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포드의 아내들
원제 : The Stepford Wives
TV 방영제 : 스테포드의 여인들
다른 제목 : 스텝포드 와이브스
1975년 미국영화
감독 : 브라이언 포브스
원작 : 아이라 레빈
각본 : 윌리암 골드맨
출연 : 캐서린 로스, 폴라 프렌티스, 피터 매스터슨
나넷 뉴만, 티나 루이스, 윌리암 프린스
캐롯 멀로리, 주디스 볼드윈,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아역)
'스텝포드의 아내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괴하고 독특한 포스터가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몸이 분해된 캐서린 로스의 엽기적 포스터, 장르가 호러, 미스테리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포스터만 봐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죠.
다만 눈길을 끌게 만드는 건 포스터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선 원작이 서스펜스 심리소설의 대가 아이라 레빈 입니다. '죽음전의 키스' '로즈마리 베이비' 의 작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심리 스릴러 작가죠. 20대 초반에 쓴 '죽음전의 키스'로 에드가 알란 포 신인상을 대뜸 수상한 작가이니. 그리고 감독은 'L자 모양의 방' 으로 여성의 사랑과 심리를 잘 묘사한 브라이언 포브스, 이래저래 관심을 가질만한 작품입니다. 오히려 주연을 맡은 캐서린 로스의 이름이 빈약해 보일 정도였죠.
엽기물같은 포스터의 영화지만 1시간 50분이 넘는 시간중 거의 1시간 20분 이상은 그냥 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성 홈드라마 같이 평범하게 전개됩니다. 뉴욕 맨하탄에 살다가 어느날 남편의 권유로 코네티컷 주의 스텝포드라는 마을로 이사한게 된 조안나(캐서린 로스), 그녀는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지만 또한 유명 사진작가를 지망하는 사진광이기도 했습니다. 스텝포드에 온 그녀는 이곳의 여성들이 지극히 비 사회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사온 뒤 남편은 '남성클럽' 이란 곳에 가입하여 마을 남자들과 사교활동을 시작합니다.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남성들에게 근사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부인들이 매우 가정적으로 처신하는 마을, 맨하탄에서 활동적인 삶을 살던 조안나에게는 답답한 곳이지요. 그런 조안나에게 비슷한 성향의 딱 마음에 드는 바비(폴라 프렌티스) 라는 친구가 생기죠. 조안나는 바비와 의기투합하여 마을 여성들을 설득하여 여성들도 사교적인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거부합니다. 그나마 집에 테니스장 시설을 갖고 있던 샤메인(티나 루이스) 정도가 그런 제안에 호의를 보였지만 어느날 샤메인의 집에 있는 테니스장을 불도저가 밀어버리는 광경을 본 조안나와 바비는 경악합니다. 남편이 테니스장을 싫어하는데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며 행복해하는 샤메인....조안나와 바비는 이 아리송한 마을에서 여성들이 그렇게 변해가는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스텝포드에만 오면 모든 여자들이 지극히 가정적인 현모양처가 되고 남편에게 헌신적으로 변한다니....
1시간 30여분은 지극히 평범한, 여성위주의 홈드라마, 나머지 25분 정도는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물론 신체훼손이 되고 자극적인 스릴이 반복되는 역동적인 호러물과는 천지차이가 나는 영화입니다. 조용하고 젊잖게 흘러가는 영화의 분위기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계속 이어지지요. 호쾌한 스릴러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지나치게 밋밋할 수 있지요. 그리고 대화의 80% 정도는 여성들의 수다이고. 대사도 많지요. 다만 그런 역동적 액션 대신에 상당히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스텝포드 마을에서 벌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악스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전의 키스' '로즈마리 베이비' 에서도 그랬지만 뭔가 음모에 빠져들어 간다고 느끼는 여인이 겪는 혼란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건 샤론 스톤이 출연한 '슬리버'에서도 그랬는데 아이라 레빈 작품의 특징인것 같군요. '죽음전의 키스'는 여성을 이용한 돈과 신분출세, '로즈마리 베이비'에서는 악마숭배, '슬리버'에서는 훔쳐보기 관음증이 쓰였는데 이 스텝포드 마을에서 벌어지는 내용은 현모양처가 양성되는 마을에서 뭔가 남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걸 의심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가정적이고 비 사교적이고 대신 훌륭한 주부이고 밤에는 남편을 위한 요부이고.
