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그십 세단은 브랜드의 얼굴이다. 각 브랜드는 덩치나 디자인은 물론, 당대 적용 가능한 모든 기술을 반영하여, 플래그십 세단 내ㆍ외관에 최선의 결과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은 제네시스 G90이다. 국내 유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플래그십이자,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럭셔리 대형 세단이다. 공공기관부터 기업 임원용으로 국산차가 주로 사용된 덕에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1만9대에 달했으며, 브랜드 내 가장 작은 세단인 G70보다 더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이번 비교 대상은 렉서스 LS다. 비록 '이 시국' 탓에 국내 시장에서 많은 이들이 바라만 보고 있지만, 북미 시장에서 독일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LS는 여타 브랜드와 달리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내세우며 독특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G90과 LS는 서로 배울 점이 많아보인다. 렉서스는 국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G90의 화려한 옵션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첨단 사양을, 제네시스는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LS의 정교함과 신뢰성 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두 브랜드의 자존심, LS와 G90을 비교 시승해봤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G90 3.3 터보와 LS 500h 모델이다. 두 차 모두 플래그십답게 균형 잡힌 비율과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탑재해 위풍당당한 모습을 연출했다. LS는 화살촉 모양의 주간주행등과 특유의 모래시계 모양 그릴로 날카로운 인상을 더했다면, G90은 오각형 방패 모양의 그릴과 두 줄 헤드램프로 강한 선과 볼륨감을 강조했다. 두 차의 모습은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 같다.
실내는 플래그십답게 양쪽 모두 고급 소재를 아끼지 않았다. G90은 나파 가죽과 리얼 우드, 크롬 도금 등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LS 역시 울트라 스웨이드 루프 라이너를 비롯해 모드 셀렉터와 같이 굴곡이 심한 부분에도 깔끔한 가죽 마감을 통해 안락한 실내를 연출했다.
파워트레인은 LS의 경우 3.5L V6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전기 모터, 그리고 무단변속기가 결합되어 최고출력 299마력, 최대토크 35.7kgㆍm를 발휘한다. G90은 3.3L V6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으로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52.0kgㆍm를 발휘한다.
숫자에서 나타나는 성능은 G90이 압도적이다. 과연 숫자에서 오는 만족감이 실제 주행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먼저 G90 운전석에 앉았다.
G90은 중앙에 밝고 선명한 12.3인치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센터 아래쪽에는 럭셔리 세단의 상징인 아날로그 시계가 자리잡고 있다. 스티어링 휠 뒤에는 디지털 클러스터 대신 바늘이 돌아가는 아날로그 타입 계기판이 위치한다. 개인적으로 럭셔리 세단에는 디지털 클러스터보다 아날로그 계기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G90에 탑재된 것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아쉽다.
시동을 걸자 V6 엔진이 깨어나며 살짝 흔들리지만 이내 차체는 평온함을 되찾는다. 진동과 소음을 극도로 억제해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시동이 걸려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가속 페달을 살짝씩 간지럽히면 부끄럽다는 듯 숨어있던 엔진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같은 느낌은 주행할 때도 그대로 느껴진다. 플래그십 답게 방음ㆍ방진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해 차 안은 정숙함을 유지한다. 스포츠 성향이 강한 스팅어와 엔진을 공유한다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승차감이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되지 않았음에도 다른 회사들의 플래그십 세단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승차감을 보여준다. 바다를 가르고 나가듯 부드러우면서, 그렇다고 한없이 출렁거리지도 않다. 차체를 굳건하게 지지해야 할 때는 버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뛰어난 승차감은 정숙함과 더해져 운전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운전대나 가속 페달로 떨림이 전해지지도 않고, 풍절음이 들리지도 않는다.
주행 모드는 일반 현대차와 동일하게 컴포트, 에코, 스포츠, 커스텀 등 4가지를 지원한다. 에코와 컴포트 모드 간 차이는 크지 않지만, 스포츠 모드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체결 즉시 스티어링 휠이 묵직해지고 변속 타이밍을 늦춰 RPM을 최대한 높게 유지해 2톤에 달하는 5.2미터 장신을 부지런히 밀어낸다. 거구의 야구선수가 베이스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느낌이랄까.
이어 LS에 올랐다.
LS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 디지털 클러스터가 가장 먼저 반긴다. 중앙 부분에 동그란 그래픽이 나오며, 가운데 숫자로 속도가 표시되는 방식이다. 기능도 많고 한눈에 인식하기도 쉽지만, 가로로 넓은 방식의 계기판에 익숙하다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날로그 시계는 중앙의 12.3인치 터치스크린 왼쪽에 위치한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되어 시동 버튼을 눌러도 엔진은 깨어나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부드럽게 밟자 LS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보행자 안전을 위해 설계된 하이브리드 특유의 소리만 들릴 뿐이다.
