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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푸른 셔츠와 코르덴바지를 입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병사들은 리드미컬하게 펄럭이는 귀를 가진 노새 무리 뒤에서 들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 일은 형편없었다. 우리가 밭고랑이라고 여길 수 있는 성과를 못 내고, 단지 흙만 휘저을 뿐이었다. 농기구는 딱하게도 모두 구식이었으며, 고가의 금속이 모든 물건을 좌지우지하였다. 예를 들면 망가진 보습ploughshare은 덧대고 또 덧대어 어떤 때는 덧댄 게 주가 되었다. 갈퀴와 쇠스랑은 나무로 만들었다. 장화를 소유한 사람은 드물었는데 그 중에서 삽을 아는 이는 없었다.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볼품없는 쟁기로 고랑을 팠다. 써레 비슷한 농기구가 있었는데 우리를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판자를 함께 묶어 만들었는데, 대략 식탁 크기로 판자에는 수백 개의 장붓구멍을 도려내, 각 구멍마다 단단한 돌(flint 부싯돌)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 돌들은 만 년 전 사람들이 그 돌을 깨트린 똑같은 방식으로 깬 형상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러한 사물 중 하나를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오두막에서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였다. 한참동안 혼란을 겪고 나서야 그 물건이 써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는 수고로움work과 쇠 대신에 부싯돌을 사용해야만 하는 가난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후로 난 산업주의에 대해 더욱 친밀한 감정이 생겼다. 하지만 마을에는 대지주의 재산에서 압수했음이 분명해 보이는 최신식 트랙터가 두 대 있었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나는 마을에서 일마일 남짓 떨어져 있는 작은 담이 있는 묘지를 배회한 적이 있었다. 전선의 시신들은 보통 시에타모로 보낸다. 이곳은 마을 묘지이다. 영국의 묘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이곳에는 망자를 위한 존중이 없다! 거친 풀과 덤불을 포함해 모든 것이 웃자라 있고, 사람의 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은 거의 대부분의 비석에 종교적 헌사가 없는 것이다. 그들 모두 혁명 이전에 세워졌음에도. 내 생각에는 오직 한 번 기독교 무덤에 흔한 ‘아무개의 영혼을 위해 기도함’을 보았다. 순전히 세속적인 헌사가 대부분이었는데, 망자의 선행과 관련한 익살스러운 시가 들어있었다. 네댓 개의 무덤 중 하나 정도에 작은 십자가나 천국Heaven에 대한 형식적인 존경이 있었다. 이것은 보통 직업으로 하는 무신론자가 정으로 새긴 것이다.
스페인의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종교적 감정이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종교적 감정은 교조적인 감각의 관점에서이다. 내가 스페인에서 보낸 모든 시간에 단 한 번도 성호를 긋는 사람을a person cross himself 본 적이 없었으니 매우 기이했다. 하지만 당신은 이러한 운동이 혁명이건혁명이 아니건 본능적이 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스페인 교회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속담에 있듯이 밤과 제수이트는 언제나 돌아온다.) 하지만 의심할 것도 없이 혁명의 초기에 교회는 붕괴되었고 (환경이란 단어의 마지막 글자 E의 첫 글자 C와 같이) 절멸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연장선까지 붕괴되었다. 어쨌든 카탈루니아와 아라곤의 스페인 민족에게 있어 교회는 한마디로pure and simple 방탕이었다. 어쩌면 기독교인의 신앙은 무정부주의로 어느 정도 대체되었으며, 무정부주의의 영향은 넓게 퍼졌으며, 확실히 종교적 색채를 뗬다.
