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유동 계곡. 옛 사람이 바위에 남긴 낙서를 보세요.(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계곡물은 꽁꽁 얼어붙어 발을 굴러도 깨지지 않습니다.
아주 느리게 걸어서 40분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짧은 계곡인데, 겨울이 어디 숨었나 했더니
몽땅 거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바위에도, 얼음에도, 팍팍한 산책길에도. 푸른 색 남아 있는 상록수들과 앙상한
나목들이 푸른 하늘과 새하얀 얼음 사이를 채워놓고 있습니다. 봄! 봄도 있답니다.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계곡 위 산책로에서도 시끄럽게 들릴 정도입니다.
겨울 속에 그렇게 봄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답니다. 계곡에는 선녀도 없고, 사람도 드물어 오직 함께 간 동행과
즐길 겨울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겨울과 작별하고 선유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리지를 만났습니다.
선유동 송면쪽 입구에 있는 음식점 겸 펜션 뒷산입니다.
음식점 이름은? 당연히 '연리지가든'이고요.
- ▲ 두 나무는 손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아니,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연리지, 아시지요? 연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한 몸이 된 두 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두 사람의 팔이 서로결합한 후 함께 사는 셈입니다.
하나하나의 생명을 소우주(小宇宙)라고 한다면, 두 개의 우주가 서로 연결돼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이치(理)'가 연결됐다고 연리지(連理枝)라고 합니다. 단순한 생물학적 결합이 아닌 거대한 이치의 합일입니다.
- ▲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04년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송면 연리지 밑동에 세운 표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수종 및 본수:소나무 1본'. 한 그루라는 말입니다. 나이는 100살이고, 높이는 15미터, 둘레는 1.6미터입니다.
생물학적, 화학적, 나아가 정신적으로 결합해 있는 두 나무를 우리네들은 하나로 보는 거지요.
정말 진짜로 하나일까요? 네, 맞습니다.
밤이면 함께 달빛과 별빛을 받고, 낮이면 함께 태양을 맞으며 아침을 보냈습니다.
머리 위로 흐르는 구름도 함께 즐겼고, 눈과 비도 함께 즐겼답니다.
그렇게 100년을 함께 살아온 두 나무는 슬프게도 지난해에 죽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시름시름 함께 껍질과 솔잎을 떨구며 병을 앓더니 마침내 한날 한시에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한날 한시에 하늘로 함께 여행을 떠난 거지요. 보호수 지정도 해제되어 버렸고, 지금은 권위를 잃은 표석과 철제 울타리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후에 연리지를 찾는 이들이 더 많답니다.
함께 자라나 함께 살다가 끝내 함께 하늘로 날아간 뭉클한 감동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생명이 떠난 그들을 끝없이 찾아옵니다.
괴산에는 연리지가 두 그루 더 있습니다. 그 중에 용추계곡에 있는 연리지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얼어붙은 물줄기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용추폭포와 폭포를 내려다보며 꿈을 꾸고 있는 연리지.
용추계곡은 괴산에서 송면으로오는 길목, 사기막골에 있습니다.
- ▲ 몸통이 맞붙어서 하나로 자라난 용추 연리지.(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용추계곡에 있는 연리지는 정확하게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합니다.
가지가 맞붙은 게아니라 몸통이 붙은 거지요. 가깝게 있는 나무들끼리, 비바람 혹은 산사태로 상처 난 몸통이 접촉되면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연리지에 비해 확률은 더높다고 하나 애초의 한 그루가 병이 나면 하나가 된 나무 전체가 병에 걸리니,
한 몸이라는 눈으로 보면 똑같이 애틋합니다.
- ▲ 두 나무가 한 그루처럼 살고 있습니다.(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용추골로 가는 길에 한 농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 이리 대답했습니다. "사진만 찍지 마시고, 나무님한테
기도 많이 해야 소원 들어주는 거예요." 많이는 아니었지만, 나무님께 기도했습니다.
인간들 손길로부터 보호하려는 고육책이겠지만, 철책에 갇혀 있는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탈 아래에 있는 용추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흘러내리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폭포수, 크지는 않지만
그 빙폭(氷瀑)의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들리시나요? 냉정한 미학, 겨울에 뒤덮인 폭포가 봄 노래를 합니다.
계곡은 겨울로 뒤덮였는데, 정작 청각은 봄에 미혹돼 있습니다.
연리목의 낭만과 봄의 희망을 용추계곡에서 욕심쟁이처럼 맛보고 돌아왔습니다.
