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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강원도 평화누리길 15코스-1(인제 북면길)
여행일 : ‘23. 11. 19(일)
소재지 : 강원도 인제군 북면 일원
여행코스 : 원통교→어두원교→한계삼거리→정자문교차로→12선녀탕 주차장→만해마을→용대삼거리→미시령 옛길→미시령(거리/시간 : 28.1km, 실제는 12선녀탕 주차장까지 13.37km를 2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평화누리길’이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서해안 강화도에서 강원도 동해안 고성까지의 접경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자전거 길이다. 이중 강원도 관내(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경유)를 ‘강원도 평화누리길’이라 부르는데 생태·평화의 상징공간인 DMZ 일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20개 코스(370.6km)로 구성됐다. 분단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평화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 들머리는 원통교(인제군 북면 원통리)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를 타고 속초방면으로 50km쯤 올라오면 ‘원통리’에 이른다. 평화누리길 15코스의 출발점은 마을 앞 북천을 동서로 횡단하는 ‘원통교’이다. 참고로 ‘원통(元通)’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원통역’이라는 역참(驛站)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 북면 소재지(원통리)의 ‘원통교’에서 시작해 북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용대삼거리에서 옛길을 따라 ‘미시령’ 고갯마루까지 올라가는 코스다. 구간거리는 자전거길 답게 28.1km. 라이더들이야 우습겠지만 걷기 여행자들이 하루에 걷기에는 벅찬 거리다. 때문에 우린 절반으로 나눠 오늘은 ‘십이선녀탕 주차장’까지만 걷기로 했다.
▼ 09 : 08. 15코스의 시점은 ‘원통교’의 동단(東端)이다. 이곳에서 북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하천의 오른편 둑 위로 널찍하니 길이 나있다.
▼ 강 건너 원통 시가지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맞다. 군대라도 갈라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부디 살아서 돌아오라’며 눈시울을 적시던 ‘라때’ 시절, 이곳 원통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로 회자되던 고을이었다. 주민들보다 외출 나온 군인들이 더 많던 그런 첩첩산중 오지마을이 저런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니 어찌 낯설지 않겠는가.
▼ 세월과 함께 쇠락해가던 군사도시는 이제 군인과 상생하는 병영문화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4층 규모의 웰컴센터가 들어섰는가 하면 병영역사와 문화가 담긴 테마존, 특화된 먹자골목 등 볼거리·즐길거리·먹을거리가 즐비하단다. 그렇다면 길가의 저 참호는 옛 추억 소환용일지도 모르겠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그래, 언젠가 공연장에서 만난 고(故) 박동진(朴東鎭) 명창께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를 외치지 않던가.
▼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는 저 바람개비는 조경용? 아서라 저래 뵈도 의젓한 ‘풍력발전기’라고 한다. 친환경 분산형 전원 확대와 지자체 에너지전환 주도에 발맞추기 위해 개발된 소형발전기로, 주변 공공시설에 전력을 공급해주는 주민 편익시설이다. 하나 더. 하천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보(堡)를 막아 소수력발전을 하고 있었다.
▼ ‘코리아 둘레길’의 한 축을 담당하는 ‘DMZ 평화의 길’ 팻말이 눈에 띈다. 자전거길인 ‘평화누리길’과 겹친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DMZ 평화의 길’은 비무장지대(DMZ)를 걸으며 분단의 현실을 체험하고 접경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트레일(trail)이다. 강원 고성에서 인제·양구·화천·철원·연천·파주·김포를 경유해 인천 강화까지 접경지역의 9개 시·군을 횡단하는 길이 524km의 도보길이다.
▼ 09 : 19. ‘라때’의 추억을 소환해가며 걷기를 10분 남짓. 둑길이 끝나면서 2차선 도로(갈골로)로 올라선다.