요즘 시대에 더 엽기적인 영화가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70년대 중반 당시 우리나라는 '현모양처'가 여성의 미덕이던 시대였는데, 미국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같지는 않았겠죠. 아마 그 시대쯤 미국에서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높아지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경우는 오히려 맞벌이를 안하면 여성의 조건이 낮게 평가될 정도로 시대가 변했고 '전업주부'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남성에 비해서 현저히 숫자는 적지만 의사, 정치인, 법조인 등도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요. 물론 그런 사회적인 진출보다는 페미니즘이라는 화두가 던져지고 있을 정도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대한 전형적인 반대의 성향을 가진 곳이 바로 이 영화속 스텝포드 마을입니다. 그리고 대체 왜 그런 마을이 되었을까 라는 이유속에 어떤 흉악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의심을 두 여성이 하는 것이죠. 그건 마치 아이라 레빈의 또 다른 작품 '브라질에서 온 소년'에서 보여준 결말과 좀 유사한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마을의 특성때문에 바비는 수질의 영향 아닐까 싶은 황당한 의심도 하는데 수질검사를 의뢰받는 과학자가 '그런 물이 존재한다면 나는 수백억원을 벌었고 노벨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라고 비꼬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하긴 물을 마시고 현모양처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죠.
평범하던 영화가 경악스럽게 변하는 시발점은 사진작품을 인정받고 기뻐하던 조안나가 바비를 찾아가서 그 소식을 전했더니 바비가 드레스를 입고 커피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여성과 똑같이 변해버린 바비, 별거 아닌 장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이 무척 엽기지요. 단 하나뿐인 내 편이 사라졌을때의 심리와 불안이 잘 보인 장면입니다. 남편도, 제일 친한 친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빠져나갈 수도 없고, 머물러 있어서도 안되는 상황, 탈출구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드는.
아마도 이 원작의 내용은 과거 SF 전설이 된 '신체 강탈자의 습격'이 참고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마을 사람들, 다만 그 대상을 '여성'으로만 국한했을 뿐이지. 여성한정판 신체 강탈자의 습격이라고 해도 무방하네요.
캐서린 로스는 서구여성 치고는 키가 꽤 작은 여배우인데, 비율이 좋고 관리를 잘해서 혼자 카메라에 잡힐때는 작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연한 폴라 프렌티스가 워낙 장신 여배우라서 둘이 같이 등장할때는 거의 머리하나 차이가 나는 느낌입니다. '졸업'에서 키가 작은 배우 더스틴 호프만의 상대로 밸런스가 어울렸는데 공동 주연이라서 카메라에 자주 같이 잡히는 폴라 프렌티스와는 굉장히 언밸런스합니다.
연출의 설정상 좀 갸우뚱한 부분은 나름 독립성을 추구하는 여성(요즘 시대라면 페미니즘 여성)이어야 할 캐서린 로스가 남편이 모임의 남자들을 집에 초대했을때 너무 몸에 딱 달라붙는 관능적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문화가 다른 미국이라도 그런 복장은 좀....그리고 캐서린 로스와 폴라 프렌티스가 주로 같이 등장하는데 너무 과한 노출의상을 입을때가 있다는 점도 그렇고. 그럼에도 캐서린 로스는 '내일을 향해 쏴라' '졸업' '셰난도' '세인트 루이스호의 대학살' '노래하는 수녀' 등의 영화에서 조연 내지는 들러리 역할에 그쳤는데 모처럼 자신이 원톱으로 주도하는 영화다운 영화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70년대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비현실적인 결말이고(특정 기술만 확 발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니) 특히 마을 남자들이 모두 일치단결하여 그런 행동을 한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아마 경찰, 보안관까지 모두 한통속 같은데) 현실성을 따지만 어이없는 내용이지만 지나치게 현모양처를 바라다 보면 그렇게 집단으로 광기적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굉장히 지나친 과장을 통해서 일하는 남편이 선망하는 가정적인 아내를 정의한 엽기 드라마입니다.
ps1 : 국내 극장에서는 상영되지 않았습니다. TV방영시 '스텝포드의 여인들'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스텝포드의 아내들'이 더 맞는 제목이라고 봐야지요. 미혼여성들까지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니.
ps2 : 니콜 키드만 주연으로 2004년에 리메이크 되었는데 코믹영화로 설정을 바꾸었습니다.
ps3 : 브라이언 포브스는 영국 감독인데 미국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연출한 것도 특이하군요.
ps4 : 영화내내 수시로 일어났던 갸우뚱한 대사나 행위가 나중에 다 이유가 있었던 부분입니다.
ps5 : 캐서린 로스 보다는 재클린 비셋이 좀 더 어울렸을 듯 합니다.
ps6 : 영화 개봉후 페미니스트 시위가 있었다는군요.
ps7 : 출연한 아내 역할을 여성중 가장 먼저 마을에서 만난 캐롤이라는 여인, 가장 먼저 이상한 증세를 드러낸 그녀는 브라이너 포브스의 실제 아내인 나넷 뉴만 이라는 여배우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체 출연여성중 복장이 가장 정숙했습니다. 실제 원작에서는 좀 더 관능적인 의상이 요구되었다는군요.
[출처] 스텝포드의 아내들(The Stepford Wives, 75년) 마을에서 벌어진 음모|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