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스테마(El Sistema)`란 말은 적어도 한번쯤 들어 봤을 터이다. 필자는 2010년 영화를 통해 실체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공부를 한 셈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예산 부조를 받는 자발적 `아동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혹은 이를 관할하는 `비영리 재단`을 칭한다. 하지만 스페인어로는 문물제도 혹은 시스템을 뜻하는 일반 명사다. 얼마 전까지 `베네수엘라의 아동청소년관현악단 국영네트워크`(FESNOJIV)를 명칭으로 사용하였으며, 최근에 `시몬 볼리바르 음악재단`(FMSB)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지에서 가장 쉽게 통하는 것은 `엘 시스테마`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음악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는 사람에 의해 1975년에 만들어 졌다. 그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바이올린, 피아노, 파이프 오르간 등 건반악기 연주와 작곡을 섭렵한 것을 비롯하여 지휘까지 마스터한 전문음악가이다. 그는 미시간대학에서 경제학과 통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학자의 길을 걷다 베네수엘라로 귀국한 후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가이기도 하다. `엘 시스테마` 창립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영화의 줄거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75년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보릿고개 시절이라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도 당시 정치적인 혼란에 이은 빈부격차와 빈곤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화 속 간간히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었던 카라카스의 허름한 차고에 전과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런 후 35년 뒤 2010년, 그 곳에서 열렸던 음악 연주는 베네수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1명이었던 단원 수는 30만 명에 이르게 된다. 빈곤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이 프로젝트 명이 `엘 시스테마`이며, 부제가 된 `기적의 오케스트라`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 후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5년까지 400여개가 넘는 음악센터와 70만 명 이상의 아동 청소년 음악수련생을 길러내는 거대한 조직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아브레우`가 엘 시스테마를 창안한 배경에는 경제학적 안목과 현실정치 경험과 유년시절의 음악 수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는지 모른다. 당시 빈민가의 여건에서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넓을 수는 없었다. 클래식 음악계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외국인이나 일부 상류층들만이 즐길 수 있었고 그들 속에서만 향유되는 아주 비싼 교양이었다. 중산층 이하 가정의 아이들은 음악적 재능이나 열망이 있더라도 그 소수의 음악그룹에 들어갈 수 없었던 현실이었다. 그래서 아브레우는 엘 시스테마를 통해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 했다. 하나는 그 당시 편협한 베네수엘라 클래식 음악계를 변화시키는 것, 또 하나는 고급문화로 알려진 클래식 음악수련을 통해 소외된 아동과 청소년들의 자존감과 성취동기를 만들어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의 명성과 신망 덕분에 지하 차고에서 조촐하게 시작한 이 음악단은 점차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며 규모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2년 후에 그가 지도한 청소년 악단이 국제 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면서 폭발적인 성장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그가 바랐던 경제적인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클래식을 전공 하고도 활동할 수 있는 악단이 없어 다른 일을 전전하던 젊은 음악가들이 다시 원하는 일자리를 되찾게 되었고, 한편 클래식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악기의 수요가 증가했다. 오케스트라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음악관련 콘텐츠도 다양해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함은 당연한 결과였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뛰어넘어 음악 산업이 호황을 맞게 된 것이다. 그 다음 목표는 소외되고 방치된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격조 높은 문화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기술을 체험하게 했다. 미처 학교가 하지 못했던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돕는 일 역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프로그램은 비행청소년, 청소년 범죄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소년원에까지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게 된 배경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가 우리의 영재 발굴과 달리 사회로부터 소외된 청소년들을 범죄로부터 분리하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도 `엘 시스테마`의 성공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90년대 이후부터 중남미의 국가들은 이를 모델로 유사한 프로그램을 추진한바 있으며, 미국에서도 엘 시스테마 USA(미국)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체부 주관 `꿈의 오케스트라`와 교육부 주관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에 영향을 준 것은 두 말할 나위없다. 필자도 예술 수련이나 교육이 사람들의 인성과 바른 사회성을 형성하는데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엘 시스테마` 성공사례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잘된 일을 벤치마킹할 때 과정과 배경에서 배우기보단 결과에 대한 반응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도자기를 빚어 만들 때 흙에서 불순물을 걸러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재료상태가 된다. 그 다음에 마음 가는대로 만들거나 그리기가 가능하며, 잘 말려서 굽기를 반복하고 1300도 내ㆍ외의 높은 온도의 가마를 거쳐 나온 것이라야 자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체험했다`는 과거 완성형을 구사하려면, 전자의 전 과정을 체험교육에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만들기 한 과정, 부분 체험을 두고 `해봤다` 전체인양 말하곤 한다. 예술체험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는 인생은 결코 생략됨이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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