▼ ‘나만큼이나 많은 풍파를 겪었나보다’ 함께 걷던 산수(傘壽)의 도반 손가락 끝에는 힘이 겨운 듯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는 노송 한 그루가 있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는 ‘곡강시(曲江詩)’에서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고 했다. 70세의 별칭이 고희(古稀)가 된 근원이다. 그런데 이분은 이미 80을 넘기셨다. 그의 손가락 끝에 놓인 소나무에게 경의를 보내며 트레킹을 이어간다.
▼ 왜가리는 철새? 결론은 ‘NO’이다. 원래는 철새였으나 기후변화와 강한 적응력 덕분에 현재는 완전히 텃새가 되었다. 하나 더. 옛 사람들은 왜가리를 ‘으악새’라 부르면서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을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른다’며 나무랐다고 한다. ‘으악-으악’하는 왜가리의 울음소리가 영 곱지 못했기 때문이다.
▼ 09 : 23. ‘갈골교’를 건너자 길이 둘로 나뉜다. 아까 도로(갈골로)로 올라섰던 탐방로가 다시 둑길로 내려서는 것이다.
▼ 북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둑길은 왼편에 북천, 그리고 오른편에 둑을 쌓아 조성한 뜨락만큼이나 작은 들녘을 끼고 가는 모양새이다.
▼ 명색이 ‘평화누리길’. 거기다 ‘DMZ 평화의 길’까지 더했는데 어찌 쉼터 하나 없겠는가. 정자는 물론이고 몸이라도 풀고 가라는 듯 운동기구 몇 점을 배치했다. 커다란 견공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어 쉬기는커녕 다가가보지도 못했지만.
▼ 9 : 40. ‘어두원교’로 북천을 건넌다. ‘어두’라는 지명은 다리 건너에 있는 ‘어두원 마을(원통8리)’에서 빌려왔다.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골짜기가 깊어서 항상 어둡다는 오지마을이다. 그러니 한자로 변한하면 ‘음지(陰地)’쯤 되겠다. 그런데도 굳이 ‘어두리(魚頭里)’를 공식 지명으로 내걸고 있는 이유는 뭘까?
▼ ‘평화누리길’은 자전거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이정표(용대삼거리 19.1km)도 자전거를 매달았다.
▼ 다리에서 바라본 상류 쪽 풍경. 안개가 걷히지 않아 파노라마로 펼쳐져야 할 설악산은 그 형상조차 가늠해 볼 수 없었다.
▼ 다리 건너는 ‘어두원마을’. 탐방로는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북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줄기를 왼편에 끼고 달려온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른편에 끼고 간다고 보면 되겠다.
▼ 09 : 45. 100m쯤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쉼터. 이번에는 반듯한 팔각정까지 지어놓았다. 그것도 북천의 벼랑에 걸터앉은 모양새로...
▼ ‘접경권 평화누리길’ 안내판도 눈에 띈다. 용늪마을 자연생태학교, 냇강마을, 만해마을, 백담사, 인제산촌민속박물관 등 인제권역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관광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 ‘평화누리길’은 자전거길. 그러니 자전거 거치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나 더, 왼쪽에 보이는 도로는 44번 국도(설악로)이다.
▼ 쉼터는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난간에 서면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북천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발원해 남서방향으로 흘러 인북천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 탐방로는 44번 국도와 나란히 간다. 북천이 오른편에서 따라옴은 물론이다.
▼ 09 : 48. 설하관광농원 캠핑장에 이른다. 하지만 걷기 여행자들에겐 함께 걷는 도반과 커피라도 한잔 나눌 수 있는 ‘cafe kanune’가 더 친근하다.
▼ 요즘은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고 했다. 그 정도는 머물러야 그 지역의 속살을 속속들이 느껴볼 수 있다나? 문득 올해 봄 다녀온 코카서스 3국이 생각난다. 조지아의 현지인으로부터 ‘한 해 살이’를 권유 받았고, 난 15일 정도의 여행기간 내내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다. 내 연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귀족처럼 살 수가 있다니 어찌 귀가 솔깃해지지 않았겠는가.
