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경북대 아마추어무선반(HLo0) 9년후배인 박현동(블라시오, 성 베네딕도수도회) 아빠스님의 본인 은경축미사강론입니다.
사제서품 은경축 미사강론(2026. 10. 15.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어제 저녁 식사 때 형제들과 조촐하게 축하식을 하고, 오늘 아침 미사에서 25년간 이끌어 주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감사를 하며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강론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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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25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저는 동기 박재찬 안셀모 신부와 함께 이문희 대주교님께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오늘 입고 있는 제의도 그 때 입었던 제의입니다. 두 사람이 협의한 것도 아닌데, 안셀모 신부님의 서품 성구는 필리피서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2,5)였고, 저는 로마서의 “그리스도 안에”(8, 39)를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에페소서 시작 부분인데, 읽다보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7번이나 나오는데, 하느님의 위트가 느껴집니다!
돌아보면 하느님께서는 늘 제가 예상하지 못한 길로 저를 이끄셨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와 함께 살았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응용화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는 아마추어 무선사 활동을 하며 날마다 “CQ, CQ…”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전파를 통해 누군지 모르는 사람과 계속 이어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도원 입회는 제 계획에 없었습니다. 교구 성소 모임에도, 다른 수도회 성소 모임에도 한 번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저를 하느님께서는 이곳 왜관수도원 공동체로 데려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CQ”(Seek you!)를 외친 쪽은 제가 아니라 하느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부르심에 겨우 응답했을 뿐입니다.
서품을 받던 전날, 멀리 미국 뉴저지의 뉴튼 수도원에서 마리누스 수사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한국 시간 10월 14일 오후 8시). 그래서 저의 수도원 첫 미사는 하루 미루어졌고, 수사님을 위한 위령 미사를 먼저 봉헌했습니다. 어제 뉴튼수도원 봉헌회원들이 보내 준 고마운 꽃다발을 보다가 그날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제로서의 첫걸음이 한 형제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제가 하느님과 첫사랑에 빠져 있던 때에 동생이 연천의 비무장 지대에서 총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일 역시 제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다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다만 그 어둠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제 손을 놓지 않으셨다는 것만은 압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죽음도 삶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16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약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메세타 평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저 멀리 있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걸었습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었습니다. 걸으며 신앙의 길도 그와 같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길로만 가지 않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처음 가 보는 길을 걷습니다. 그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하느님의 손길에 나를 맡기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기념일입니다. 성녀는 가르멜회의 개혁을 이끌며 수없이 길 위에 있었습니다. 고된 여행길에서 한번은 진흙탕에 빠졌을 때 성녀는 주님께 이렇게 투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께는 친구가 없으신 거예요!”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하느님과 그만큼 가까웠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작년과 올해 연합회 평의회 회의를 마치고 아빌라와 세고비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고비아에는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 잠들어 계십니다. 그곳에 서서 저는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르시고 이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은 큰 표징으로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사물과 사람과 사건을 통해 조용히 당신 뜻을 보여 주십니다.
서품을 앞두고 마음에 근심이 많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몇 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교리교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가 수녀원에 들어간다고 갑자기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군종병으로 군성당에 있을 때 수녀원에 입회한 자매가 종신서원을 한다는 연락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어린 시절 첫영성체 교리를 해주신 수녀님을 오랜 시간이 지나 서품을 앞두고 수도원에서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사실 별 것 아닌 일들일 수도 있었지만, 저에게는 하느님과 저만 아는 방식으로 건네신 말씀이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오늘 저는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계획보다 크신 그분의 계획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형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형제로 받아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함께 걸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끄신 길 위에는 늘 형제 여러분이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제게는 하느님의 뜻을 보여 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안셀모 신부와 제가 남은 날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로, 수도자로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25년을 걸어왔지만 저는 여전히 메세타(Meseta) 평원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수없이 오갔던 길도 바로 그 메세타 평원이었습니다. 지평선은 아직 멀고, 남은 길이 어떨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 길 끝에도, 그 길 위에도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데레사 성녀는 성무일도서 책갈피에 이런 기도를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게 하라. 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게 하라. nada te espante,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은 변치 않으신다. todo se pasa, Dios no se muda;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la paciencia todo lo alcanza;
하느님을 모신 이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quien a Dios tiene nada le falta: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sólo Dios basta.”
우리가 자주 부르는 노래처럼, 저도 오늘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멘.
(출처: 박현동 아빠스님의 페이스북)
첫댓글 박현동 아빠스님
현재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으로 계시지요.