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
급하게 이 주머니 저 주머니를 더듬어 보아도 없다.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허탈한 감정이란 표현을 이런 사소한 일에 써도 되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이다. 지갑과 함께 꼭 소지해야 하는 것을 바쁜 일도 없는데 왜 못 챙기고 나온 것인가. 건망증이 문제다. 정전으로 갑자기 주위가 캄캄한 것 같다. 집에 다시 올라가 가지고 나올 수도 있지만 좀 먼 거리이기도 하고 번거로워서 포기하기로 했다.
마침 백원짜리 주화 몇 개가 있어 산에 오르기 전에 구시가지에 있는 공중전화박스를 찾아가 집사람에게 전화하기로 했다. 잠깐이나마 끊어진 관계를 복원해야겠다는 초조함 때문일까. 스마트폰이 내 목에 걸려 있지 않으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인가. 모든 길은 스마트폰으로 통하는 것일까. 걸으며 생각한다.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몇 개나 되나. 확실하게 아는 건 집사람 것과 큰아들 것뿐이다. 막내는 내 번호와 셋이 같아 끝 네 자리는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중간 네 자리가 가물가물하다.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예전에는 꽤 많이 기억했는데 집사람 '1'을 시작으로 하여 간편 번호를 쓰다 보니 그동안 내 기억력은 퇴보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약식 번호를 쓰지 말고 번호를 다 누르는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공중전화박스가 어디 있었는데, 없을까 봐 불안하다. 늘 다니던 길이고 오며가며 본 것 같은데 실제로 찾아가 이용한 적이 없어서인지 확신이 없다. 눈앞에 나타난, 하늘빛을 띤 박스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늘 지나치면서도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건 두 사람이 쓸 수 있는 박스였다. 전성기에는 간혹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을 텐데 이제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랫동안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라며 나를 향해 반가움의 미소를 짓는 것 같다. 나도 친근감을 느낀다. 왼쪽 박스에 들어서 전화기를 들었더니 목소리 고운 여인이 동전을 넣으라고 안내한다. 버튼을 누르고 신호가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는 모양이다. 끊자 소리 내며 떨어지는 주화를 다시 넣기를 반복한다. 네 번째에야 집사람이 받는다. 통화 성공! 공중전화가 남아 있음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집 전화도 없애고 온통 스마트폰 시대이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 손님도 많지 않은데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지. 집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전화기를 두고 간 걸 알고 금방 뒤따라 뛰어 나왔는데 엘리베이터가 떠난 후였단다. 무릎도 시원치 않은 집사람에게서 뛰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작은 사건이 뛸 정도로 급한 일이 돼 버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모두에게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의 위력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공중전화라는 말도 잊고 지냈고 마지막으로 사용해 본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 공중전화를 한번 사용하고 싶었던 것도 통화 목적이었으니 할 말은 별로 없었다.
잠깐이었지만 통화를 하고 나니 꽉 막혔던 상황이 좀 호전된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옆 단지의 길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동산 산책로로 진입한다. 염화칼슘이 만든 얼룩무늬가 낙상을 조심하라고 내 마음을 일깨운다. 계단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언덕길이 나타난다. 드문드문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약수터 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 말바위 쪽 층계로 오른다. 곳에 따라 메트 위로 흙이 덮여 흙길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몇 년 전까지 약수터에 가서 물을 떠다 식수로 썼는데 집사람이 다친 후로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혼자라도 가서 운동 겸 다시 약수를 떠다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트PET병 몇 개라도 떠다 주면 집사람이 좋아할 텐데...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땅바닥에는 한여름 숲의 그늘 대신 양지가 넓게 자리를 잡았는데 잎이 없는 나무의 가지들이 가늘게 얽힌 그림자로 묵화를 그린다. 그 그림자 가지 사이로 산책하는 내 그림자 동영상이 지나간다. 나는 나인데 온갖 형상 다 생략하고 그림자만으로 전체적인 내 모습을 그린다. 동식물의 구분도 없다. 그림자는, 햇빛을 받는 사물이 무엇이든 너희는 똑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걸으면서 내 손발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본다. 동산이라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일인 그림자극에서 나는 독백을 계속한다. 움직이는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은 동일하니 제목은 자화상이라고 붙여야 할 것 같다. 걷는 내내 움직임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무 그림자는 움직이는 내 그림자가 스칠 때 부럽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설명해 줄 수 있다. 바로 그게 동물과 식물의 차이라고 말이다.
입춘이 지나고 날씨는 쌀쌀해도 볕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잠깐 서서 나뭇가지를 보면 잎눈, 꽃눈들이 많이 커져 그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봄이 느껴진다. 그 속에 푸른 봄바람, 꽃바람을 잉태하고 있는가 보다. 보폭을 크게 하고 팔을 휘둘러 본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층계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더 천천히 걷는다. 내가 창안한 걷기이다. 서 있는 발을 굽히면서 다른 쪽 발은 발가락이 먼저 닿을 때까지 천천히 아래 단으로 쭉 뻗어 충격을 줄여 마치 쿵후하듯이 걸어 정적인 가운데 운동 효과를 기대한다.
첫댓글 반가운 공중전화와의 만남으로 스마트폰의 노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네요. 늙을 수록 서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부부연과 찬바람 사이로 돋아올라오는 봄을 같이 느껴보는 정다운 수필 감상 잘하고 갑니다.
내일 모임 때는 몇 남지않은 회원일지라도 모두 만나뵜으면 합니다.
Evergreen님, 방문 감사!
공중전화는 아직 떠나지 않고 우리 곁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