▼ 09: 54. ‘관벌교차로’라고 한다. 고원통(古元通)의 남쪽 들녘 옆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 이곳에 관청이 있었다고 한다.
▼ 교차로를 빠져나오면 ‘설악휴게소’가 잠시 쉬었다가란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어선지 인적은 뜸한 편이었다.
▼ 탐방로는 이제 ‘한계리(寒溪里)’로 들어간다. 망국의 한을 짊어진 신라 마의태자(麻衣太子)와의 인연을 들먹이는 마을이다. 10월 하순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이 한겨울에 이곳에 도착했고, 살을 에이는 추위와 몰아치는 눈보라를 겪으며 한계(寒溪)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란다.
▼ 이때 안개가 걷히면서 산줄기 하나가 살짝 얼굴을 내민다. ‘한석산(寒石山 : 1,117m)’이 아닐까 싶다.
▼ 10 : 02. ‘한계2교’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 44번 국도의 ‘한계교’ 아래를 지난다. 직진하면 ‘한계삼거리 휴게소’. 하지만 오가는 차량들은 휴게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새로 뚫린 국도를 따라 휭하니 사라질 뿐이다.
▼ 탐방로는 46번 국도를 향해 간다. 길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길임을 알리는 하늘색 선이 그어져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공명(共鳴)의 집’이란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남의 사상이나 행동에 공감하며 그에 따르는 이가 산다는 얘기일 것이다. 두 물체가 마주쳐야 울림이 난다. 산 위에서 ‘야호’하고 소리치면 반대쪽 산에 부딪혀 소리가 되돌아온다. 이처럼 자기가 내뱉은 말이나 행동은 결국은 시나브로 자기에게 돌아온다. 남을 욕하거나 저주하면 상대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남을 칭찬하고 장점을 말하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 오지 특유의 특산물들이 옛 추억을 다시 한 번 소환시킨다. ‘라때’ 시절 이곳 인제는 군인들이 가장 회피하던 지역 중 하나였다. 102보(지금은 해체됐다)에 걸린 것만으로도 서럽던 당시, 이곳까지 들어온 군인들은 빽 없는 부모들을 원망하며 ‘거꾸로 매달아도 세월은 간다’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빠삐용’의 한국판이었다고나 할까.
▼ 10 : 11. ‘고원통교’ 다리를 건넌다. 다리건너는 ‘고원통(古元通)’ 마을. 조선시대 역(驛)이 있었다는 곳이다(마을 중심을 원통으로 빼앗기고 이름표에 ‘옛 古’를 덧댔다나?). 인제읍지(1843)는 역마 1필, 복마 2필, 노 4명, 비 1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탐방로는 다리 건너에서 오른편으로 간다. 참! 왼편으로 가면 ‘내설악 예술인촌’이 나온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마을에 거주하는 유명 작가 및 관내 문화예술단체의 작품을 전시하는 ‘내설악 공공미술관’도 들어서있다니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 고원통 마을은 얼핏 유원지를 연상시킨다. 도로를 따라 꽤 많은 음식점과 숙박업소, 심지어는 호텔까지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연 집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여름 한철 장사라도 하는 것일까?
▼ 황태가공공장도 눈에 띈다. 인제의 겨울 풍경 중 단연 으뜸이라는 황태덕장이 인근에 있는 모양이다. 겨울의 추위와 볕에 의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쫀득하게 마르는 황태의 맛과 그것들이 가득한 덕장의 눈 덮인 풍경은 그야말로 겨울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 탐방로는 이제 ‘국도 46호선’을 따른다. 아니 4차선으로 확장한 46호선을 새로 냈으니 이젠 ‘46호선 옛길’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참고로 그동안 함께 달려오던 국도 44호선과 46호선은 이곳 ‘한계삼거리’에서 이별을 고한다. 44호선은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고, 46호선은 진부령을 넘어 고성으로 간다.
