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별똥별의 낙하 쇼가 시작될 것이라는 시간이다. 나는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열심히 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비처럼 내릴 것이라던 별똥별은 보이지 않고 먼 하늘의 작은 별들만 무심히 깜박인다. 겨울초입이지만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두터운 옷 사이로 파고들어 닭살이 돋도록 춥다. 그래도 나는 기회를 놓칠 새라 꾹 참고 하늘을 보며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내 몸은 한 마리 커다란 새가 되어, 남쪽나라 내 고향을 향해 어두운 밤하늘을 빠른 속도로 날아 간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밤이 오면 언제나 별과 함께 놀기에 딱 좋은 그런 환경이 주어졌었다. 전력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일찍 불이 나가고 나면, 사방은 암흑천지로 변하고, 별들은 저들 세상을 만난 듯 등불을 앞세우고 거침없이 우리를 찾아왔었다. 별은 또래들의 친구였고 얘기대상이었다. 하지만 별에 대한 상식 이라고는 형이나 누나로부터 얻어 들은 것이 전부니, 별 얘기로는 놀이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얗게 빛나는 꼬리를 뒤로하고 쏜살같이 내려 꽂히는 별똥별은 우리에게 꿈을 주기에 충분했다. 별똥별을 남보다 먼저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속설도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어쩌다 하나씩 떨어지는 그것을 또래들보다 먼저 발견하기 위해 목이 아프도록 하늘 훔쳐보기에 바빴다. 별똥별은 숲 속에도, 들에도, 바다 가운데도 떨어 졌다. 땅에 떨어지는 것은 별나라의 애기가 지구에 살고 싶어 내려 온다 믿었고, 바다에 내리는 것은 꼬리가 긴 커다란 물고기가 될 것이라 여겼다. 운 좋게 주변 야산에 별똥별이 떨어진 날은, 우리 모두가 온 들판을 휘저으며 밤이 이슥하도록 그것을 찾아 헤매었다. 한 참을 헤매다 지친 또래들은 풀밭에 벌렁 누워 빤짝이는 별을 올려다 보며 각자의 별 찾기 놀이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서로가 내 별이 네 것보다는 더 크고 더 힘세다며 우기느라 짧은 밤을 더 짧게 보내고 말았다.
이처럼 내 어린 시절은, 영롱한 별빛 아래서 풀이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전설을 얘기했고, 세찬 바다 바람 속에서도 별을 올려다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을 알지는 못했어도 어두운 밤 하늘을 화판 삼아 별들이 그려내는 찬란한 그림을 보며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작품을 읽지는 못했어도 별을 헤아리며 순정(純情)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절친한 동무 같았던 별들은 내가 성장하면서 점차 멀어져 갔고, 도시생활이 시작된 뒤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사방이 막히면 하늘을 보라는 말도 있는데, 참 오랫동안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 온 세월이다. 날마다 대량으로 뿜어대는 매연과 중국 땅에서 날아오는 황사는 하늘을 덮어 별이 더욱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경쟁하듯 높이 솟은 고층빌딩 사이로는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의 하늘만 보일 뿐, 마음에 둔 별 하나 찾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나에게는 별에 얽힌 아름답고도 행복한 추억이 뚜렷이 살아 있어, 오늘처럼 가슴 훈훈한 기억의 바람을 타고 고향의 숲으로 날아 갈 수도 있었지만, 아마 후손들은 다를 것이다. 요새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내 나이쯤 되면 별에 관한 재미있는 얘깃거리나,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둔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을성싶다.
즈음 개봉되고 있는 영화를 보면,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별은 흔적도 없다. 핵 전쟁이나 운석과의 충돌로 지구는 종말을 맞고, 인류는 거대한 우주 정거장을 띄워 생활하 는 모습도 보여주고, 사람이 살만한 다른 행성을 찾아 다니는 우주유랑자들의 모습도 그려 낸다. 그런 환경이니 꿈 같은 별 얘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는가? 만일 지금과 같은 속도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고, 바다나 육지가 폐기물에 뒤덮여 버린다면 별 스스로가 아주 멀리 가버릴 것 같아 내 마음은 초조하다. 아마 미래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지역만이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몽고의 초원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수많은 별을 본 사람들이나 알프스산맥을 여행한 분들은 별이 있어 사람의 가슴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해지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구를 깨끗하게 지켜 별을 보다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만든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도 없을성싶다. 나는 소년시절에 맑게 빛나는 별을 원 없이 볼 수 있었고, 별과 무척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여긴다. 더구나 질곡의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내 가슴 속에는 언제나 그리움과 낭만이 자리잡고 있었으니 내 어찌 어릴 적 별을 잊을 수가 있었겠는가? 별 때문에라도 나는 환생하여 지구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오랫동안 지니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만일 지구의 상태가 좀 더 좋아져 내 어릴 때만큼만이라도 별이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면, 내가 다시 지구에 오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여한이 없겠다.
(김상립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