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쁨을 얻으려면,
모든 제 현상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신불로부터 주어져 있는 본능,
인생 경험과 지성,
이러한 것들이 상호 조화를 유지하여,
마음에 사로잡힘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상(萬象)에 대한 감사와 보은, 공양과 보시의 마음을 갖고,
신리의 실천 생활을 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창은 열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우리는,
혼의 형제랑 수호령, 지도령과 조화되어,
우리가 보다 좋은 인생을 보내도록,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한 지도, 협력이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실재계 저세상에서는 이 현상계의 양상(樣相)을,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능력은, 인간의 누구에게나 있고,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가, 지위, 명예 빈부에 관계없이,
만상 만물에게 자비와 사랑을 평등하게 주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바른생활 노력 속에서 마음의 눈은 열리도록 되어 있다.
이 생활 노력도 신불에게서 주어진 본능이며,
의식주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인류는 기후와 환경에 대응해, 적응한 의복 생활의 방법을 알고 있다.
육체 보존을 위해, 동, 식, 광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도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자연환경으로부터 지키는 장소로서 주거를 갖는 것도 알고 있다.
이들 모두는 본능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또, 우리가 경험해 온 지성만을 마음의 표면으로 낸 경우는,
그 경험을 과신하여,
세상사를 판단하는 경향이 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잃은 지성은,
인류를 불행에 빠뜨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발전한 물질문명은,
공해라고 하는 큰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질 경제 문명의 큰 비틀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신리를 알고 만상 만물은 상호관계 위에 성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념을 중심으로 해서
감정. 이성, 지성, 본능의 밸런스가,
항상 이루어져 있는 마음속의 상태.
그것이 평온의 모습이다.
이성은 마음의 제어장치이며,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도 바르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화한 감정적인 상념 행위는,
상대에 대해서도 좋은 영역(靈域)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음의 안정과 명확한 견문에 의해 얻어지는,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깨달음이
인생의 큰 목적의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번뇌에 휘둘려 무익한 유흥 놀이,
항상 평온함이 없는 불안정한 생활,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생(生)과 사(死), 물질과 경제 등
여러 가지 욕망의 바다에서 방황하여
신성(神性) 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을 곤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를 가진다면 이번에야말로 업의 수정을 이루어,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려고 누구라도 생각하고 오고 있지만,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전생 윤회의 과정에서는,
어떤 때는 왕자로서 대중 위에서 영화로운 삶을 보내며,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권력에 의해 자기 보존을 했기 때문에,
결국 돌아간 어두운 연옥 지옥에서,
인생에서 범한 죄를 수정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천상계로 겨우 올라 간 사람도 있다.
그리고 천상계에서 반성하고,
이번에는 가난한 사람으로서 태어나 열심히 일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구해야 할 목적을 노력해 이루고,
실재계에 돌아가 빛의 세계에서 사는 경험을 맛본 사람도 있다.
각각의 사람들은 이처럼 천차만별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그 마음대로의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올바른 법을 깨닫고 있으면,
번뇌에 대해서는 이성이 작용하여,
항상 상념 행위에 반성의 브레이크가 작용하므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적다.
이처럼 우리 의식의 중심인 마음은,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고통과 즐거움의 인생을 경험시켜 온 것이다.
우리는 번뇌에 지배받기 쉬운 마음을,
정법으로 귀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평온함과 조화된 불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불퇴전의 법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헌상계의 만상 만물은, 한시도 쉬는 것 없이 변하여,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무엇 하나도 자신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육친도, 또 육체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갖고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이 현상계를 수행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
이것이 인생의 사실이다.
저 세상에 갖고 돌아가는 것은,
인생 항로에서 경험한 일체의 선(善), 악(惡), 기억된 상념과 행위이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최선의 노력으로 후회 없이 보내야 할 것이다.
항상 반성하는 마음은,
인간을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혼의 정화로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노여움, 비난, 끝없는 욕심, 우매한 마음을 벗어나
일체의 고통의 원인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속의 악(惡)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속의 악(惡)에의 사로잡힘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이욕(利欲), 영화에 이끌리는 번뇌를 버리고,
일념삼천의 마음을,
항상 빛의 세계, 즉 조화의 세계에 두어,
이해득실, 정욕, 지위, 명예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구한 것 없이, 자연스러운 인덕에 의해 주어진 사람들은,
자기에게 엄격하고, 항상 겸허하며,
잘못이 없는 정법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 경제 문명의 고도 성장에 의해,
현대 사회의 사람들 대다수는, 마음을 잃고 있다.
우리는, 올바른 마음을 되찾고,
자아아욕이 많은 마음과 싸워,
진실로 올바른 마음의 문명을, 물질문명의 위에 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설사 타인에게서 비난을 받을지라도,
매를 맞더라도,
돌에 맞을지라도,
칼로 베어지더라도,
감정적이 되어 분노의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인욕의 마음을 갖고,
일체의 제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부동의 마음으로,
올바르게 생활하는 것이다.
비록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도,
분노의 마음을 가져서는 신리의 생활을 지킬 수 없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