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8.22 06:59ㅣ최종 업데이트 22.08.22 06:59
▲ 산 정상에서부터 줄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 황정석
산 정상에서부터 줄줄이 무너져 내렸다. 산이 피눈물을 흘리듯, 붉은빛 토사를 마구 쏟아냈다. 처참하게 무너진 곳은 여기 말고도 더 있다.
▲ 산이 온통 조각난 채 붉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 황정석
주변의 산림들이 조각난 채 붉은 핏물을 쏟아낸다. 이번 여름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산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산림청은 홍수와 산사태를 막기 위해 계곡에 사방댐을 세웠다. 그러나 사방댐도 아무 소용없었다. 산꼭대기부터 흘러내리는 토사가 사방댐을 가득 채운 채 아래쪽 마을을 그대로 덮쳤다.
▲ 산림청이 계곡에 산사태를 막기 위한 사방댐을 세웠지만, 과도한 산지 개발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 황정석
▲ 산사태를 막기 위한 사방댐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 황정석
이곳은 지난 14일 폭우로 홍수 피해가 발생한 부여군 은산면 일대 모습이다. 부여에는 13일부터 14일 오전 8시 30분까지 176.7㎜의 폭우가 쏟아졌다.
홍수 피해 키운 밤나무 농사
▲ 급경사지와 산 정상부에도 밤나무를 심었다. 적은 비에도 산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황정석
산사태와 홍수가 발생한 것은 예전에 비해 많은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수 피해가 컸던 건 폭우 때문만은 아니다. 밤나무 농사가 홍수 피해를 키웠다. 밤은 부여,청양, 공주의 특산물이다. 문제는 밤나무를 심기 위해 산림의 나무를 모두 베어낸 데에서 시작한다. 특히 급경사뿐만 아니라 산정상부까지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밤나무를 심었다. 산에 자라던 울창한 나무들을 자르고 밤나무를 심었으니 토사가 흘러내리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 밤나무를 심는다며 산에 자라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급경사지와 산정상부도 가리지 않았다. ⓒ 황정석
산사태는 정상적인 산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지난 2021년 포항 죽장면의 산사태에서 보듯(사과나무 '대학살'... 산꼭대기에서 벌어진 섬뜩한 일 http://omn.kr/1vifn), 산사태는 대부분 벌목 후 어린나무를 심은 곳이나 임도 등 인위적으로 산지를 훼손한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산림이 울창한 나무들은 홍수와 산사태를 막아준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바닥의 풀들이 비가 와도 토양을 붙들어 주고, 서서히 땅속으로 빗물을 흡수한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집중 호우 시 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커다란 천연 저수지가 된다.
그러나 벌목을 하고 어린 나무를 심으면 숲의 가장 중요한 홍수 예방 기능이 약화된다. 빗물을 머금는 능력이 상실되고, 벌목으로 노출되고 연약해진 토양이 집중호우에 유실되며 산사태가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밤나무 자체가 아니라, 산지 경사도나 표고 등 안전 기준이나 산사태 대비책도 없이 산림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밤나무를 듬성듬성 심은 데 있다. 부여, 청양 등에서 이뤄지는 밤나무 농사와 같은 형태로 산지를 훼손하고 나무를 심으면 어떤 종류의 나무라도 산사태에 취약해진다.
특히 이곳 지질은 사진에서 보듯 연약한 황토가 주를 이룬다. 또 가을에 땅에 떨어진 밤을 수확하기 위해 밤나무 아래 풀도 자라지 못하게 한다.
산사태로 끝나지 않는다
▲ 급경사지에 밤나무를 심은 산림이 무너지며 아래에 있는 농경지를 덮쳤다. ⓒ 황정석
▲ 밤나무 산지에서 무너져 내린 토사가 논을 덮쳐 논농사 피해가 발생했다. ⓒ 황정석
농경지 피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밤나무 아래 있는 마을이다. 흘러내린 토사가 마을을 덮쳤다. 가옥이 파손되고,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았다.
▲ 밤나무밭이 산사태로 무너지며 마을을 덮쳤다. ⓒ 황정석
▲ 고추건조기가 산사태에 떠밀려 뒹굴고 있다. 사진 위쪽에 중장비가 마을에 덮친 토사를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 황정석
급경사지에서 갑자기 흘러내린 토사가 도로를 덮친 현장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언제든 지나가는 차량이 매몰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 밤나무 심은 산림에서 붉은 토사가 도로를 덮친 모습. 중장비가 토사를 치운 상태이고, 지나가는 차량이 보인다. ⓒ 황정석
▲ 밤나무 산지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아래에 있는 도로뿐 아니라 농경지까지 덮쳤다. ⓒ 황정석
숲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는 것이다. 나무가 울창한 숲은 많은 빗물을 저장한다.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많은 비에도 홍수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울창했던 나무들이 사라지면 상황이 급변한다. 숲에 나무가 없으니 비가 오면 빗물이 일시에 하류로 쓸려 내려간다.
결국 하류로 몰려 내려온 빗물은 하천 수위를 급상승시켜 제방을 넘쳐흐른다. 주택들이 침수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게 되는 대홍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농민들이 밤나무로 수종 갱신을 신청하면 무조건 허가가 났다. 급경사지의 밤나무 농사는 산사태에 취약하다는 걸 산림청과 지자체는 몰랐을까?
▲ 산림에 나무가 사라지면, 홍수 유출량이 급증하여 하천 수위가 급상승, 주변 지역을 침수시키며 홍수 피해를 발생시킨다. ⓒ 황정석
▲ 흘러내린 빗물은 마을을 덮치고, 주변 농경지도 침수시킨다. ⓒ 황정석
이번 홍수 피해가 크게 발생한 부여군 은산면 거전리의 경우, 대부분의 숲이 밤나무 밭으로 수종 갱신되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밀려온 토사가 농경지를 덮쳤다. ⓒ 황정석
▲ 하천 제방을 넘어 넘쳐 흐른 빗물로 고구마 밭이 물에 잠겼다. ⓒ 황정석
기후위기에 대응한 산림관리 필요
지구온난화로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여름엔 54일이라는 최장 장마 기간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쏟아 부은 기록적인 폭우는 올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예상할 수 없는 폭우가 점점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비한 산지 관리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부여군의 홍수 피해 사례가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존의 밤나무 농경지에 대해 산사태 방지책을 마련하고, 더 이상 산 능선부와 급경사지의 산지 개발을 금지해야 한다. 또 전체 산림 면적 중 어느 정도까지 수종 갱신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미리 홍수 유출량을 산정하여 개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 산림청과 지자체는 산지관리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다. 부여군엔 산지를 훼손한 밤나무 농사뿐 아니라 산림청의 벌목 현장도 많다. 결국 산림청과 지자체의 잘못된 산지관리가 홍수 피해를 키웠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부여군 은산면의 홍수는 천재와 인재가 겹쳐 피해가 증폭되었다. 더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산지관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기후 위기에 대비한 산지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황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