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1. 1. 주일 큐티
마가복음 1:1 ~ 8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 마가복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집중하는 복음서입니다.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배웠고, 사도 베드로의 영향을 통해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복음의 또 다른 이름이 ‘베드로 복음’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되고 다른 공관복음들이 이 마가복음을 참조로 하여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복음서를 자세히 보지 못한 오류입니다. 모든 복음서는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의 신학이 녹아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에는 마태의 신학이, 누가복음에는 누가의 신학이 담겨진 것입니다. 마가복음 역시 베드로를 통해서 배우고 알게 된 마가 혹은 베드로의 신학이 담겨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마가는 왕 중의 왕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오심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관찰 :
1) 구약과 신약의 연결
-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 헬라어 원문에서는 “시작”(ἀρχή, 아르케)가 맨 앞에 나옵니다. 이것은 70인 경에서 창세기 1:1이 바로 이 “ἀρχή”(아르케)로 시작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요한복음 역시 “ἔν ἀρχή”(엔 아르케)로 시작을 거론합니다. 이것은 바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요, 인간 구원의 역사의 새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이라는 말과 연결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특별한 의미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단순한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가 이전의 그 어떤 시대, 어떤 사람과도 다른 차원의 구원의 역사로서의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2절.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한다고 하지만 사실 본절에서는 출 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과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기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가가 구약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가장 대표적인 이사야를 언급함으로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저작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고,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연결함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구약과 연결되는 것이지 동떨어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의도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의 존재가 하나님이 보내시고자 하시는 사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존재이지만 그가 준비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구약의 메시지와 신약의 메시지를 연결하는 접촉점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그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마가가 깨닫고 그것을 또한 기록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 3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 이 말씀이 바로 이사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의 인용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대에 모든 유대 디아스포라에 유명하고 큰 영향을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몰라도 세례 요한은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정체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당시의 사람들은 그가 죽은 지 한 세대 흘렀어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선지자 중의 하나, 메시야, 엘리야가 살아온 자 등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것이 바로 이사야 예언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었으며, 그의 메시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연결이 되고, 향후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는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세례 요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등장
- 4절.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 마가는 세례 요한에 대한 그의 배경이나 세례 요한에 대한 부연된 다른 설명이 없이 직접적으로 그의 사역에 대해서 논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례 요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유명한 존재이기에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을 것이고, 또한 마가가 마가복음에서 어떤 관점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이 행하고 있는 세례는 일종의 침례로서 사람의 몸을 물에 완전히 잠갔다가 꺼내는 예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독창적으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중에서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들에게 그 개종의 의미로 베풀었던 예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출애굽 시의 홍해를 지나, 물속을 통과하여 죽음에서 건져져서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기존의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변별력이 떨어지고,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가 베풀어 졌을 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히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자복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사함, 속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의미이지 진짜로 이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죄가 다 속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서도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렸지만 그것이 형식에 불과했던 것으로 백성들도 이미 인식하고 있던 상황에서 물속에 잠기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회개를 더욱 강조하는 세례 요한의 세례는 마음 중심의 회개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 5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 세례 요한의 세례는 사실은 유대 민족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이방인들처럼 대우하는 것이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아가 이 회개의 세례를 받고자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나아갔다는 것은 그들이 당시에 얼마나 이방인과 변별력이 없었고, 그로 인해서 더욱 간절히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의 시간동안 등장하지 않은 선지자가 등장하자 유대인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 6절.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 세례 요한의 드레스코드와 그가 먹은 음식은 우리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낙타털 옷과 가죽 허리띠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전수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면서 자신의 겉옷을 남겨두었고, 엘리사는 그것을 가지고 요단강을 가르고 그 옷을 걸쳐 입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세운 선지학교의 모든 생도들, 그들 중에서는 엘리사 보다 먼저 선지생도로 입학한 사람들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엎드려 그를 지도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선지자들 중의 지도자는 자신의 겉옷을 다음 지도자에게 인계했고, 그것이 그들의 리더십의 이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매고 400여년 만에 등장한 세례 요한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마태와 마가는 세례 요한의 드레스 코드를 의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이 먹은 메뚜기와 석청 역시 사람에 의해서 재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이시는 음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의 메뚜기는 콩과 식물의 메뚜기 닮은 식물로서 ‘쥐엄 열매’로도 불리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먹기에는 매우 질겨서 주로 동물 사료로 쓰이는 식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씹으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석청도 벌꿀이라기보다는 대추야자 열매가 돌쩌귀에 떨어져 자연 발효되어 만들어진 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이가 400여년 동안 없었다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세례 요한의 증거
- 7절.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 이것이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메시지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선명하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분에 비해서 세례 요한 자신은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한 자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세례 요한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에 대해서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자신도 회개의 세례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베푸시는 세례의 역사와는 물로 세례를 베추는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십니다. 그것은 구약을 연결하시고, 구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 전체의 구원 역사를 온전히 이루시는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만 구약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이방인의 주장이 아니라 마가의 주장이고, 또한 베드로의 주장이고,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주장은 모두 구약이 증언하는 바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은 말라기 이후 4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공백이 있었지만 구약에 속한 자였습니다. 때문에 400년이라는 시간을 필요에 의해서 중간기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중간기가 아니라 구약의 끝부분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400여년 만에 홀연히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존재로 광야에서 등장한 세례 요한의 외침과 가르침과 세례는 모두에게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나 베풀던 세례를 이방인이나 다를 것 없이 살던 유대인들에게 베풀어졌고,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으로 나아왔고, 그곳에서 마음의 회개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게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고, 메시야 대망 사상이 이제 곧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의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삶을 살았고,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구약에 메시지를 통해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점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로서 가장 큰 자가 된 이유였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실은 아담의 타락과 동시에 시작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한 과정과 배경으로서 구약이 존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들을 하나님의 차원과 관점에서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을 구약의 끝과 신약의 시작점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그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해가는 관점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복음의 완성에 대해서도 성령의 은혜가운데 들어가게 되고 그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은 참으로 자신의 본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다 갔습니다. 나 역시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어떤 상황과 모양의 상황이던지, 세례 요한의 모범과 같이 주님을 증거하는 존재로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3) 2023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기를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