그래서 면회 온 유 변호사에게 ‘이제 음악CD는 안 가지고 와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유 변호사에게 “그냥 음악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요…”라는 말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음악이 소음처럼 느껴지고 듣기가 힘들었는지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내 몸은 너무 지쳐 있었고, 몸이 지쳐 있자 마음도 따라 지쳐 가라앉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병원 의료진은 정말 세심하게 나를 진료해 주었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도와주었다.
그 덕분인지 나도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2월 24일 날아든 사면 발표…감정 요동 없었다
2021년 12월 24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시장에서 한 시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중앙포토
청와대에서 사면이 발표된 것은 2021년 12월 24일 아침이었다.
성탄절 사면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병실 안에 있었다.
당시엔 사면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상태였고,
유 변호사도 대선이 끝나야 뭔가 진행되지 않겠냐는 의견이었기에 사면 소식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준 것은 병원 측 인사였다.
이날 한 조간신문에 내가 사면복권 된다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일절 연락을 받은 것이 없었기에 이때만 해도 긴가민가하며 유 변호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전 8시쯤 병원에 나를 만나러 온 유 변호사는
“언론에 기사가 떴는데 아직 정식으로 연락 온 것은 없습니다.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다만 유 변호사는 전날 저녁 늦게 아는 법조인이 전화를 걸어 와
“차관회의에서 대통령님 사면 안건이 처리되어 국무회의에 올렸다고 한다.
아마 내일 발표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말을 듣고는 사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 유 변호사가 TV를 켰는데 때마침 YTN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무언가를 읽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나와 유변호사는 모두 직감적으로 사면 발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 장관은 내가 30일자로 특별사면복권 된다고 발표했다.
내심 기다렸던 순간이었으나, 정작 발표됐을 때는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잠시 정리한 뒤 나는 일단 유 변호사에게 청와대 측에 연락해 감사 인사를 전하도록 했다.
그 후 유 변호사는 내게
“대통령님, 기자들이 병원 밖에서 사면 발표에 대한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뭔가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 나는 차분하게 국민들께 전할 메시지를 다듬었다.
그렇게 해서 유 변호사가 나를 대신해 취재진에게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신병치료에 전념해서 빠른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 문 대통령에게도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사면을 결정해 주신 문 대통령과 정부 당국에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고 감사를 다시 한번 전했다.
돌이켜보면 4년9개월여를 구치소에 있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재임기간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수형 기간을 합친 것보다도 길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가혹했다고 비판하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나중에 역사의 평가에 맡겨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