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외국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희소 브랜드의 하나가 애스턴 마틴(Aston Martin)이다. 오히려 007 본드 카로 더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007 영화에서 애스턴 마틴이 거의 대부분 본드 카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007은 더러는 독일이나 일본제 본드카를 타기도 했었다. 한국 차를 본드카로 타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애스턴 마틴의 정식 회사 명칭은 「애스턴 마틴 라곤다 유한회사(Aston Martin Lagonda Limited)」이며, 이 이름은 1913년에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한 라이오넬 마틴(Lionel Martin)과 로버트 범포드(Robert Bamford)의 이름, 그리고 회사의 소재지 애스턴 클린턴(Aston Clinton)에서 열린 「애스턴 힐 스피드 힐 클라임(Aston Hill speed hill climb)」 경기대회 명칭 등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범포드가 설립한 회사 「범포드 & 마틴(Bamford & Martin)」은 「싱거(Singer)」라는 메이커-재봉틀 회사이기도 하다-에서 만든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 주된 사업이었으나, 1915년에는 공장을 사들여서 직접 차를 만든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범포드 모두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생산이 중단된다. 전쟁 이후 「애스턴 마틴」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회사를 설립해 차량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1921년에 만들어졌던 차량 「Ulster」부터 고성능을 추구하는 기술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924년에는 운영자금 부족으로 파산하고, 그 뒤에 다시 「애스턴 마틴 모터스(Aston Martin Motors)」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우고 엔진과 차량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자동차생산을 중단하고, 항공기 기체를 제작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에 데이비드 브라운 경(Sir David Brown)이 회사를 인수하는데, 이때 애스턴 마틴과 생산설비를 같이 사용하던 메이커 「라곤다(Lagonda)」도 함께 인수해서 생산을 시작한다. 이후부터 데이비드 브라운의 이름을 약자로 사용해 명명된 DB 시리즈가 개발되기 시작한다. 1948년에 등장한 DB1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가로와 세로 형태의 크고 작은 3개의 그릴을 조합한 형태로 나왔고, 이후 1950년에 나온 DB2에서 그 3개가 통합된 형태로 바뀌면서 특유의 그릴 형태가 완성된다.
DB시리즈는 1963년에 개발된 DB5가 영화 007시리즈에서 일명 ‘본드 카’로 처음 등장하면서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애스턴 마틴은 주로 GT(Grand Tourer) 형식의 차량, 즉 안락성을 중시한 고성능 차량들을 개발한다. 1965년에는 본드 카였던 DB5 후속으로 DB6를 비롯해서 1967년에는 DBS를 내놓는다. 그러나 재정적 압박은 계속되어 1972년에는 <컴퍼니 디벨롭> 이라는 회사로 매각되었고, 이후 기업개선작업으로 수익이 증가하면서 1977년에는 360여 명의 종업원을 새로 고용하고, V형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과 1978년에는 <볼란테(Volante)> 컨버터블 등을 개발해 생산한다.
1980년대에 와서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 「자가토(Zagato)」를 인수하고, 007 시리즈 영화에 애스턴 마틴을 다시 출현시키는 등 적극적 마케팅을 펼친다. 1980년에는 빅터 건틀레트(Victor Goauntlett)라는 인물의 투자로 다시 차량 생산이 시작되는데, 1976년에 개발된 세단들 중 가장 고성능이었던 라곤다(Lagonda) 세단 모델을 판매하기 시작한다. 이 차는 오일 달러가 넘치는 오만,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국가의 부호들을 중심으로 판매된다.
이후 포드 계열의 「코스워드(Cosworth)와 협업으로 1992년에 DB7을 개발하고 대형 엔진 개발도 진행되어 2010년에는 12기통 5,000cc의 밴티지(Vantage) 모델이 등장한다. 1994년에는 미국 포드자동차에 인수되어 포드의 고급 브랜드 「PAG (Premier Automotive Group)」의 일원이 되었으나, 2007년 3월에 다시 매각된다.
애스턴 마틴의 차량들은 고성능 엔진으로 차량의 성능도 높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락성을 중시한 차량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고성능 스포츠카들이 성능에 치중하면서 안락성에는 비중을 크게 두지 않는 것과는 달리, 애스턴 마틴은 럭셔리 스포츠카라는 콘셉트에 의해 성능과 안락성을 모두 높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시동을 걸면 실내에서 들리는 엔진 소리가 너무 커서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오디오를 달지 않는 다른 고성능 슈퍼카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안락성은 애스턴 마틴의 또 다른 매력이 된 건지도 모른다. 안락성과 고성능의 양립, 그건 분명 다른 슈퍼카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 어쩌면 영국적인 특징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