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내게 구하는 것
미가 6 : 6 – 16
기독교의 신앙은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바치고 열심히 섬기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입니다. 다른 종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믿고 많은 것을 바치면 좋은 데 간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율법과 규례와 법도를 주시며 백성들에게 가르쳐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규례대로 믿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분향하다가 죽었습니다.(레10:1,2)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대로 믿지 않으면 화를 받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6)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열심히 섬기려고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 년 된 송아지는 ‘번제물’로 가장 귀한 제물입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과 맏아들’을 제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7)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절대로 금하셨습니다.(왕하16:3) 그럼에도 이방인들이 몰렉에게 자녀를 제물로 바쳤던 것처럼, 그들도 맏아들을 드렸습니다.(렘7:31)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것을 누가 요구하였느냐’고 하시며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이며,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1:12,13)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맘대로 제물을 바치고 섬기는 것을, ‘성화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 만큼이나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이 오늘의 교회에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교회는 문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유향을 제단에 불사르는 것을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2:2)
오늘의 교회에 가장 큰 문제는 예배 의식입니다. 예배를 2부에서 5부까지 드리는 대형교회가 많습니다. 여행이나 등산 준비 한 사람들이 주로 1부 예배를 드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배 한 시간 참여한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적인 행위를 다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무엇을 하든 교회는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제4계명을 무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그들을 향하여 ‘매가 예비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를 들을지니라”(9)
‘너희에게 매가 예비되었다’는 말씀은 성읍(예루살렘 성)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신 여호와의 메시지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 행위에 대한 책망과 무서운 심판 경고입니다.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경외함’은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지혜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예배드린다면 마음이 두렵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신다고 믿으면,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한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용서를 빌며 회개하게 됩니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드리는 예배가 속죄함을 받는 참 예배입니다.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말씀 듣는 귀가 열리고, 꿀맛 같은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그러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열심히 부르는 찬송이나 기도도 허공을 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1:12)
여러분은 마당만 밟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믿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들의 대표적인 죄목을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 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10)라고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집’이라고 말한 것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 번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음에도 속죄함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속죄함을 받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는 자는 여전히 악인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계속해서 그들의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 냈습니다. 그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저울의 눈금을 속이고 부당한 이득으로 재물을 모았기 때문에 강포가 가득하였고, 혀가 거짓되다고 말했습니다.(10-12)
미가 선지자는 그들의 결과를 ‘병들게 함’과 ‘황폐하게 함’ 두 가지를 말씀했습니다.(13-16)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병들게 하였으며, 네 죄로 말미암아 너를 황폐하게 하였나니”.(13)
그들이 누굽니까? 그들이 이방인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라고 말하며 일 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바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입니다.(6)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여호와께 바치며 제사지내는 자들입니다. 맏아들까지도 바쳐서라도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입니다.(7)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은 쳐서 병들게 하고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여호와께서 주신 규례대로 하지 않은 잘못된 믿음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비뚤어진 믿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규례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15) 노력해도 소득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합 집과 같이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16)
그들은 많은 제물을 바치고 열심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병들고 황폐하여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만 하셨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 받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거절하고 집을 나간 탕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버려진 자가 아니라 잃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서 언약 맺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매를 쳐서라도 깨닫고 돌이키게 하셔서 다시 일으키시고 구원받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버려진 자가 아니라 잃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매를 쳐서라도 잘못을 깨닫게 해서 바르게 믿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8절 말씀을 봅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대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보이셨다’는 말씀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고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열심히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여서 재물을 착취했던 그들에게 정의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불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인자를 베풀고 약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맨발로 도망할 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신하 아비새가 당장 건너가서 왕을 저주하는 시므이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고 말했습니다.(삼하16:10)
다윗은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보고 자신이 왕이 아니라 저주받는 죄인임을 아는 다윗의 겸손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겸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면 교만해집니다. 자신의 죄를 알면 자연히 겸손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시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교통법규를 지켜야 하듯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대로 바르게 믿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믿고 섬깁시다. 정의를 행하시고, 친절과 자비를 베풀며 인자를 사랑합시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셔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