▼ 10 : 16. ‘고원통교차로’ 부근에서는 신·구 두 도로가 함께 가기도 한다.
▼ 10 : 26. 하지만 산을 꿰뚫어버리는 새 도로(미시령로)와는 달리 옛길(고원통로)은 북천 물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다. 때문에 한계터널 입구의 교각 아래를 지나기도 한다.
▼ 길은 양옆에 철제울타리를 둘렀다. 11코스 때 돌산령을 넘으면서 만난 울타리는 군 시설의 보호와 함께 북한에서 넘어오는 ASF(아프리카 돼지열병) 감염 멧돼지의 차단막을 겸한다고 했었다. 이곳도 비슷한 용도겠지?
▼ 아까도 얘기했듯이 이 구간은 ‘평화누리길’과 ‘DMZ 평화의 길’이 사이좋게 함께 쓴다. 힘차게 달려가는 라이더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이유이다.
▼ 얼마쯤 걸었을까 주변 풍경이 확 바뀐다. 기암괴석의 바위봉우리. 그리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들. 설악산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아니 아직은 맛보기일지도 모르겠다.
▼ 오른편에서 따라오는 북천도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크고 작은 못은 물론이고, 집채 만한 바위부터 작은 돌멩이까지 조화롭게 깔린 내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
▼ 저건 숫제 ‘용(龍)’이다. 용이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멋진 스토리텔링으로 덧씌운다면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변할 수도 있겠다.
▼ 길은 수없이 많은 ‘S’자형 곡선을 그리면서 이어나간다. 따라가고 있는 북천(北川)이 ‘감입곡류(嵌入曲流)’의 하천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물굽이가 심한 곳에는 모래톱도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자못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퇴적층이라선지 소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주변 산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 10 : 46. 산이 깊은 곳이니 물이 맑을 것은 당연.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간들이 이를 내버려둘 리가 없다. 저 ‘설악산수’ 공장이 그 증거이다.
▼ ‘쌍다리 쉼터’는 캠핑촌인 듯. 널따란 공터에 텐트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 국도 46호선 옛길은 가고 또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심심산골을 향해 한없이 파고드는 모양새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아름답기로 소문난 북천이 함께 간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북천은 에메랄드빛 소(沼)와 담(潭)을 수없이 품었다. 한여름 최적의 가족 피서지로 꼽힐 만하다.
▼ 인제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과 접경을 이룬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결혼도 북한 출신 여성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었다
▼ 11 : 07. ‘정자문교차로’에 이른다. 용대리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도 화장실까지 갖춘 쉼터가 만들어져있었다. 참고로 ‘정자문’은 마을 앞 강가에 ‘정자’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길가에는 열녀정문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정자나 정려문 모두 사라지고 없단다.
▼ 이곳도 조망의 명소이다. 용대리(남교마을) 앞들을 적셔주는 북천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용대리에서 시작된 북천(北川)은 내설악 깊은 곳에서 흘러온 백담천까지 품고 웅장한 물길을 이어 간다.
▼ ‘설악 하이 트레킹웨이 종합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자전거길인 ‘평화누리길’ 일부 구간을 저렇게 부르는 모양인데. 인제휴게소(인제군 남면)에서 용대삼거리까지 44번과 46번 국도에 붉은 선을 그어놓았다. 주요 포인트들을 함께 표시해놓았음은 물론이다.
▼ 이곳 용대리가 ‘전국 제1의 청정지역’임을 자랑하는 조형물도 눈에 띈다.
▼ 이후부터는 북천의 강둑을 따른다. 북천과 북천의 물줄기가 빚어낸 작은 들녘을 양옆에 두고 둑길이 나있다.
▼ 도중에 만난 어느 민박집 원두막. 초겨울 찬바람에 시래기가 말라간다.
