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풍서풍
펄 S. 벅 저자(글) · 박혜선 번역
길산 · 2009년 11월 05일
동풍서풍』은 늦은 오후 녹음이 우거진 정원과 나직나직한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한 중국 여인의 구술사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름지기 ‘여자의 일생’이란 늘 은밀하면서 고되다지만, 젊은 여인 궤이란의 일생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그녀는 중국의 전통적 여인상에 가까우면서도 긴 인고의 세월조차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인물이다. 슬픔보다는 정열, 회피보다는 충돌이, 신선한 이야기 속에 그려지는 이 작품은 중국 여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작가정보
저자(글) 펄 S. 벅
미국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10여 년간 어머니와 왕王 노파의 감화 아래서 자랐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마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남경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중국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고,
1931년 작품 <대지>로 미국의 여류 작가로서는 최초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연인 서태후>, <북경의 세 딸>, <사탄은 잠들지 않는다>, <성서 이야기> 등 다수의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번역 박혜선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CBS 방송아카데미 영상 번역작가반을 수료하였다.
현재 SBS 번역대상 최종 심사기관으로 위촉된 (주)엔터스코리아
의 전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기억의 법칙 25가지> <내안의 그대> <꿈의 성> <위험한 명화> <연인 서태후>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 서평
저 어두운 물결은 어떻게 달빛이
자신을 길어 올리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 나의 주인이시여, 무사히 돌아오세요.
내가 당신 없이
저 희미한 물결이 되지 않도록
오래된 이야기들은 힘을 가진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저무는 이 시대, 그럼에도 이때까지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라면 그 안에는 분명 어떤 힘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펄 벅의 <동풍서풍>은 늦은 오후 녹음이 우거진 정원과 나직나직한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한 중국 여인의 구술사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모름지기 ‘여자의 일생’이란 늘 은밀하면서 고되다지만, 젊은 여인 궤이란의 일생은 그야말로 흥미롭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전통이라는 조용한 뜰에 갇혀 발소리조차 죽이고 살아왔던 세월, 꿈도 희망도 없이 오직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가기 위해 키워졌던 유년기, 그러다가 생전 얼굴도 마주쳐본 적 없는 정혼자에게 시집을 가야 했던 슬픔, 그러나 또다시 첫눈에 그 정혼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로 인해 비단 휘장 안에서 눈물을 감추며 인내해야 했던 세월…….
이 모두를 주인공 궤이란은 천 개의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쓰러져 울다가도, 다시 주먹을 꼭 쥐고 일어나 사랑을 쟁취하고, 정에 이끌려 마음 약한 소리를 하다가도, 또다시 단호한 결심으로 상황을 수습한다. 즉 그녀는 중국의 전통적 여인상에 가까우면서도 긴 인고의 세월조차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인물이며, 때문에 이 이야기에는 슬픔보다는 정열, 회피보다는 충돌이, 신선한 이야기 속에 그려진다.
동시에 <동풍서풍>은 펄 벅의 데뷔작이면서, 중국 여인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계관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중국 여인들의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내실의 풍경, 중국적인 동시에 세계 보편적인 사랑의 숭고함, 또한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내면의 기품을 간직한 중국 여인들의 일상사를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작품의 손을 번쩍 들어주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부는 곳,
거기에 당신이 있을 때
“그는 말수도 적고 한 마디를 해도 건성이었고, 그 눈길은 나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어요. 그의 머릿속은 내가 있는 이곳을 떠나, 저 육지와 바다 너머 세상 모든 곳을 떠돌고 있었던 거예요…… 이게 바로 내가 간직한 슬픔이에요.”
결혼 첫날밤 남편에게 퇴짜를 맞은 궤이란은 슬픔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린다. 서양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잘생기고 박식한 남편은, 중국의 불합리한 전통에 반기를 들며 구식 여인 궤이란을 돌덩이처럼 바라보았다.
결국 궤이란은 남편을 위해 신식 여성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과감히 전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매일 아침 공들여 하던 화장도 그만두고, 수수한 옷을 입고, 무엇보다 십 수 년이나 조여 놓았던 전족을 풀면서 신세 한탄을 한다. 오직 사랑 하나만 쫓아 이 무시무시한 변화를 감행하려는 이 여인은, 그럼에도 바로 이 사랑을 통해 진정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놀랍게도 <동쪽 바람, 서쪽 바람>은 사랑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외톨이가 되고 돌을 맞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궤이란은 ‘그 대단하신 사랑’ 때문에 신식 여인이 되겠다고 덤벼들고, 그로써 어머니와 시댁의 외면을 받는다. 거기에다가 난데없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친 오빠까지 서양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된다.
결국 궤이란은 전통이라는 굴레 안에서 평생을 보낸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유를 외치며 고집을 부리는 오빠, 더 나아가 빠르게 변해가는 세태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젊은 그녀가 머물 곳은 어디까지나 동시대 젊은이들 속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슬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오빠와 그 서양 아내, 남편의 손을 들어준다.
결국 펄벅은 긍정적이고 헌신적인 궤이란을 통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되어온 불합리한 세계를 깨치고, 새로운 길로 나서는 젊은이들의 행보를 씩씩하게 그려낸다.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었던 무조건적인 희생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는 이 세 젊은이들은, 지금까지도 전통과 새로움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재 21세기 중국의 모습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펄벅은 격동기의 중국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넘어,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시대에 사랑 하나로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궤이란의 천진무구함을 강조한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부는 자리라도, 그곳에 사랑만 있다면 달려가는 한 여인의 자취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가진 희망은 또다시 사랑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의 사랑을 얻고 아들까지 낳게 된 궤이란은, 길고 험한 여정의 끝에서 무지를 벗고 얻은 새로운 믿음, 그 빛나는 긍정성을 발휘해 이렇게 외친다.
“남편은 내가 오래된 것에 집착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는 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모든 것을 흘려버려야 하오, 내 사랑. 우리는 우리의 아들이 낡고 쓸모없는 것에 구속되기를 바라지 않소.’ 나는 내 아들과 막 태어난 조카를 떠올리며 남편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이제 알아요. 그는 항상 옳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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