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방편품에 보면..
"아이들이 장난으로 불상을 그린다 해도..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한 송이 꽃이라도 부처님 탱화에 공양올려도..
어떤 사람이 예배하거나 다만 합장만 하거나..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나무불' 하고 한 번만 불러도..
이 같은 사람 차차 공덕 쌓아서 대비심 갖추어 다 불도를 이룩하느니라." 하셨는데..
아무리 죄업이 많은 사람도 죽기 전에 '나무아미타불' 열 번만 부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하더니
여기서는 한 술 더 떠서 열 번은커녕 한 번만 불러도 극락보다 더 좋은 성불까지도 가능하다고
무한긍정의 확신을 팍팍 심어주시는군요 ㅎㅎ
그런데 그 꽃 한 송이 말인데요..
부처님 전에 꽃을 공양올릴 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1>꽃이라는 물질적 공양
<2>예경하는 마음의 공양
여기에서 전자를 사공양(事供養), 후자를 이공양(理供養)이라고 합니다.,
선물도 마음이 들어가야지 마음이 들어있지 않은 선물은 선물도 아니듯이..
그래서 사공양(물질)에는 반드시 이공양(마음)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bbs에서 혜능스님 법문을 들어보니까 ('입보리행론 해설')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기에 불자가 왜 미꾸라지를 잡느냐고 물었더니..
미꾸라지 잡아서 방생하려고 그런다고 하였다 ㅎㅎ
우리가 어떻게 공양올려야 하겠는가?
내 힘으로, 내가 노동해서, 내가 땀 흘려 일해서 얻어진 것을 공양올려야 한다.
그것이 청정한 공양이다. 거기에는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슨 세금 내듯이 억지로 내는 공양은.. 좀 그렇다.
꽃 한 송이든, 과일 한 쪽이든, 쌀 한 톨이든..
바르게 얻어진 청정한 것을 부처님전에 올리면 그것이 진정한 공양이다. -- 사공(事供)
그리고 또 하나의 공양은
공양물을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이치의 공양이다. -- 이공(理供)
부처님께 삼배의 예경을 드릴 때..
그 순간에 마음속으로 상상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크고, 가장 향기롭고, 가장 아름다운 꽃을..
상상하는 데 비용 안 든다.
부처님께 나는 연꽃을 백만 송이 공양올리겠다..
실제로 구하려면 구하기도 어렵겠지만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 꽃을 내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데는 아무런 비용도 들어가지 않는다.
정성껏..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가장 향기로운 꽃을 어마어마하게..
허공계가 다 하도록.. 삼천대천 세계를 가득 채워서..
그런 공양물을 마음속으로 상상해서..
그 공양물을 부처님께 공양올립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경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공양이라고 한다.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칠보?
그런 게 어디 있겠는가? 사공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공으로는 가능)
'저는 숙세에 복덕을 닦지 않아 매우 가난하고
달리 공양올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사오니
중생을 보호해주시는 자비로운 구제자시여,
이 모든 것을 저를 위해 당신의 위신력으로 받아주소서.' <입보살행론>
출가해서 숲 속에서 걸식으로 살아가며 수행하던 샨티데바에게
사공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을 저를 위해 당신의 위신력으로 받아주소서'
이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공의 여건이 되면 분수에 맞게 정성껏 공양올리고 -- 사공
그것이 준비가 안 되면.. 설사 준비가 된다 하더라도
사공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공을 행하여야 한다.
그럴 때 지화인(持花印 엄지와 검지를 닿게)을 취하고 절을 한다."


삼배를 할 때 머리를 바닥에 대고 두 손을 위로 펴 올리면서
접족례를 할 때, 잠시 지화인을 하고 올렸다가 내리면 된다.
"(마음속으로 관상한) 공양물을 삼보님께 공양올립니다" 라고 하는 수인
실제로 꽃을 공양올리지 않아도 그냥 마음으로만 그런 마음을 내어도 공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실제로 꽃을 공양하면서 그런 마음을 내면 더욱 좋겠지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사공양 없이 이공양만 하여도 공덕이 된다는 것이지요.
"사공과 이공, 어느쪽이 더 공덕이 클까?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똑같다고 하셨다." <혜능스님>
오늘 참 좋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앞으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릴 때
백만 송이 연꽃을.. 백만 송이 장미를 공양올리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싶습니다.
ㅎㅎ 너무 많은가요?
삼배를 왜 세 번 하는가..
신구의 삼업을 다 하여,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귀의한다는 의미가 있고.. -- '석씨요람'
그리고 아니 뭐 '귀의'도 '지심귀명(歸命)'이라 해서
'이 목숨 다 바쳐 귀의한다' 하는데 백만 송이가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주소서."
<뿍꾸사 말라뿟따의 귀의 / 대반열반경>
그리고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도 있잖습니까?
그 유명한 백만 송이 장미.. 그 꽃이 어디 보통 꽃인가요..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마음 없이 무주상보시를 실천할 때 극락이든 해탈이든, 열반(고향 별나라)이 가능하다는..
마치 무슨 찬불가 같은 노래 아닙니까?
미워하는 마음, 진심(瞋心)이 없으려면 그 뿌리 탐심(貪心)이 없어야 하고
탐심이 없으려면 그 뿌리 치심(痴心 어리석음,착각,오해)이 없어야 하므로
'미워하는 마음 없음'은 곧 삼독의 소멸, 즉 열반입니다.
부처님께 백만 송이 장미를..
부처님께 백만 송이 연꽃을..
부처님께 무량무수 꽃공양을..
그런 마음으로 삼배를 올립니다. _()()()_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그런 말도 있지만
우리가 부처님께 꽃공양을 올릴 때
그 꽃이 아름답겠습니까.. 아니면 그 마음이 아름답겠습니까?
꽃공양 그 마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러므로 비록 그 꽃이 없다 하더라도
그 마음만 있다면 그것이 공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만으로도 크나큰 공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미도 좋지만 이왕이면 연꽃이 더 좋지 않냐고요?
그런데요, 저는 장미만 장미가 아니고 연꽃도 장미라고 생각합니다.
장미 장자, 장미 미자 장미(薔薇)가 아니라.. 길 장자 아름다울 미자 장미(長美).. 영원한 아름다움의 꽃..
마치 영원히 꺼지지 않는 광명, 장명등(長明燈)처럼..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장미..
장미를 올리는 그 마음도 장미요, 연꽃을 올리는 그 마음도 장미요,
무슨 꽃을 올리든 그 마음은 언제나 장미꽃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정성으로 장엄된 이 마음의 꽃이 시들리가 있겠는가~~ 멋지지 않나요?
☞ 아쇼카왕의 전생 이야기, 두 사미의 보시 http://cafe.daum.net/santam/IRnJ/30
부처님 십대제자의 옷은 왜 저렇게 화려하게 그릴까? http://cafe.daum.net/santam/IZ0A/315
첫댓글 부처님께 백만 송이 장미를..
부처님께 백만 송이 연꽃을..
부처님께 무량무수 꽃공양을..
그런 마음으로 삼배를 올립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