차량을 움직여도 엔진은 깨어나지 않는다. 잠든 사람을 깨우듯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그제야 엔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G90과 마찬가지로 엔진이 돌아가도 실내는 고요함을 유지한다. G90과 다른 점이 있다면 회생 제동 시 살짝 들리는 고주파음 뿐이다.
G90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은 서스펜션이다. LS에는 전자 제어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안락한 승차감을 구현했다. 앞서 G90 승차감도 좋다고 느꼈지만, LS는 한층 더 편안한 느낌이다. 뛰어난 진동 감쇄 능력과 차고 조절 기능은 덤이다.
다만, 에어 서스펜션이 무르게 세팅된 탓에 일상 주행 중 조금씩 피칭이 느껴진다. 정체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밟았다 떼면 헤드램프가 앞차 사이드미러를 비출 만큼 고개를 끄덕인다.
LS의 특징은 멀티 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엔진과는 CVT가 맞물리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과는 4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린다. 변속기도 하이브리드인 셈이다. 4단 변속기 덕분에 일반 하이브리드보다 높은 속도에서도 전기모터만을 사용해 달릴 수 있다. CVT와 4단 변속기가 어우러져 10단 자동 변속기처럼 작동한다. 모의 10단 변속 제어를 통해 빠르게 달릴 때 박진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다만, 급가속 때는 종종 몇 단을 체결해야 할지 길을 잃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변속 충격이 있는 다단 변속기와 가속감이 다소 심심한 CVT의 단점이 조합되기도 한다.
G90과 LS를 연이어 운전해봤다. 직접 몰아본 두 차는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곧이어 럭셔리 쇼퍼드리븐 세단의 화룡점정,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LS는 2열에 '오토만 시트'가 적용되어 편안한 이동을 책임진다. 무려 22방향으로 움직이는 2열 오토만 시트와 더불어 1미터에 달하는 넉넉한 레그룸까지 마련됐다. 원터치로 릴랙스 모드를 활성화하면 1열 동승석이 앞으로 쭉 밀리고 다리 받침이 올라오며 2열 시트가 뒤로 최대 48도까지 누워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모니터 화면이 크다 보니 앞쪽 풍경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이 상태에서 시트의 안마 기능을 작동하면 잠들기 딱 좋은 상태로 변한다. 뒷좌석 좌우 시트백과 시트 쿠션의 공기주머니를 팽창 시켜 어깨부터 대퇴부까지 압력을 가해주며, 어깨와 허리 부분에 위치한 부분 히터는 몸 전체가 과도하게 더워지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열 자극을 주기도 한다.
다만, 시트 포지션부터 열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조작까지 2열 대부분 기능 조작을 터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수행해야 한다. 메뉴가 간결하지도 않아 수 차례 터치를 해야 원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알아보기 쉬운 그래픽으로 설정되어있지만, 물리 버튼보다는 직관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보다는 젊은 신흥 부호 세력을 주 타겟으로 삼았다는 느낌이다.
G90 역시 프리미엄 나파 가죽 시트 목베개, 리얼 우드 등으로 아낌없이 탑승객 주변을 감쌌다. LS 대비 전장이 30mm 짧지만, 휠베이스는 오히려 G90이 35mm 더 길다. 실내 공간을 잘 뽑아내는 국산차 특유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결과물이다.
리무진 모델이 아닌 만큼 종아리 받침대는 없지만, 1열 동승석을 앞으로 밀어내고 시트를 뒤로 눕혀 편안하게 이동할 수는 있다. 2열 릴렉스 모드를 활성화했을 때 앞 시야 확보 면에서는 G90이 나은 느낌이다. 대신, 그만큼 아늑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LS와 비교하면 2열 승객을 위해 마련된 모니터 화면이 훨씬 작고 베젤도 더 크다.
LS와의 차별점은 디테일이다. 암레스트 쪽에 다양한 버튼을 직관적으로 배치해 다양한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과 연계해 터널 진입 전 창문을 닫아주고, 자동으로 내기 순환 모드로 전환해주는 세심함까지 갖췄다. 2열 모니터 안에는 골프 메뉴를 탑재해 사장님들을 만족시킨다. 전국 컨트리클럽까지 길안내를 비롯해 각 홀별 구성이나 난이도를 별점으로 알려주고, 주변 맛집 정보까지 제공한다.
직접 시승해본 G90은 넉넉한 실내공간과 직관적인 버튼 배치, 세심한 옵션으로 한국인들의 취향을 저격했고, LS는 이동의 편안함, 안락함, 그리고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효율성까지 잡았다.
1989년 브랜드 출범과 동시에 탄생한 LS와 에쿠스에서 시작해 EQ900을 거쳐 2018년에서야 제 이름을 찾은 G90. 비록 독일 명차들에 비하면 역사는 짧지만, 언젠가 독일차를 넘어 아시아를 빛낼 명차들이 되길 바라본다.
※ 해당 차량은 렉서스코리아, 제네시스에서 제공한 시승용 차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