승천하는 나무, 왕소나무
이런 나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한 장으로 이 나무님을 다 표현할 수 없기에 아래에 한꺼번에 여러 장을 보여드립니다.
- ▲ (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송면 연리지에서 용추폭포 반대편, 그러니까 화양계곡쪽으로 간 후 T자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을 하세요.
5킬로미터 정도 가면 오른편에 '옥량폭포' 간판이 나옵니다. 간판을 보면서 길 건너 마을 안쪽 시멘트포장길로 들어가면 나옵니다.
행정구역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입니다.
다리를 건너고, 오른쪽 언덕 위에 소나무 숲이 보입니다.
마을 안으로 가서 길 따라 차를 몰면 솔숲 앞까지 갈 수 있습니다. 다리 건너 바로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셔도 좋습니다.
논두렁을 걸어서 언덕을 올랐을 때, 숲이 아니라 소나무 한 그루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주위에 다른 소나무들이 있긴 했지만, 아까 봤던 솔숲의 외형은 왕소나무가 전부였다니까요.
키가 12.5미터에 둘레가 4.7미터. 크기도 크기지만, 밑동부터 잔가지까지 온몸을 쥐어짜듯 비틀며 하늘을 향한 모습이
정말 장관입니다. 나무 속에 신령님이 살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신목(神木)임을 알리는 당줄이 밑동에 둘러쳐 있습니다.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송(龍松)이라고도 합니다. 천연기념물 290호. 이런 나무가 이곳에 원래 세 그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삼송리입니다.
나이는 600살 정도로 짐작되고요. 그 웅자(雄姿)에 저는 말문이 막혀서 한참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나무 아래 앉아 있었답니다.
느티나무가 많은 고장이라고 해서 괴산(槐山)입니다. 성황당 신목은 대개 느티나무였고, 오래오래 산 느티나무는 굉장히 큽니다.
괴산에는 느티나무도 많고, 노거수(老巨樹)도 많습니다. 이 겨울, 누군가가 그리운 분은 괴산으로 가보시면 어떨까요.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그립다 그립다 못해 함께 하늘로 가버린 연리지가 있습니다.
폭포 소리 들으며 꿈을 꾸는 연리목이 있고,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왕소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따라 걷고 온 여행, 여기서 맺습니다.
선유동에서 박종인 드림
::: 여행수첩▶가는 길(서울 기준)
1.대중교통:서울~청주 고속버스(1시간 40분). 청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송면행 버스 1시간 간격. 송면 가는 버스가 중간에
용추폭포가 있는 사기막골에 정차. 송면 연리지는 송면 정거장에서 내려 송면 마을로 들어가 ‘연리지가든’을 찾을 것.
입구에 ‘연리지’라는 이정표가 있다. 선유동계곡은 연리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2.자가운전:중부고속도로 증평IC→증평방면 좌회전 후 괴산 방면 34번국도 직진→대사삼거리에서 괴산고등학교를 끼고
보은, 미원 방면 19번국도 우회전→삼거리 나오면 송면, 덕평 방면 49번 지방도 좌회전→치재터널 지나면 바로 오른편에
사기막골. 용추폭포와 용추 연리지를 보려면 이리로 들어갈 것→송면터널 지나 송정삼거리 나오면 쌍곡계곡, 송면 방향 좌회전.
연리지는 마을로 들어가 곧바로 이정표가 나온다.
선유동계곡은 연리지에서 직진 5분 거리. 왕소나무는 송면에서 나와 송정삼거리에서
화양계곡 방향 좌회전→T자형 송면 삼거리 나오면 우회전은 화양계곡. 문경, 상주 방면으로 좌회전할 것.
5킬로미터 정도 가면 오른쪽에 ‘옥량폭포’ 간판. 왼쪽 깜빡이를 켜고 시멘트포장길로 들어갈 것.
오른쪽 언덕에 보이는 소나무숲이 왕소나무다.
▶ 묵을 곳:연리지가든. 연리지 바로 앞에 있다. 겨울 비수기라 6인용 펜션은 문을 열지 않고, 식당 2층에 있는 독채를 내준다.
2인 기준 1박 7만원. 거실과 방, 화장실 및 샤워시설과 주방 완비. 단체가 올 경우에는 각 방 모두 난방을 해야 하므로
숙박비가 오른다. 식당에서 토종닭, 염소, 청국장 등 판매. (043)833-0222, (011)9152-9086
▶기타 여행 정보 문의는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114. 추천 맛집, 숙박시설을 알려준다. 홈페이지 www.goe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