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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지 모른다. 처음 만났으니까 만나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만났고 그의 웃음과 이야기속에서 그냥 " 신의 전령이시구나 이 분은 !!! " 그래졌다. 사람들이 모두들 미쳤다고 한단다. 물론 그의 지인들이 그러는 것으로 안다. 곁에서 잠깐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심 쾌재를 불렀다. " 히야~ ~~ 잘 미쳤다. 정말 잘 미치셨읍니다." 미쳐주어 고맙심더! 그 때 누군가 말했다. 강화도의 새 보물이라고 그래서 얹어 말했다. 대한민국의 보물이라고. 눈빛이 초롱초롱 생기에 가득 차 조양방직 살리는 작업중의 단상들을 말씀중
조양방직의 먼지도 채취해 담아두고 다 부스러져버린 기와도 그대로 살려낼거라는 말씀을 듣는데 나는 문득 '강화도에서 띄우는 편지'의 주인공 이경수샘이 생각났다. 가슴 더운 남자 경수샘은 역사를 가르치시면서 그때 그 때 당시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가는지를 애정을 담아 전해주는데 이 분의 말씀속에선 쓰러지지 않고 있다는게 기적이라며 "귀신이 받치고 있었다" 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비록 낡고 다 쓰러져가는 옛 건물이지만 얼마나 귀히하고 사랑스레 대하시는지 그 맘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물론 짐작일뿐이라서 모든것을 다 쏟아부으시는 분의 심중의 '백분지 1' 이라도 제대루 내게 닿았을지 알 수 없긴해두 ,, 7월 19일 수요일 오후에 * 조양방직 *
조양방직은 1930년대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인조견회사로 자본금 50만원으로 강화지역의 대표적 지주 가운데 하나였던 홍재묵이 강화읍 신문리 588번지에 세운 회사. 이 회사는 설립과 동시에 건축을 시작하여 그해 9월 2일에 공장건물이 준공되었고, 조업은 9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직조기 15대를 설치하고 인조견을 생산했지만, 이후 공장증축과 기계증설로 번성기에는 연면적 2,314.1㎡의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노가미식 직조기 30여대를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인조견은 외국산에 비해 품질이 좋아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에까지 수출되었고 연간 매출목표액은 50만원에 달했다. ㅡ퍼온것임 ㅡ 1935년 8월 16일 동아일보 기사참조 ㅎ 2017년 7월의 모습들중 일부입니다.
담장에 붙였다 뗀 자리지만 모두 광고였을것이니,, 그 또한 생생한 삶의 모습들 칠은 벗겨지고 녹이슬어 세월을 말해주는 긴 담장중 일부,,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죠. 내부까지 찬찬이 담아둔 사진기록은 외장하드 어디쯤엔가 조양방직이란 이름으로 들어있을건데 글쎄 지금 찾는건 패스 ㅡ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속으로 ㅎㅎ 조양방직 되살린다하니 모두들 좋아라하며 듣고있는 모습들속의 안경쓴 어른 이 어른은 인사동서 오셨다는 강화도에서 북카페를 하고싶다시는 어르신으로 단군이래 강화도의 강화학에 대한 책들만 일만권넘게 소장하고 계신 분으로 강화도의 어디서가 좋을지 탐색중이신 님이시라고. 다음에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먼저 인나 가셨다. 암튼, 삼복염천에 하루 왼종일 세월실린 케케묵은 먼지속에서 땀범벅되어 일하시다 잠시 차 한잔 초대받아 휴식중이신거라고 ,, 초대해 주신님은 한두뼘 갤러리 이철우실장님 이시라고,,, 강화군 문화관광과에서도 조양방직 되살려 내는 작업에 반가워하며 무얼 도와줄까요? 라고 한다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주시는게 도와주는거라고 하셨단다. 순간제의 ㅡ 빨리 가시기전에 다 모이세요. 기념 사진 한 컷 담아요. 조양방직이 되살아 난다하니 모두들 이구동성 제 일처럼 기뻐하시던 님들이셨다. 사진 왼쪽으로부터 앞줄 손윤경 한두뼘 갤러리대표님, 신의 전령님, 백승익 사진작가 이옥희 화가님 뒷줄 좌로부터 이철우 한두뼘 실장님, 조명 인테리어 기술자님(서울) 강화도로 이사오시려 집을 알아보시는 중인 '신명나눔' 노수환 사물놀이 대장님(서울) 장소는 중앙시장 A동 1층 한두뼘 갤러리 조양방직 전령이 가시고 난뒤 두분의 표정 ㅡ 사진작가와 실장님 두남자의 표정 재미지다. 이어서 전기와 조명에 대해 베테랑이시라는 님의 세계여행 이야기속에 한국적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또 각 나라 여행중에 모으는 작은 소품들처럼 매혹의 섬 강화도의 신선한 팔거리는 무엇일지 찾아보는것도 중하다는 님의 견해도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50 정유년 7월 스므날 중복에 콩국수먹고 춤추는,, 꽃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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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굴 표정에서 진지함과 뚝심을 읽을 수 있네요.
옛것을 되살리려는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줏대가 대단해 보였지요
제눈엔 안 보이는 무언가가 보이시는거
같았구 자신이 믿는것을 실천하는 열정이
온 몸으로 전해져와 존경스럽더라구요 ㅎ
앞뒤로 먼지묻은 차림이 보기에 참 좋았던 날
江華=\\\\\\\=和易팅
^^~~
멋지네요 !!
멋집니다 !!
보람 되시길 ~~ ^~^
예 세사믄 끊어짐없이 머흐러이 이어져 가네요
한 때는 강화도 경제의 원천이기도했고 화문석 꽃자리와함께 아랏지바므로 직물산없이 대이동을한 뒤론 사향길로 접어들고 한때는 백년의 유산 촬영지도 되어 한시대를 보여주다 고물상으로의 변신끝에 오늘날 상남자를 만나 옛과
오늘을 넘나드는 지금에로의 변신중인 조얌방직의 새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키만요 여전 잘 지내시는거죠? 뵌지 오래입니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