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마르 3,20-21: 예수님 친척들의 몰이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또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가족들이다. 그런데 어떨 때는 가족들이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를 잘 알고 있으므로 이해해 주리라 믿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많이 체험한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업적을 통하여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고, 이것을 본 군중들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몰려왔다(21절). 아마도 예수께서 고향, 친척, 직업을 모두 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정신이상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실 그 형제들과(요한 7,5) 고향 사람들은(마르 6,1-6)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이 친척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친척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잘 알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러한 모습이 없는가? 인간은 완전하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은 서로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채워가며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가 나름대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어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완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러한 중상이나 비방은 훨씬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이제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에게서 무엇인가 좋은 점, 장점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좀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느님의 가족 안에서는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느님 안에 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제2의 그리스도인 우리는 이웃의 명예훼손이나 중상모략보다는 어렵고 곤란한 이들에게는 위로와 도움을,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진정으로 축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