▼ 11 : 17. ‘한 숨 자고가면 백수(白壽)는 넉넉히 넘기실 것입니다’. ‘장수정(長壽亭)’을 만난 일행이 넉살을 떤다. 둘러메고 온 배낭을 퇴침삼아 홍루몽(紅樓夢)이라도 꿔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서라’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할아버지의 통역을 거친 귀동냥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도서관까지 찾아가 완독해봤지만, 결과는 항상 일장춘몽을 되뇌며 아쉬운 입맛만 다셔야했으니 말이다.
▼ ‘침대는 과학입니다’. 과학계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광고도 이제 어색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비닐망으로 과수원을 통째로 둘러쳐야만 할 날이 오게 될 줄을 당시 사람들은 짐작이나 했을까 싶다.
▼ 북천의 물굽이가 빚어놓은 ‘개울 속 섬’에는 캠프촌이 들어섰다. 600명이 동시에 이용 가능한 숙박시설과 교육시설, 부대시설을 갖춘 사설 청소년수련원이다. 트래킹, 카약, 래프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한다.
▼ 11 : 29. ‘용대교’를 건너자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십이선녀교’가 어서 오란다. 15코스를 절반으로 단축했으니 이제 그만 마칠 때가 되었다면서 말이다.
▼ ‘넝쿨식물 터널’이란다. 용대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했는데, 조롱박·색동호박·수세미·여주·환타지믹스 등 넝쿨식물들을 심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철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가 멋진 풍경을 연출해준다고 한다.
▼ 용대권역 농촌종합개발사업의 내력은 그림으로 전해준다. 문화·복지시설과 소득기반시설을 갖추었으며, 황태홍보전시관·습지생태자연학습장·약초재배체험장·장류체험장 등의 다양한 시설을 조성해 권역별 특성에 맞는 마을로 탈바꿈시키겠다나?
▼ 11 : 35. ‘남교마을’로 들어서면 ‘십이선녀교(十二仙女橋)’가 반긴다. 20년쯤 전, 저 건너에 있는 십이선녀탕 계곡을 지나 대승령으로 올랐고, 귀때기청봉과 대청봉을 거쳐 오색약수로 하산했었다.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연이어 나타나는 ‘현세 속의 선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답사를 이어가던 기억이 새롭다.
▼ ‘십이선녀교’를 건너지는 않는다. 탐방로는 다리를 지나쳐 ‘남교마을’로 들어간다. 아니 집단시설지구로 변한 ‘윗남교’라고 하는 게 옳겠다. 참고로 ‘남교(嵐校)’는 조선시대 이곳에 있던 보안도(保安道)에 딸린 역참(驛站)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당시 남교역에는 복마가 3필, 노가 5명, 비가 3명 있었다고 한다.
▼ 시설지구답게 꽤 많은 펜션들이 들어서 있었다. 중세풍에 현대미를 더하는 등 개개의 외관도 하나같이 예쁘다. 그러니 멋진 정자 하나쯤 없겠는가. 하지만 개인소유였던 모양이다. 철망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막아놓았다. 세월이 하 수상하다보니 아름다음을 아는 사람들은 마음씨도 아름답다는 옛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나보다.
▼ 숙박업소에 이어 나타나는 주차장은 엄청나게 넓었다. 윗남교와 당정골 사이에 있다는 ‘이레가리’일지도 모르겠다. 7,000여 평에 달할 정도로 넓어, 소 한 마리로 갈 경우 7일이나 걸린다는 그 들녘 말이다.
▼ 주차장 초입, 전망 데크가 눈에 띈다. 스치듯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십이선녀탕’을 곁눈질이라도 해보라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 그러니 어찌 난간에 서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십이선녀탕계곡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북천의 물줄기가 발아래로 흘러갈 따름이다.
▼ 11 : 46. 집단시설지구의 널디너른 주차장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2시간 40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이 13.37km를 찍고 있으니 무척 빨리 건넌 셈이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이들은 벌써 식사가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저들은 달려오다시피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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