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신앙심은 많은 지식에 달려 있지 않고 단순한 것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나온다. 주께서 나의 힘이고 방패라는 고백은 적과 싸울 때, 공격력과 수비력이 신이 정하신 바에 따른다는 의미다. 이것은 인간이 철저히 의존적 존재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부모에 의존해 존재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그 언어와 문화에 의존하며 생태적으로는 그가 처한 자연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스스로 언어를 만든 것도 아니고 생각조차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전통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미 받은 것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기존 언어로 새로운 시를 쓰며, 전통 신학을 물려 받았으나 새로운 신학을 만들며,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운다. 이것은 인간이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창조적임을 보여준다. 동물은 환경에 철저히 적응하려 하지만 창조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에 의미를 부여한다. 고통을 예술로, 실패를 교훈으로, 죽음을 신학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우리에게 창조력이 있기 때문이다. 의존성은 재료를 제공했고 창조성은 그 재료를 재배열하였다. 마치 음악가가 음계를 ‘의존’하면서도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처럼, 인간은 수동적 존재이나 동시에 능동적이며, 필연적 존재이나 자율적 존재이다. 인것은 창조된 측면과 창조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공통성이다. 비록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무생물까지도, 심지어 물질의 기초 단위인 미세 입자까지도 두 가지 속성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모든 사물은 존재 근원의 성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생산됨과 생산함의 성질이며 그것이 곧 존재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를 느끼면서 동시에 새로운 어떤 것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주님이 우리 안에 작용하며 또한 우리 밖에서 우리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조된 존재이며 동시에 창조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서 무력한 존재이며 동시에 신의 역할을 가진 전능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