병원에서 귀대한 바로 그날이었다. 우리는 정말로 적절한 위치인 곳으로 전선을 전진시켰다. 약 천 야드 정도였다. 파시스트가 진을 친 2백 야드 앞에 놓여 있는 개울을 따라서였다. 한 달 전에 수행했어야만 했던 작전이었다. 이제야 실행에 옮긴 이유는 아나키스트들이 자카 로드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 지점까지 나아간 것은 파시스트들이 부대를 우리로 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잠을 못 잔 지 육칠십 시간이 되었다. 내 기억은 흐릿해져 차라리 사진을 늘어놓은 것처럼 되었다. 파시스트 진영에 속하는 농가를 요새화한 카사 프랑세사(프랑스 집)으로부터 백 야드 떨어진 황무지에서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하는 소리. 끔찍한 늪지대에 7시간 동안 누워 있으니 갈대 (썩은) 물속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다. 갈대 (썩은) 냄새, 무감각해지는 추위, 어두운 하늘에 움직이지 않는 별, 듣기 싫은 개구리의 울음소리. 5월임에도 내 기억에 스페인에서의 가장 추운 밤이었다. 우리 바로 뒤 100야드에서 근로자당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개구리의 합창 소리 빼고는 지독한 침묵만 있었다. 그날 밤 단 한 번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모래주머니를 삽으로 평평하게 만드는 익숙한 소리였다. 아주 가끔 스페인 사람들이 조직 사업에서의 눈부신 업적 brilliant feat of organization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모든 조치는 아름답게 설계되었다. 7시간에 육백 명의 병사가 파시스트의 진영 앞 150야드에서 300야드 거리에 1,200m의 참호와 장벽을 구축했다. 이 모든 조치는 너무나 조용히 진행되어 파시스트들은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였고, 밤사이에 단 한 명의 부상자만 발생하였다. 물론 다음날은 더 많았다. 모든 병사는 할당된 몫이 있었다. 심지어 브랜디를 포도주 통에 섞는 laced 작업을 완수하고 막 도착한 주방의 당번병도 예외가 없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파시스트들이 우리가 거기 있는 것을 갑작스레 알아차릴 것이다. 하얗고 각진 프랑스식 벽돌집은 2백 야드나 떨어져 있음에도 우리를 덮칠 듯 보였고, 창문 위 모래주머니로 막아 놓은 방 안 기관총은 참호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일어서 입을 딱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파시스트들이 우리를 왜 발견하지 못하는지 의아했다. 그러고 나서 사악한 총알의 소용돌이가 있고, 모든 사람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정신없이 삽질하여, 참호를 더 깊이 파고. 한쪽에 있는 작은 피난처를 넓혔다. 내 팔은 삼각건으로 묶여 있었기에 삽질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대부분을 탐정 이야기-사라진 전주 錢主를 읽으면서 보냈다. 그 책의 주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곳에 앉아있던 느낌은 매우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깔고 앉았던 참호의 축축한 진흙 바닥, 병사가 참호 밑으로 급하게 구부리는 방향 way에 따라 내 다리를 끊임없이 옮겨야 했던 일. 30㎝나 60㎝ 머리 위로 툭툭 소리를 내며 박히는 총탄. 토마스 파커는 허벅지 상단에 총알이 관통했다. 파커의 말에 의하면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DSO(distinguished Service Order 영국군의 수훈장)을 받기에 더 가까웠다. 부상자는 모든 전선을 따라 발생했지만, 야간에 움직이는 우리를 잡았더라면,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후에 탈영병이 우리에게 말한 바는 다섯 명의 파시스트 보초가 무심결에 쏘았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몇 개의 박격포를 가져와 주도권을 쥔다면 우리를 대량학살할 수 있다. 부상자를 좁고 붐비는 참호로 내리는 일은 곤란하다. 나는 환자 poor devil 한 명을 보았는데, 그의 반바지는 피로 짙게 물들었고, 들것 위에서 펄쩍펄쩍 뛰었고 고통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누군가 부상병을 1마일 이상 떨어진 먼 거리로 운반해야만 했다. 도로가 있을 때도 구급차는 전선 가까이 오지 않았다. 만약 너무 가까이 오게 되면 파시스트 군대는 습관적으로 포탄을 날린다. (포탄을 쏘는 게) 정당하게도 현대 전쟁에서 누구도 탄약을 운반하기 위해 구급차를 사용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밤 공격을 위해 토레 파비앙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무선으로 취소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외양간에서 바닥은 두껍게 쌓인 골 층 위에 얇게 왕겨로 덮은 것이었다. 인간의 뼈와 소의 뼈가 섞여 있었고, 쥐가 살고 있었다. 더러운 짐승이 바닥 여기저기서 몰려나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어둠 속에서 내 위를 뛰어다니는 쥐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날려버리는 훌륭한 주먹으로 쥐새끼 중 하나를 잡는 데 만족했다.
파시스트의 장벽에서 5~60야드 떨어진 곳에서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긴 줄을 이룬 병사들이 관개수로 안에서 총검을 차고 경계선을 엿보는데, 눈의 흰자위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콥과 벤자민이 무전기를 어깨에 메고 있는 병사와 우리 뒤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서쪽 수평선 위에서 장밋빛 총의 섬광이 엄청난 폭발로 몇 초의 간격을 두고 뒤따랐다. 그런 다음에 무전기에서 삐-삐-삐 하는 소음이 들렸고 떠나기 좋을 때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명령이 속삭이듯 들렸다. 우리는 명령에 따랐지만 그렇게 빠르지는 못했다. JCI(POUM의 젊은 부류로 PSUC의 JSU와 관련되어 있다)의 운이 없는 아이들 열두 명은 파시스트의 장벽에서 불과 40야드 정도 떨어진 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새벽녘에 붙잡혀 도망칠 수 없었다. 온종일 풀덤불을 뒤집어쓰고 그곳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파시스트 적군들은 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총을 쏴댔다. 해 질 녘에 7명이 죽었고, 그 후 나머지 다섯 명은 어둠 속에서 가까스로 기어서 빠져나왔다.
