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소월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였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더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定州) 곽산(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문명』 창간호, 1925, 12)
[어휘풀이]
-바이 : 전혀, 전연
[작품해설]
이 시는 전통적인 7·5조의 3음보 율격을 바탕으로 하여 소월 특유의 일상적 언어와 자문자답(自問自答)의 독백 속에서 정처 없이 유랑(流浪)하는 시적 자아의 의지할 곳 없는 서글픈 심정과 고독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적 자아의 암담한 마음을 ‘가마귀’로, 향수의 정감을 ‘기러기’로 표현했으며, 운명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모습은 ‘열십자’로, 끝없는 유랑의 인생은 ‘길’로 각각 제시하여 그의 서러운 마음과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목적지가 없는 시적 자아는 길이 없어도 잘 가는 기러기들의 모습을 선망하며, 희망과 자유의 공간인 ‘공중’에 비해 절망과 부자유의 갈림길인 ‘열십자 복판’에 서서 ‘갈 길 하나 없’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서러워한다.
삶의 터전인 고향을 상실하고 유랑하는 시적 자아는, ‘오늘은 / 또 몇 십 리 / 어디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등의 시행에서처럼 실제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이는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살았던 소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제의 악랄한 식민지 수탈 정책으로 인해 농토를 빼앗기고 생존을 찾아 고향을 떠나 북간도로, 도회지로 더났던 숱한 유랑인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각 연 hen 3행의 구성으로 전 7연의 작품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1연)은 시적 자아의 현실적 상황을 제시하는 도입 부분이며, 둘째 달락(2~3연)은 지향성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전개 부분이다. 그리고 셋째 단락(4연)은 서글픈 고향 자랑을 통해 자기 위안과 연민을 갖는 전환 부분이며, 넷째 단락(5~6연)은 자유롭게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자신도 그처럼 안주(安住)하고 싶어 하는 열망과 함께 ‘열십자’ 복판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자신의 방향 상실에 대한 비애감을 말하는 절정 부분이다. 마지막 다섯째 단락(7연)에서는 수없이 많은 길 가운데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적 자아의 방황을 보여 주는 정리 부분이다.
[작가소개]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중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소월시초』(1939), 『정본 소월시집』(1956)
첫댓글 그저 흘러갈 뿐이라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