그 후로 수많은 아침 아나키스트가 우에스카의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나 같은 소리. 사소한 시기에 in the small times 어떤 때는 갑작스레 동시에 터지는 수십 발의 폭탄의 시작을 알리는 굉음-몇 마일 떨어져 있더라도 끔찍하고, 찢어질 듯한 굉음이 있고 난 후 대량의 소총과 기관총의 끊이지 않는 우렛소리, 북을 마구 치는 것과 비슷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무겁게 구르는 소리가 뒤따른다. 차츰 포격은 우에스카를 둘러싼 전 전선으로 확대되었고, 우리는 의미 없는 누더기의 포격이 머리 위에서 세차게 움직이는 동안 방벽에 기대어 졸기 위하여 참호 속으로 비틀거리며 나아갔다.
낮에는 총이 발작적으로 굉음을 냈다. 지금 주방으로 쓰고 있는 토레 파비앙은 포격을 받아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만약 당신이 안전한 거리에서 포격을 본다면 당신은 항상 포수가 표적에 맞추기를 바라게 되니 참 이상한 일이다. 표적에 당신의 저녁 식사와 당신의 동료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파시스트들은 그날 아침 명중률이 높았다. 아마도 포를 쏘는 그 자리에 독일군 포수가 있었을 것이다. 토레 파미앙에 깔끔하게 협치 포격 bracket을 가했다. 포탄 하나는 넘어갔고 하나는 짧았다. 그리고 빵! 서까래가 터져 위로 튀어 오르고, 각섬석 판이 가볍게 튕긴 카드처럼 공기 중으로 벗겨져 쏟아졌다. 다음 포탄이 건물 모서리를 거인이 칼로 도려낸 듯이 깔끔하게 없애 버렸다. 하지만 요리사는 제시간에 저녁을 내왔다. 기념할만한 위업이었다.
날이 감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귀로 들을 수 있는 포가 뚜렷한 개성을 각자에게 부여했다. 러시아제의 75밀리 포진지 두 개가 있었다. 우리 뒤 가까운 곳에서 발사했는데 뚱뚱한 사람이 골프 공을 치는 그림을 연상케 했다. 내가 보거나 들었던 첫 번째 러시아 포였다. 그 포는 낮고 매우 빨라 후익 소리와 동시에 폭발음이 들렸다. 몽플로라이트 뒤에는 하루에 몇 번 쏘지 않는 매우 무거운 포 두 문이 있었다. 이 포는 긴 사슬에 묶인 괴물의 짖는 소리 같은 깊고 입을 틀어막고 내는 외침 소리를 냈다. 아라공 산 위에 지난해 정부군이 들이닥치고(그 역사의 처음에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에스카로의 접근을 보호하는 중세의 요새에는 19세기에 연원을 둔 것이 분명한 중화기가 있었다. 그 중화기의 거대한 폭탄은 휘이이익 너무나 천천히 날아가서 당신이 느끼기에 폭탄과 나란히 뛰어서 쫓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포에서 발사된 포탄은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나는 소리의 크기만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참호 속 박격포는 비록 작지만 가장 악마 같은 모든 소리를 낸다. 박격포탄은 정말로 날개 달린 어뢰의 일종으로 선술집에서 던지는 다트와 같은 형상이며 대략 1쿼트들이 병 크기다. 이 폭탄은 발사할 때 악마 같은 금속성 충돌음을 낸다. 마치 모루 위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강철로 만든 성마른 괴물 장갑처럼 말이다. 때때로 우리 측 비행기가 날아와 항공어뢰를 떨구는데 굉장한 울림의 굉음이 2마일 떨어진 거리에서도 땅을 떨게 한다. 파시스트 진영의 방공포에서 발사된 탄환은 더러운 물 색깔의 구름 조각처럼 하늘을 수놓는다. 하지만 한 번도 비행기 천 야드 이내로 들어간 포탄을 본적이 없다. 항공기가 갑자기 땅을 덮치며 기관총을 쏘면 아래서 그 소리는 날개가 펄럭이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가 담당하는 전선에서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2백 야드 오른쪽, 우리 지역보다 고지대인 파시스트 진영의 저격수가 아군 동료 몇을 쏘아 죽였다. 왼쪽으로 200야드 개울 위 다리에서는 파시스트의 박격포와 다리 반대편에서 콘크리트 방벽을 구축하는 병사 사이에 두 가지 일이 진행 중이었다. 악마같은 작은 탄환이 윙윙 소리를 냈다. 쯔윙 – 쾅 – 쯔윙 - 쾅!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질 때 두 배로 큰 끔찍한 소음을 냈다. 백 야드 밖에 있으면 완전하게 안전하게 서서 흙 기둥columns of earth 과 검은 연기가 마법의 나무처럼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리 주변의 환자는 참호의 한쪽에 움푹 파서 만든, 작은 대피공간 안에서 움츠려 낮 대부분을 보낸다. 하지만 기대한 것보다 부상자는 거의 없었으며 장벽은 꾸준히 높아졌다. 콘크리트 벽은 2피트 두께로 기관총 두 정과 작은 저격용 총을 위한 총안이 있었다. 콘크리트는 낡은 침대 덮개로 보강되었다. 그 덮게는 보강을 위한 목적을 위해서 발견할 수 있었던 확실하게도 유일한 쇠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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